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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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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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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BY 낙서쟁이 2000-11-10

이야기 [열]..... 명은의 또다른 세상(3)

늦은 시간 때문인지 호텔 커피숍은 한산했다. 입구에 들어서
며 둘러보니 남자 혼자 앉아 있는 테이블은 하나였다. 그래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카운터에서 피켓 걸에게 부탁을 했다. [김민
재님] 이라고 쓰여진 피켓에 메 달린 방울이 딸랑딸랑 울림을
만들 때 역시 혼자 앉아 있던 그 남자가 손을 들었다.

명은이 다가가며 순간적으로 훑어보았다. 입고 있는 체크무
늬 콤비 양복이 잘 어울리는 남자라는 생각을 하며 다가가 인사
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명은 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전화 드렸던 김민재 입니다. 앉으시죠."
"네."


차를 주문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제 부주의로 이렇게 번거로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불법 주차한 잘못도 있습니다. 잠깐 친구를
만나고 나오려는 생각에.."
"저 또한 그날 강의 시간이 늦는 바람에 서두르다 그렇게 됐
습니다. 죄송합니다."
"강의 시간이요? 학생? 교수님?"
"시간 강사입니다."
"그래도 교수님은 교수님이네요."

웃음이 민재에게서 명은에게 전염되어 번져가고 있을 때 커피
가 테이블에 놓이고 있었다. 늦은 시간을 생각해 명은이 커피
에 크림을 섞어 젓고 있을 때. 마주 앉은 민재는 명은을 관찰하
고 있었다.

"그날 메모를 보고서야 차가 그렇게 된걸 알았습니다."
"화 나셨었죠?"
"그 반대입니다. 우리 나라도 이런 양심이 있구나 하는 생각
에 묘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고 웃음이 나왔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우리 나라 운전자들 생각이 사고 내고 안 들켰으면 슬쩍 뺑
소니치는 게 정석처럼 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선 저 부터 그
럽니다. 하하...."
"하하... 그럼 저도 그럴걸 그랬군요.."
"아! 그쪽은... 아니, 이름을 불러도 되겠습니까?"
"네. 편하신 대로하세요. 괜찮습니다."
"네. 그럼 명은씨는 안돼죠!"
"왜요?"
"그럼 우리가 이렇게 만나지 못했을 꺼 아닙니까.."
"후후..."

쉽게「우리」라고 묶어 표현하는 민재의 말에 거부감이 없었
다. 명은도 이 만남이 왠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었
다. 더군다나 민재에게서 남다른 색깔이 느껴졌었다. 안경너머
선한 눈매며 웃을 때 더 없이 밝아지는 표정 등 설레임을 담은
색깔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 차 상태도 그리 심한 게 아니 여서 제가 수리하고 말
을 생각 이였는데.. 그런 메모를 남긴 분이 어떤 분일까 뵙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뵙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후후...그래도 제 잘못이 있으니 수리비는 받으세요."

명은이 낮에 전해들은 금액을 담은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저..."
"네?"
"좀 전에 말했듯이 어떤 분인가 그저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까 전화로 차 수리비 영수처리 하신다고...."
"여자 분인걸 목소리로 알고, 그렇게 해야지 만나 주실 것
같았습니다."
"후후... 그래도 이건 받으세요."

봉투를 민재쪽으로 좀더 밀자. 민재가 봉투를 바라보다 역
시 선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하죠?"
"네? 무슨 말씀이신 지.."
"오늘은 시간상 저녁을 드셨을 테니.. 괜찮으시다면 언제 이
돈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면 어떨까요?"
"글쎄요... 제가 이곳에 살지 않기 때문에.."
"아! 그러세요? 그럼 댁은?"
"네. 서울인데요. 목, 금에만 이곳에 내려옵니다.."
"그럼 늘 이 시간에 강의가 끝나나요?"
"목욕일은 좀 일찍 끝나긴 하지만......"
"네. 그렇군요. 그럼 다음 목요일에 저녁 같이 하실까요?"
"후후..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배상
금이니까요."
"아. 아닙니다. 그 동안 기분도 찜찜하셨을 텐데, 그냥 맛있
는 식사나 한번 하시고 없었던 일로 하시죠. 네?"
"후후.."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 설 때, 민재가 목요일 학교 앞으
로 모시러 가겠다는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헤어졌다. 화장
대 앞에 앉아 눈가에 아이크림을 문지르며 남편에게 민재와의
만남을 말해 주었다. 식사 약속 이야기는 빼고....

"지난번 추돌 사고 차주 만났어요."
"그래? 화 많이 내던가?"
"아니요. 다행이 점잖더라고요."
"다행이네 수리비가 얼마래?"
"37만원."
"앞으로 조심해 방심하다 대형사고 내지 말고."
"알았어요."

혹시 일이 있어 약속이 취소되지는 않을까? 김민재라는 이
름 외에 전화번호도 모르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
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명은은 소풍날을 기다리는 어린애처럼
마음에 잔잔한 바람이 일고 있었다. 목요일 밤의 캠퍼스는 조용
했으며 장미의 향이 가득하게 퍼지고 있었다.

강의 내내 명은은 곧 있을 약속에 신경을 쓰며, 감출 수 없
는 약간의 흥분까지 하고 있는 자신에게 의아해 하고 있었다.
건물을 나서기 전 화장을 고치고 머리를 매만진 후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한번 지어 보였다. 정문 앞에 와 있
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민재는 어떻게 알았는지 강의가 있는 건
물 앞에 서 있었다. 명은이 보일 듯 말 듯 한 엷은 미소와 함
께 목례를 보내며 민재에게 다가갔다.

"명은씨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셨죠?"
"아니요. 못 안녕 했는데요."
"네? 왜요?"
"오늘이 기대가 돼서요."

민재의 말이 인사치레로 하는 허풍이라 해도 듣는 명은은 기
분이 나쁘지 않았다.

"후후...."
"자 명은씨 오늘 내 스케줄대로 움직이려면 바쁩니다. 서둘러
요."
"네? 식사 하는 거 아니였나요?"
"맞습니다. 식사하러 가는 겁니다. 어서 가시죠."

명은은 민재의 만남이 첫 미팅의 맘에 드는 상대를 만난 것
처럼 가슴 설레이고 기분이 좋았다. 민재는 차에 장미꽃다발 까
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 명은은 한층 더 즐거웠다. 보통 길거
리에서 목청 높여 욕설이 오가는 그런 추돌 사고 현장을 보곤
했었는데 지금 옆에 있는 민재와 자신이 정말 추돌 사고로 만났
던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기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
고 있었지만, 민재는 명은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친구 영석을 만나러 [흐린 어느 날의 회상]에 갔다가 명은을
몇번 본 후, 그의 계획에 따라 cafe 유리창을 통해 자신의 차
를 긁는 명은을 보며 '걸렸다!'라고 미소지을 때 부터.. 이렇
게 되리라 알고 있었던 민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