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호오빠와 만난건 지난 96년이었다. 한참 경제 빵빵하게 돌아가고 내가 다니던 회사 역시 인원의 늘어났다. 그 바람에 나도 물론 입사를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내겐 영호오빠는 일명 닭머리(속어로 닭대가리)라고 불렀다.
아마도 그것이 오빠와 나와 가까워지고 또 나 혼자 가슴앓이를
할수 있었던 그런 친밀감을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무실에 앉아 처음 접하는 사회에 적응하려고 할때 영호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사무실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못했던 난 그때 오빠에게
"아! 닭대가리여" 라는 외마디 소리를 외쳤다.
오빠는 깔깔 대며 웃으며
"야! 내게 왜 닭대가리냐?!"
"네! 그냥 죄송합니다."
그때까지 순진했던 난 아차 싶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오빠는 좋게 봤었나보다. 며칠이 지난 후에 오빠는 내게 내 삐삐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난 그때 아무런 생각도 서스럼도 없이 오빠에게 내 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렇게 가끔 오빠는 내게 음성도 남기고 전화도 하고 또 추석때 집으로 전화를 해가면서 통화를 했다.
그때만해도 오빠에 대한 나의 그런 감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오빠와 같이 퇴근을 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 작은 티코를 타고 근처 공원에 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사는 얘기며 회사 얘기며 그리고 오빠는 자신의 여자친구였던
언니에 대해서 내게 얘기를 했다.
사는 얘기를 하면서
"너도 그런 생각하니?"
"그럼요. 사람들 앞에서야 이런 얘기 쑥쓰러워도 못하지만
저도 생각이라는게 있는데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은 밤 10시로 나의 발걸음은 집으로 향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뒤 오빠와 넌 더 친해졌다. 그리고 내가 일요일날 회사에 특근을 하여 근무를 하고 있을때조차도 오빠에게 전화해서 나오라고 연락을 하면 오빤 나오곤 했다.
그런 하루였다. 역시나 난 오빠에게 전화를 했고 내 회사 동기였던 연수와 함께 오빠에게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자면 졸랐다.
오빠는 그 차를 끌고 멀리 대청댐까지 갔다.
그 순간 난 너무나도 무서웠다. 오빠와 함께 가고서도 오빠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 8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얼마나 울었던지... 도대체 무슨생각이었을까?
그때 였나보다 그 순간이 내가 오빠를 남자로 본 순간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