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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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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飛翔)의 날개(1)


BY 로미 2000-11-04


비상(飛翔)의 날개(1)


아이들의 입시 철이면 나는 도박을 하는 기분이 되곤 했다. 성적

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어서, 최종적인 결과가 나오

는 날까지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이때쯤이면 다음해에 나의 운

명도 결정 난 다고 볼 수 있었다. 생각지 않게 덜컥 붙어진 아이

의 부모로부터 다음해에 맡을 아이의 명단이 나오기도 하고, 가

격이 결정되고, 혹시나 떨어져 버린 아이의 부모로부터는 볼멘소

리를 들어야만 했다.

나는 운이 좋았던 편인지라, 그 동안 떨어진 아이가 있었어도 부

모가 나에게 항의 해 오거나 그런 소동은 겪지 않아도 되었지

만, 같은 일을 하는 한 선배는 붙으면 보너스로 아파트를,떨어지

면 배상금을 문다는 어마어마한 조건까지 붙어서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는 것이었

다. 그러나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 계절의 팽팽한 긴장감을 나는

올해는 느긋이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쥐어 짜 논 행주처럼 언제나 힘들었던 아이들이 해방되기

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의 합격을 빌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

태진이 있었다. 나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붙어 버린다면, 그런 다면 굳이 나

는 떠날 이유가 없지 않을까....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밑천 생

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이제, 아무렇

게나 뒹굴며 서랍 속에서 굴러다니는 반지처럼 빛을 잃었어도,

나만 가만히 있는 다면 나는 적어도 보장된 미래를 선물 받을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어째야 좋을지 어떤 식으로 이별을 고할 것

인지 나는 혼자 갈등하며 고향집 내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정연아, 나 붙었다!"

고향집 내 작은 방에서 엎드려 졸고 있던 나는 그의 전화를 받

고 화들짝 깨어났다.

"축하해요.."

"지금 올라 와. 니가 보고 싶다."

"그래요,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정말, 정말 축하해요.."

니가 보고 싶다는,, 그 한마디로 나는 모든 갈등을 거짓말처럼

덮을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사실은 초라해져 가는 그의 모습

이 싫었던 것이고, 떠나야겠다고 했던 것도 실은 그가 떨어지는

걸 전제로 했던 건 아닐까...이제 다 된 것이었다. 아직도 믿기

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그가 내게 튼튼하고 아름다운 성을 지어

줄 것이고, 나는 그 성의 안주인으로 들어앉아 행복한 결말을 맺

으면 되는 거였다. 사랑은,,꺼져 간다고 생각했던 사랑도 이제

다시 피어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막연히 기대하고 싶

었다.

부모님들도 뜬금 없이 내려와 하루 종일 졸거나 먹기만 하면

서 시간을 보내는 나를 불안하게 바라 보셨었다. 그러다 날아든

그의 합격소식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셨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다 되는 거야, 이제. 그 동안의 일들은 다 잊어버려, 그

에게로 향하면서 나는 내게 타일렀다.


그의 작은 방에는 나보다 먼저 그의 어머니가 달려와 있었다. 태

희도 있었고, 평소에는 잘 아는 척도 않던 서울 산다던 그의 먼

친척들도 얼굴을 디밀고 있었다. 태진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니?"

들어서는 나를 보며 그의 어머니는 위엄 있게 말하느라고 애쓰

고 있었다. 그 전이라면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얼싸안다 시

피 반기며 고생한다고, 내 두 손을 잡으며 맞이했었을 것이다.

그 갑작스런 태도의 변화를 보면서 나는, 아, 내가 하마터면 착

각을 할 뻔했다는 걸 알았다. 저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어쩌면

그 전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잠시 잊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언니 좋겠어요, 그 봐요, 저번에 그 거, 엄마 위해서 한 게 아

니라니 까요, 내 말 듣기 잘했죠?"

엉뚱한 공치사를 먼저 늘어놓는 태희나, 같은 서울 아래 산다고

언제 한 번 아쉬운 소릴 할까봐 떨던 그의 친척들도 언제 자신들

이 그를 불러다 저녁을 먹였으며, 용돈을 주었다는 소리를 한 마

디씩 덧붙였다.

나는 무릎 꿇고 앉은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흔

들렸던 것일까. 머리 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아기가 수고했지 뭐유..."

내게도 한마디 거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든지 팔촌쯤 된다는 그

아줌마는 웃으며 손을 포개왔다.

"판검사 사모님 아무나 하나요, 뭐. 오빠 정도면 열쇠가 세 개

는 기본이라는 데, 언니는 땡 잡은 거지 머.."

"오빠 아직 연수원에도 안 들어갔어요. 태희씨.."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들 모두 나

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