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飛翔)의 날개 (2)
현지는 서울대에 합격했고, 더불어 나는 내년에 받을 신입생 걱
정을 덜 수 있었다. 그룹으로 맡았던 아이들 속에서도 상위권 대
학에 합격자가 나왔지만, 떨어진 한 아이의 어머니는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수업 받지 못한 때문이라며 개인수업을 해 줄 선생
을 찾아 달라고 부탁해 왔다.
"제가 진수를 잘 아니까 일 년 더 제가 맡으면 안될까요?"
그렇게 묻는 내게 진수의 엄마는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
다.
"선생님, 결혼하실 분이 사법고시 패스했다던데, 이제 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니예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한 일년쯤 더 벌어 마무리를 하려던 내게
이런 식으로 결말이 올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그렇다면 접어야 겠지..
씁쓸했지만 어차피 접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일이었다. 내
가 일년쯤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연수원에 들어간 태진 때
문이 아니라, 모아 둔 것 없는 내 한심한 처지 때문이었다. 다
시 뭔가 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한 일년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지나는 길에 들러 차나 한잔하라고 현지 엄마가 전화해 왔을 때
이제 다시 찾아 올일 없을 압구정동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눠
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현지네 집으로 갔다.
때마침 현지네 집에는 현지 고모가 와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고모, 현지 과외선생님. 인사하세요."
"네,현지 고모예요. 언니 후배이기두 해요.수고 많으셨다면서
요."
"아, 그래요. 반가워요. 그런데 제가 방해가 된 것은 아닌지.."
"호호,,아니 예요 선생님. 참 이제 일 접으신다면서요? 늦게나
마 축하드려요. 약혼자가 사시패스 하셨단 소식 들었어요. 이제
사모님이 되시는 거네요? 혹시 우리 아저씨 일 걸리면 좀 잘 봐
주세요."
"아니 예요, 무슨 말씀을..."
"우리 고모도 시집 보내려구요. 졸업반인데, 사실은 이번 연수원
생들 중에 신랑감 찾고 있거든요. 어머, 혹시 알지도 모르겠다.
그죠?"
현지 엄마는 사진 몇 장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사진을 빤히 보
았다. 그 중에는 태진의 사진도 끼여 있었다.
"보신 적 없으세요? 이번 동기실텐데?"
"아니요. 제 애인 보기도 힘든걸요."
"언닌, 별걸 다 묻고 그래요.."
현지 고모는 사진을 빼앗아 챙기며 그렇게 말했다.
"아가씨 누가 젤 괜찮은 거 같애요? 어머님이 잘 찾아 보라구
그러셨단 말이예요. 선생님도 좀 같이 잘 봐요. 아무래도 여럿이
보는 게 낫지..."
"호호,,그런가?"
현지 고모는 손에 든 사진을 보라는 듯이 내게 넘겼다.
"이 사람 어때요?"
나는 일부러 태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글쎄, 인물은 제일 낫지 않아요?"
"아가씨,맘에 드나부다?"
현지 엄마는 깔깔 웃으며 내게 물었다.
"어때요? 젤 낫다 뭐. 선생님 결혼하실 분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
금하네요?"
"못 생겼어요."
"하긴 생긴 게 뭐가 중요해.요새 의사도 영양가 없구, 이번 토요
일로 날 잡아 보라구 연락할까요? 이런 일은 빨리 빨리 해야돼."
"언니, 나 맛사지 어디루 받으러 가야 할까?"
"멀리 갈 꺼 뭐 있어요? 여기 세리로 가요."
"전,,이만..."
"아가씨도 언니라고 하고, 잘 알아두면 서로 좋겠네. 누가 알아
요, 장차 둘이 서로 잘 알게 될지..."
"네, 그래요 언니. 좀 더 계시다 가시지요."
"아니요. 약속이 있어서, 그럼..그 동안 감사했어요. 현지 어머
니.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연락 끊지 말고 선생님, 자주 들려요, 여기 나오시면요,,"
"네..."
그래.. 별일은 아니야. 돌아서 나오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태진의 사진은 지금쯤 아마, 잘 나가는 마담뚜들의 손에 의해서
또는 요새 새로 생겨나는 결혼상담소의 노른자 위 명단쯤에 여
기 저기 붙어 있을 꺼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 때쯤 로펌에라
도 들어간다면, 그는 더욱 줏가가 치솟겠지. 그렇게 되려고 공부
한거잖아...
나는 그의 날개에 돌덩이처럼 묶어 뒀던 나 자신을 풀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전에 꼭 한가지 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이 있었
다. 그리고 난 후에, 나는 미련 없이 그를 어느 광고에 나오는
문구처럼, 떠나는 게 아니고 먼저 버리기로 했다.
"정신없다 정말,,"
"그렇게 바빠?"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갈 데가 없어.. 요새는 정말 죽을 맛이
다."
"그래도 붙었잖아."
"편한 소리한다. 로펌에 들어가려면 얼마나 기를 써야 할지..다
잘난 놈들뿐이니 원.."
"검사는?"
"물 건너 간 소리하지 말아."
"태진씨,,우리 언제 결혼해?"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내가 묻자 그는 별 엉뚱한 소리를 다 들어
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버지가, 작은 아파트 하나 전세로 해주시겠대.."
"너 일도 못하게 된다며?"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남아 있는 걸로 어떻게 견뎌 보지 뭐."
나는 그의 표정 하나 하나를 즐기듯 바라보며 건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좀 더 있다가, 이제 급할 게 뭐가 있니?"
"나는 급한데?"
"정연아..."
"아버지가 토요일 날 올라오시겠대. 저녁 식사 약속 없지?"
"이번 주? 안돼."
"왜?"
"그날은.."
"그날은, 선보러 가야 하니까...선보고 와. 그럼 되겠네 뭐."
그는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선보고 싶어서 그랬겠어? 극성스런 마담뚜들이 붙었거
나, 태희가 그랬겠지. 가서 보는 거야 상관 있겠어? 30분이면 충
분하지 않아?"
"정연아.."
"왜?"
"미안해."
나는 일어섰다.
"괜찮아, 그런 정도로 뭘. 다 이해해..."
아무 말도 못하는 그를 두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니가 초라하지 않을 때 떠나게 돼서 사실은 다행이라고, 나는 말
하고 싶었지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