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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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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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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BY 낙서쟁이 2000-11-27


이야기 [열 다섯]... 그녀의 울타리.

"네. 병원입니다."
"저. 원장선생님 계신가요?"
"네. 어디시죠?"
"네.... 저.... 후배인데요."
"네. 잠시만요."

후배로부터의 전화라는 말을 들으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녀에게
서 온 첫번째 전화였었다.

"여보세요?"
"저... 지난번 신세진 적이 있는 강세희예요. 바쁘시겠지만... 도와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물론이죠. 어디 불편하신 가요?"
"큰애 정민이가 안 좋아요. 자꾸 식은땀을 흘리며 자는데 가위에 눌리
는지 헛소리를 많이 해요. 잘 먹으려 들지도 않고요. 제가 병원에 데리
고 갈 수 없는 입장이라. 왕진 와 주실 수 있나요? 도와주세요. 염치 없
지만 부탁드립니다."

목소리에서 충분히 안타까움과 다급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네. 그러죠. 지금 점심시간이니 괜찮습니다."
"약을 챙겨 가야 하니까.. 다른 증세는 없나요?"
"네. 좀 놀란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주소는..."
"차트에 나와 있으니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승빈이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예상치 못했
었다. 아이가 아파서 왕진을 요구 할 정도라니 걱정도 되지만. 그녀
를 그녀의 집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묘한 기대 기대가 되었다. 미
리 알고 있던 길이였기에 그녀의 집에 서둘러 도착했다.

차임벨 주변에 손때가 묻어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이 차임벨을
누를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안에서 차임벨이 울리면 열어
주는 역할 이였을 것이다. 현관문 손잡이에 시선이 옮겨졌다. 동그란
은빛 스텐레스 손잡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딩동...딩동....

"어서 오세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백한 얼굴을 한 그녀가 거실을 투과한 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승빈은 순간적으로 강세희가 너무 여리다는 생각을했다. 현관에서 그
녀의 뒤로 보이는 내부는 깨끗하고 차분했다. 인공적인 방향제가 아
닌 은은한 난 향이 퍼져 있는 듯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는?"
"이쪽 에요."

전화로 설명한 대로 아이는 탈진이 되어 자고 있었는데, 꿈을 꾸는지
가위에 눌리는지 잠꼬대 같은 헛소리를 하며 엄마 아빠를 부르고 있었 다.

"애가 무슨 충격 받을 만한 일이 있었나요?"
".......그랬을 거예요..."
"네?"

수액주사를 꼽아주고 진정제를 주사하며 물었다.

"그동안은... 저희 부부에게 일이 있을 때.... 방에서 나오지 않았었는
데, 간밤에... 저희방 문을 열었다가.... 남편이 저를 때리는걸 직접 봤어
요...."
"....."
"엄마... 라고 소리를 지르다... 기절했었어요."
"괜찮으세요?"
"네. 전 괜찮아요. 정민이가 많이 놀랬을 거예요. 괜찮을까요?"
"네. 정민이는 괜찮을 겁니다. 깨어나면 음료와 부드럽고 소화되기
쉬운 음식을 먹이고. 불안한 마음을 이겨내도록 밤에도 엄마가 옆
에 계셔 주세요. 동화책을 읽어 주는 것도 괜찮고요. 심리적으로 엄마
가 안전하다는 걸느끼도록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세요?"
"네. 전 괜찮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 그런데 차 한잔 드실 시간
있으세요?"
"......."

그녀가 자스민 차를 내오는 동안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았다. 치장과
장식이 없이 꼭 필요한 것들만 있는 그저 잘 정돈된 집이었다. 거실 옆
벽면 사진 속에 행복하고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 있었다. 위선적인 그녀
의 남편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 왕진비는...?"
"후후... 정민이가 좀 낳아 지면 병원에 한번 나오세요. 그때 같이
계산하시죠."
"그래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간호사들이 알지 전 솔직히 얼마인지 몰라서요.
후후.. 제가 터무니없이 더 받아도 안되고. 덜 받으면 또 손해볼꺼 아
닙니까. 후후.."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민이 어머님께서는 친구들도 만나고 하시나요?"
"아니요.... 전혀요."
"이웃들과는 잘 어울리시나요?"
"아니요.... 그렇지 못해요."
"우울증과 나쁜 생각에서 벗어나시려면,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취미를
가져 보세요. 단절된 체 혼자 갇혀 지내는 건 정신건강에 안 좋습니다. 특히.... 정민이 어머님...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죠."
"초라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외출을 허락하지도 않
을거예요."
"아무튼 이렇게 침체되시는 건 위험합니다. 방법을 강구해 보세
요."
"네. 감사합니다. 생각해 볼께요."
"네. 그럼 전 이만 병원에 가봐야 겠네요. 차 잘 마셨습니다."
"네.. 정말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이건 정민이 어머니께서 드세요. 신경안정제입니다."

뜻 밖의 처방에 머뭇거리며 약을 받아드는 세희 손끝의 미세한 떨림과 눈가의 이슬을 승빈은 알지 못했다. 따듯한 배려로 인한 울림이였다.

"네. 감사합니다....."

점심시간 이후 기다리고 있을 환자들 때문에 서둘러 돌아오면서 아쉬
움과 걱정이 남았었다. 애써 감추려 했지만 그녀가 오가며 다리를 조금
씩 절고 있는걸 보았기 때문이다. [간밤에는 또 무슨 이유 였을까? 애가
놀래서 기절할 정도라면 얼마나 혹독하게 맞은 것일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강세희]....
승빈의 마음을 점점 안타깝게 만드는 여자, 보호해 주고 싶은 여자이
다. 지켜주어야 할 것 같은 여자이다.

그녀를 만난 후에는 언제나 누님과 어머니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