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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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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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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BY 낙서쟁이 2000-11-13


이야기 [열 하나]...외출

대전 지리라고는 톨게이트에서 학교로 향하는 길밖에 모르는 명은
으로서는 지금 타고 있는 차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동서남북도 가늠
하기 힘들었다. 예전 같으면 모르는 사람과의 이런 동행이 거북하고
더군다나 늦은 시간의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 불안했겠지만, 명은의
마음은 편안하기만 했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회식이 있다고 말을 해두었다. 늦으
면 자고 올지도 모른다고 말을 덧붙였기 때문에 돌아갈 시간에 쫓기
지 않아도 되었다. 명은이 수업 들어가며 꺼 놓은 핸드폰은 다시 켜
지지 않은 상태이다.

Summer night 섹스폰 연주 음악을 들으며 도착한 곳은 한적한 곳
의 통나무집 이였다. 밤이라 주변의 경치를 제대로 살필 수는 없었지
만, 조명을 받은 통나무집은 아늑해 보였다. 실내의 벽은 황토색 흙벽
이였고. 테이블까지 통나무로 되어 있는 집이었다.

"잘 아시는 집인가 봐요."
"네. 가끔 중요한 손님들을 모시고 오곤 합니다."
"음식이 제 입에는 맞던데. 명은씨께는 어떨지 모르겠군요."
"전 골고루 잘 먹어요. 집부터 맘에 들어 음식도 더욱 맛있을 것
같네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취향을 몰라서 일단 한정식을 택했습니다."

방문을 여닫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며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음식
이 이어서 나왔다. 명은은 음식 칭찬을 해가며 정말로 맛있게 먹었
다.

"맛있게 드시니 참 보기 좋네요."
"후후.. 제가 너무 음식을 밝혔나요?"
"아닙니다. 아주 보기 좋습니다."

차가운 계피 향이 가득한 수정과를 디저트로 놓고 닫힌 방문이 조용
해졌다.

"저......"
"네?"
"여기 제 명함. 제 소개를 안한것 같아서요."
"네.. 제 직업과 연락처는 아시죠? 후후~"
"아.. 네.. 그럼요."
"그나저나 우리 또 만나야 겠는데요?"
"네?"
"37만원에서 오늘 식사를 제하고도 돈이 남았어요. 10원까지 같이
사용해야죠."
"오늘 대접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대접이라뇨. 이건 분명히 명은씨 주머니에서 나온 돈입니다."
"하하.. 그렇게 되나요."
"다음부터는 칼국수나 짜장면, 설렁탕 같은 집으로 모셔야 겠네요.
그래야 저렴한 식대로 인해 여러 번 만나죠."
"3,000원짜리 짜장면 먹고, 고급스러운 cafe에서 7,000원짜리 커피
마시는 건가요?"
"아.. 그럼 돈이 금방 바닥나고 명은씨 만날 명분을 잃게 되는데..
우리 커피는 자판기로 하죠? 그럼 돈을 아껴 쓸 수 있는데. 하하.."

웃음 뒤에 정적과 눈빛이 어색했다. 명은이 수정과로 시선을 옮겼
다.

"명은씨 서울 가셔야 하죠?"
"네. 잘먹었습니다. 아주 맛있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우리 다음엔 언제 볼까요?"
"후후.... 오늘 대접으로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라니깐요.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이 돈 함께 쓰기로 했
잖습니까."
"그럼 어느 시간이 편하신대요? 다음엔 제가 시간을 맞춰 볼께요."
"그러실 수 있습니까? 주말도 괜찮으세요?"
"네.. 시간 낼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럼 우리 계룡산에 갈까요? 그곳에 가서 도토리묵에 빈대떡
먹기로 하죠. 어떻습니까?"
"후후... 산에 가본지 오래 되었는데... 잘 못 올라 갈꺼예요."
"괜찮습니다. 제가 있잖습니까."
"그럼.....다음주 토요일 어떻습니까? 11시쯤 학교 앞에서.. 괜찮으세
요?"
"네. 괜찮아요. 등산화 신어야 겠군요. 후후.."
"네.. 벌써부터 기대 되는군요."
"그럼 올라 가셔야 하니까 이만 일어날까요?"

수정과의 싸한 맛을 입안에 남기며 민재의 권유로 일어섰다. 늦어
진 시간이지만 서울로 향하는 운전이 피곤하지 않았다. 모처럼 즐거
운 시간 이였다. 다음주를 기다리는 것이 명은에게 기분 좋은 설레임
이였다.

"늦었네?"
"응. 조금. 안 잤어요?"
"책좀 보느라고."


"지난번 그 여자는 요즘도 종종 와요?"

크린싱 크림으로 번지르 해진 얼굴을 티슈로 정성스럽게 닦아 내며
느닷없이 명은이 던진 한 마디에 승빈은 당황했다. 강세희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응? 그 여자? 누구?"
"아니, 왜 맞고 산다는 여자. 엉망이 되어 왔었다는 여자."
"갑자기 그 여자는 왜? 그냥 그렇지 뭐"
"궁금해서요. 그리고 그냥 이라니? 무슨 대답이 그래요? 여전히 맞
고 사나? 이혼을 해버리지."

명은이 혼잣말처럼 흘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승빈도 공감하는
바이였다. [이혼을 하지] 하는...

새벽 두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서재로 향한 승빈은 강세희와 큰
누이를 생각하느라 잠들지 못 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이혼을 하지.. 왜 못 했을까? 누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큼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그 남편은
왜? 무슨 이유로 폭력을 쓰는 걸까? 그러고 싶을까? 매형처럼 자라
온 환경이 불안했나? 그녀가 활짝 웃는 날도 있을까? 활짝 웃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래 누나가 웃는 얼굴을 잃은 지 오래였었지?
오늘밤은 그녀에게 아무 일 없을까? 오늘밤도 맞고 있는 건 아닐까?
부부관계는? 그렇게 폭력이 오가는 사이에도 sex가 이루어질까? 그
녀는 감정을 느낄까? 즐거움이 있을까?......]

상념은 끝없이 이어졌다.

"안 자요?"
"응.. 피곤 할텐데 먼저 자. 난 책좀 더 보고."
"커피 한잔 줄까요?"
"그래줄레? 고마워."

승빈은 서재에서. 명은은 침실에서 서로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
고 있었다.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