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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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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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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BY 낙서쟁이 2000-11-06

이야기 [아홉]... 명은의 또 다른 세상(2)

명은.. 상호와 상철이를 낳고 늘어난 체중이 빠지지 않고 그
저 보기 흉하지 않을 정도로 통통한 서른 여섯의 아줌마 체격
이 되어 있었다. 애 둘을 갖고 낳으면서 억척스럽게 학위를 받
아 내더니, 운 좋게 강사 자리를 얻었었다.

집에서 먼 대전이라는 점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명은은 자신
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여자였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내 학
위를 업신여기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나가서 더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경력을 쌓는 거
라 생각하며 대전을 오고 가는 일이 육체적으로 좀 힘들고 피곤
했지만 열심히 움직였다. 그 안에서 아이들과 남편이 좀 소홀
해 지지만 모두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처음에 생각과는 달리 대전이라는 공간에 민재가 생기
면서 그렇게 당당하던 명은이 아이들과 가정에 소홀함으로 미안
함에서 죄스러움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

교정에 라일락 향이 넘실대던 봄날. 여유 있게 출발한 시간에
도 불구하고 고속도로의 교통 사고로 인한 체증 때문에 강의 시
간에 임박해서 대전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학생들에게 [시간강사가 그렇지 모~] 하는 식의 이미지는 주고
싶지 않았다.

학교근처 네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학교였다. 급하
게 우회전을 했다. 2차선에 불법 주차 해놓은 차를 발견하고
핸들을 돌렸지만 뒷 범퍼를 긁고 말았다. 차주는 없었는데, 세
워진 차가 검정색의 말끔한 중형차이다 보니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있어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명은은 사고도 사
고지만 늦어지는 강의 시간 때문에 조급했다.

[죄송합니다. 차 뒷부분에 상처를 냈습니다. 시간이 없어 기
다리지 못하고 갑니다.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짧은 메모와 핸드폰 번호를 남겨두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정신없이 강의를 끝냈다.
수업 중에는 핸드폰을 꺼 놓기 때문에 '좀전에 사고를 당한 차
주가 연락을 했어도 자신이 받지 못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
이 들어 다시 사고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그 차는 없었다. [주인이 메모를 봤을 텐데...]하는 생각에
나중에라도 연락이 오겠지.. 하며 서울로 향했다. 차주가 경
우 없고 무식하게 욕설을 늘어놓는 지나치게 불량한 사람이 아
니었으면 하는 바램을 기원했었다. 명은의 추돌 사고가 있은
지 1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메모가 바람에 날아갔
나? 와이퍼에 눌러 놓았는데?]하는 생각을하며 풀지 못한 숙제
를 안고 있는 듯 신경을 쓰고있었다.

그 사고 이후 명은이 종전보다 1시간의 여유 시간을 두고 집
을 나섰었다. 그러나 아직은 학교 생활이 시작이고 더군다나 시
간 강사이니 만큼 학교 어디선가 부족한 수업 준비를 한다던가
어쩌다 수업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는 날은 딱히 갈곳이 없
었다. 그러다 우연히 찾아 들어 간 곳이 학교 앞 cafe 중 하나
인 [흐린 어느 날의 회상] 이였다. 무엇보다 음악이 조용하고
장소가 깨끗하고 밝아서 좋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창가의 구석진 자리가 명은이 갈 때마
다 지정석처럼 비어 있었다. 마치 준비되어 있는 자리처럼...
명은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앉았었고, 책을 읽거
나 수업준비 자료를 검토하거나, 남는 자신의 시간을 보내곤 했
었다.

민재를 만난 그 날도 그 cafe 에 있었다. 식은 커피잔 하나
를 벗삼아 수업준비를 검토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저.. 얼마전 제 차에 꼽혀 있던 명함을 보고 연락을 드리는
데요..."
"아~! 네.. 그러시군요.. 그날은 죄송했습니다. 그날 연락
이 없어서, 제 볼 일을 본 후에 그 자리에 가보았는데 차가 없
어서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전화를 드렸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차는 제가
수리했는데 영수증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수리비가 얼마나 나왔나요?"
"네. 37만원입니다."
"어떻게 전해 드릴까요? 계좌번호를 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면 그냥 만나서 해결하죠."
"늦게라도 괜찮으신가요? 오늘이 아니면 다음주 목요일 오후
에나 시간이 괜찮은데요."
"오늘 늦게라면 몇 시쯤......?"
"10시 이후가 될 겁니다."
"아!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으며, 전화를 매우 가까이서 주고 받
는 듯한 느낌에 갸우뚱 하며, 그래도 차주가 욕설부터 퍼붓는
불량한 사람이면 어떻게 하나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이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안심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