조회 : 1,229

[제5회]


BY noma 2000-11-06

5
이른아침 서늘한 기운에 눈을 뜬 가운은 자신이 어느새 다른방 침실에 누워 있는 것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언제 이방으로 들어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어젯밤 취해 있었다.
그는 잠시 침대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어젯밤엔 충격과 자신에 대한 분노로 정신을 차릴수 없었지만 곧 나연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들자 그는 자신의모습을 살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우선 샤워부터 하고 그녀의 방으로 간 그는 문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어색한 몸짓으로 방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조심스레 문을 연 그는 방안에 아무도 없고 침대도 깨끗이 정돈돼있자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들어 거칠게 방에서 뛰쳐나왔다.집안 어디에도 그녀의 인기척은 없는 것 같았다.
초초해진 마음으로 갈팡질팡하던 그가 현관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왔다.아침기운이 꽤 쌀쌀했다. 집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던 그의 시야에 앞마당으로부터 산으로 올라갈수있게 만들어진 좁은 산책로로 집을 향해 내려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들어오자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화가 치밀어오름을 느꼈다.
[도대체 어딜 갔다오는거야? ]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가 소리쳤다.
[ 산책갔다왔어요. 저 위로 길이 나있길래 궁금해서요. ]
그녀가 그를 무표정하게 올려 보며 대답했다.
그는 그녀의 차분하고 냉정한 말투에 조금전까지의 걱정과 사과해야 한다는 그의 마음이 사라지려 함을 느꼈다.
[ ...저기 , 어제일은 ...]그가 용기를 쥐어짜내어 어렵게 입을 열었다.
[ 아! ...어제일에 대해선 아무말도 하지 말아요. 어차피 우리 사인 계약된거고 당신은 날 고용한거나 마찬가진데 ...내가 해야 될일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해보지 않은 내 잘못이 크지요. 앞으론 좀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겠어요.]
[다행이군.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당신에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필요 없겠어.] 그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 ...그리구 당신이 다른사람에게 보이기 위한게 아니라면 꼭 이집에서 며칠씩 지낼 필요 있을까요?] 그녀가 돌아서서 현관을 향하는 그의 뒤에서 말을 꺼내자 그는 다시 돌아서서 그녀의 눈을 한동안 차갑게 노려보았다.
[ 아니, 당신이 원한다면 아침먹구 바로 떠나자구, 이제 이집에서 별로 할 일도 없을 것 같으니까. 그리구 집으로 돌아가도 잠자리 문제는 당신 맘대로 해. 나도 이제는 아내의 잠자리 역할에 대해서 별로 흥미를 못 느끼겠으니까]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고는 돌아서서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상처받은 마음으로 그가 들어간 현관문을 한동안 응시할 뿐이었다.
아침일찍 일어나 산으로 올라가며 상쾌한 공기를 느끼려 애썼지만 어?Ⅹ是?굴욕과 수치심은 그녀의 몸과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맹세했다. 그녀가 저지른 선택에 이제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없이 추락하기엔 아직 그녀의 자존심은 남아있었고 얼마의 기간이 될지도 모르는 그녀의 인생을 이렇게 비참한 눈물로 지내기는 더욱 싫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당당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보호 하리라 다짐 했건만 다시 그의 말에 상처입고 가슴이 아파옴에 그녀의 맹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정말 질려버렸다. 그는 잠시라도 그녀가 상처입었을꺼라고 걱정한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전에도 그랬었다. 첫사랑 때문에 그렇게 마음아파하고 괴로워했을때도 금방 툴툴 털어버리고 남자친구들을 만드느라 정신없이 굴었던 그녀였다는걸 그는 잠시 잊었었다.
저 당당하고 고집스런 말투,그녀는 전혀 순수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여자였다.

그가 현관문을 따고 들어왔을 때 거실엔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약한 조명등만 켜져 있을뿐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그들의 신혼생활이었다. 그는 아침에 그녀가 깨기전에 나가 그녀가 잠이 든 후에 들어왔다. 어느땐 그가 들어 왔을 때 그녀가 깨어있으면서도 잠든척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적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잠자리에 든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그의 방문이 거친소리를 내며 열리는 바람에 그는 놀란얼굴로 상체를 들어 문가를 쳐다보았다.
열려진 문앞에 나연이 배를 움켜진채 주저 앉으려 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살려줘요 ]
그가 침대위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 앞에 닿기전에 그녀는 이미 문앞에 쓰러진채 무릎이 가슴위에 붙은채로 신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