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에 그 아이의 머리카락이 잔잔한 물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그 아이의 방향이 바뀌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고, 난 같은 방향이면서도 그냥 모른채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그 아이가 나를 볼까봐서 그래서 나에게 말을 걸까봐서 난 모퉁이를 돌아 그 아이를 훔쳐보았다. 옆모습이 보이는 그 아이의 귀에는 이어폰이 끼워져 있었고, 양손은 바지주머니에 넣은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옆모습은 마치 조각처럼 반듯했고, 그의 눈은 멀리서도 느낄수 있을만큼 밝아보였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지금 누굴 보고 있는거야?'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후 그 아이를 보았을땐 벌써 저 멀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아이만 보고 있으면 아무생각도 나지 않고,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마치 뭔가에 홀린것처럼......
그렇게 매일을 그 아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느날이었다. 내가 아주 오래도록 그 아이를 기억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이 생긴 것이다. 국사숙제로 남자 두명과 여자 두명이서 문화재를 조사해오는걸 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그 아이와 내가 한 조가 된 것이다. 좀 더 가까이에서 그 아이를 볼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는지 하루종일 난 웃으며 보냈고, 집에서는 일요일에 입고 갈 옷을 고르느라 방안은 온통 옷으로 가득했다.
하루하루가 너무도 길었다. 내일이 일요일인데도 토요일이 너무도 길었다. 우리는 오전수업을 다 마치고 내일 갈 준비를 위해 모여서 얘기하기로 하고는 교문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난 청소가 일찍 끝나서 일찌감치 교문에 서서 아이들과 그 아이를 기다였다. 지나가는 아이들과 인사도 하고 퇴근하시는 선생님께 인사도 하고, 지나가는 차들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어깨를 누군가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