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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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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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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BY 낙서쟁이 2000-12-07


이야기 [열 아홉].... 새로운 시작

똑똑~

"네.."

민간호사가 들고있는 꽃보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웬 꽃이야?"
"글쎄요. 배달되어 왔어요. 안에 메모가 있다던데요?"

「안녕하세요.
주말에 아이들과 외출했다가 꽃을 샀습니다.
꽃이라는 소재 하나에 세사람이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선생님께도 작은 행복을 나눠드리고 싶었습니다.
강세희.」

그녀의 가족 인원수 네사람이 느낀 행복이 아니라 세사람이 느낀
행복이라는 점에서 작은 아쉬움이 베어 나오는 메모였다.

승빈에게는 모처럼 기분 좋은 선물 이였다. 지난 학창 시절 2, 3월
이면 찾아오던 졸업식, 입학식 때. 메마른 동백가지에 하얀 스티로폴
을 붙여 서로 어울리는 것과는 상관없이 알록달록 사진에 잘 나오는
소품 정도로 받았던 꽃 이외에 이렇게 꽃선물을 받아 보기는 처음 이었
다. 더군다나 간호원들도 궁금증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배달
되어 온 꽃이라는 점에 승빈은 매우 기분이 좋아 졌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라뇨 아니예요. 그 동안 진 신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신세라뇨? 그런 거 없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건강하시고요? 직업병인가 봅니다. 질문이 영... 하하.."
"아니에요.. 건강해요.. 덕분에.."
"네. 다행입니다."

말이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어색함을 느낀 승빈이 먼저 인사를 건
네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승빈은 언젠가 메모를 해두었던 신용카드 회사의 꽃배달 전화 번
호를 찾아보았다. 마음은 지금 당장 전화번호를 눌러 크고 아름다운
꽃바구니로 답례를 하고 싶지만, 명분이 없었다.

저녁 식탁에서 연신 기분이 좋은 듯이 미소를 띄우곤 하더니 콧노
래까지 흥얼거리는 승빈을 바라보며 명은까지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
다.

"좋은 일 있어요? 오늘은 컨디션이 아주 좋네요?"
"아! 그랬나? 그냥. 오늘은 기분이 좋네. 하하"
"같이 기분 좋으면 안돼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야. 그나저나 종강이 언제지?"

[종강]이라는 말에 명은은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대전에 내려갈 기회가 한동안 차단되는 시점이었고. 그렇게 되면 민
재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순간적으로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얼마 안 남았어요....."
"우리 가평에 가본지 얼마나 되었지?"
"네? 아.. 글쎄요.. 한번 찾아 뵈야죠."
"그래 시간좀 만들어 보자구.."

대화를 더 이끌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 준 남편에게 고마움이 느껴
졌다. 민재를 만나면서부터 남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시댁에도 소홀
히 해 왔던 명은 인지라 할말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어
무뎌지고 있었다. 반면 민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금요일 밤부터
다음 목요일까지는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지는 명은이었다.

승빈은 서재에 들어서며 습관처럼 오디오에 파워를 넣었다. 담배
를 피워 물며 폐부 깊숙이 빨아들인 다음 길게 내뿜으며 허공 속으
로 연기를 날리고 있었다.

띠리리리리....

책상 위 핸드폰 붉은 램프에 불이 밝아지면서 울리고 있었다. 시
계를 한번 올려다보며 전화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강세희예요."
"아. 네.."
"저.. 다름이 아니라요. 지난번에 말씀 하셨던. 가평이요..."
"네. 저희 부모님이 계신 곳이요?"
"네. 그곳에 가 볼 수 있을까 해서요?
"아. 저야 물론 괜찮죠. 괜찮으세요?"

똑똑~

아내 명은이 커피를 들고 들어 왔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던 핸드
폰 사용이 부자연스러워 지고 있었다."

"아. 잠시만요."

"응. 고마워."

아내에게 인사를 건네며 나가 달라는 무언의 암시를 보냈다. 명은
이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뭔가 전과 다를 부자연스러운 느낌 때문이
였는지. 문을 닫고 나갔다.

"아~ 네.. 죄송합니다. 언제쯤 시간이 괜찮으세요?
"선생님은 휴일이 편하시겠죠?"
"네. 아무래도 병원 때문에요."
"이번 일요일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습니다. 그러잖아도 일간 한번 다녀오려던 참이었습
니다."
"네. 그럼 그날 몇 시쯤 괜찮으세요?"
"음.... 돌아올 시간을 생각해서. 한 10시 11시경이 좋겠네요. 괜찮
으시겠습니까?"

승빈은 전화를 끊고 담배 한 대를 더 피우고 커피를 다 마신 후에
가평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께 미리 말을 해두어야 할 것 같았다.
주말에 손님을 모시고 가는 것과. 그 손님에 대해 귀뜸을 해두어야
어머님이 더욱 그녀를 따뜻하게 맞아 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처음 가족들과 함께 온다는 소리로 알아 들으셨다가 손
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웬 손님이냐고 반문하셨다. 설명을 들으신
후 [그래. 함께 오너라.]하며 받아 주셨다.

아버님, 어머님께는 누님에 대한 상처를 일깨워 드리는 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녀를 접하며 서로 마음에서 무
거운 돌덩이 하나씩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
에 추진하기로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