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두울].....재회
병원 개원 전 그렇게 길에서 잠시 스치듯 만났다가 그녀를 두번째
봤을 때 승빈은 그녀의 목소리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저.. 계단에서 넘어 졌는데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아파서요."
"저쪽에 한번 누워 보세요."
촉진을 하기 위해 환자를 살폈을 때 복부 여기저기와 왼쪽 옆구리
에 심한 타박상으로 인한 멍이 있었다. 환자를 한번 올려다보았다. 하
얀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세상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얼굴에 생기가
없었다. 조용한 목소리에 창백한 얼굴을 어디서 본듯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큰누이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몇 해전 목련꽃 후둑후둑 떨어지던 어느 날. 그렇게 꽃잎처럼 가버
린 큰누이. 남겨진 이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심어주고, 훌훌 멍에를
벗어버린 누이.... 승빈은 처음 누이의 선택을 원망했지만 누이에게
그 길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받아 들였었다. 그리고 인연이 끊어진
매형과 조카들. 매형은 그렇다 쳐도 조카들은 왕래를 해도 되련만 어
머니는 허락하지 않았다.
소중한 딸을 때려죽인 놈의 자식이라고 조카들 마저 외면하셨다.
지금 승빈이 바라보고 있는 얼굴에 누이가 있었다.
"다른 곳은 괜찮으세요? 팔에도 멍이 있던데."
차트를 기록하며 환자가 질문의 의도를 눈치 채고 불편해 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물었다.
"네? 네 괜찮아요."
그녀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늑골 골절 같은데요. 일단 사진 한번 찍어 보기로 하죠."
"네."
"전에도 이런 적 있나요?"
"네? 네.. 두 번이요."
"계단을 조심하셔야 겠네요."
간호사를 따라 나가는 그녀가 들어 올 때처럼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와 함께 목례를 하며 진료실을 나갔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다시 진료실을 들어서는 그녀를 보며 [어디선가 본 사람 같은데? 어
디서 봤을까?]하는 생각을 다시 하고 있었다.
"보시죠. 여기. 여기. 두개가 나갔네요."
"약 드시고요. 무거운 짐을 든다 거나 엎드려 걸레질 하는 등 가슴
에 압박을 주는 일은 당분간 하지 마세요."
"네."
"그런데 환자분 목소리가 귀에 많이 익네요?"
"네?"
"후후..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 나갔다. 그날 다른 환자들을
보면 서도 순간 순간 승빈은 목소리의 기억을 더듬었다. 아는 얼굴
은 아니였는데, 낯설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
기 때문에 한번쯤 왔었던 환자라면 승빈이 쉽게 기억했을 것이다.
[분명히 들었던 목소리인데... 얼굴도 낯설지 않고.. 누이를 닮아서
그런가? 어디서 봤을까? 아니 도대체 어디서 들었던 목소리일까?]
다행이 궁금증은 오후에 풀렸다. 입원실 조명이 너무 어두워 인테
리어 공사를 추가로 받고 있었고, 공사를 하기 위해 인테리어 업자가
병원을 방문하면서 그녀를 기억해 냈다. 그러나 기억해 냄과 동시
에 승빈은 또 다른 의문을 갖었다. 잠시 잠깐 스치듯 나눈 대화의 목
소리를 자신이 기억에 담고 있다는 사실에. 더군다나 그냥 흘려 버
려도 되었을 궁금증을 하루종일 중요한 숙제처럼 풀고 있었다는 사실
에 의문이 가면서 입가에 미소를 흘렸었다.
그날 퇴근길 병원 앞 사거리에서 신호대기에 걸려 있을 때 그녀
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이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녀
손에 들린 비닐 봉지를 보아 저녁 식탁을 위해 슈퍼에 다녀오는 길
인것 같았다. 승빈이 신호를 받아 출발을 하며 [저 상황에서도 가족
을 위해 장을 보러 다니는 군.. 정말 누이를 닮았어.] 하는 생각을 했
었다.
그렇게 그녀는 승빈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가
고 있었는데, 그 후로 그녀는 계단에서 굴렀다. 넘어졌다. 부딪혔다.
하며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 졌다. 승빈은 처음 그녀를 진찰하면서
[가정 폭력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었고, 그러면서 의사가 아닌 남
자로써 약간의 안쓰러움을 느꼈었다.
그녀가 어떤 식으로 어디에서 누구에게 구타를 당하는 지는 몰라
도 그 상대자가 아마도 남편일 것이리라. 그리고 그 남편은 겉으로 볼
때 집안에서 마누라를 개 패듯이 패는 인상은 아닐 것이다. 라고 짐작
했다. 왜냐하면, 치사할 정도로 그녀의 상처가 늘 옷에 가려 안 보이는
부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