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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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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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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초이스 2000-10-10






순정(純情)제3회..



우리의 시선이 처음으로 얽혀드는 순간

그림자까지 얼어붙는 전율로 몸을 떨어야 했다

이름이 무엇이고

나이가 무엇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아무 것도 알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살껍질 안에 기거하는 두 영혼의 이끌림으로

우리는 자석과 같이 다가들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어떠한 인위적인 몸부림도

작위적인 사탕발림도 필요 없이

우리는 이미 하나의 기쁜 영혼이 되어 있었다

############################################################



"저....경아씨께 제 연락처를 가르쳐 드리고 싶은데요."
"?"
"그냥 얘기도 통하는 것 같고 동생 같은 느낌에....전화번호 적어 드려도 될까요?"

그가 자신의 집 전화번호와 핸드폰번호를 메모지에 적어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경아씨는 핸드폰 없어요?"
"네....큰오빠에게 잠시 빌려 줬어요. 울산에 있거든요. 며칠 후 받을 거에요."
"가르쳐 주시면...."
"그러죠."

메모지에 나의 핸드폰 번호를 적고 그 아래에다 덧붙여 적었다.
'무슨 일을 하시든 힘내세요. 잘 하실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라고....

세호가 돌아오자 우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태연히 앉아 있었다. 그의 차가 집앞 골목길 입구에 다다르자 세호가 말을 꺼냈다.

"너네 집에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자. 여기까지 태워 줬는데 그냥 보내기냐?"
"그래도 됩니까?"

그가 시동을 끄며 말했다.

"지금 몇시죠?"
"11신데요...."
"안 되겠네요. 친구가 퇴근해서 돌아온 시간이라....미안해요. 다음에 차 한잔 살게요."

쓸쓸히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고 있을 때까지도 그의 차는 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 했지만 함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어디 갔다 오니? 웬 잠수?"

집으로 들어서자, 함께 방을 쓰던 세연이 화장을 지우다 말고 내게 물었다.

"비밀이다."
"뭐? 비밀? 그런 게 어딨어?"
그녀가 나를 재촉했다.

"야! 넌 남자 많이 사겨봐서 알겠지? 이혼 남 말야...."
"이혼 남? 야! 난 이혼 남은 취급 노이올시다."
"그 이혼 남도 넌 노이올시다! 근데....그런 사람은 사겨도 좋을까?"
"꽤 어려울걸? 여자가 고생이야. 남자가 성격이 좋든 나쁘든...."
"그래?"

그녀의 부정적인 말에 난 한동안 멍하게 거울만 바라봤다. 얼굴에 콜드크림을 잔뜩 바른 세연이 나에게 다시 재촉하듯 물었다.

"너....설마....요즘 이혼 남 꼬시고 다니니?"
"말하는 거하며....꼬시다니....단지 좀 끌릴 뿐이야."
"조심해라. 이혼 남은 끝낼 때 도 어려워. 웬만하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럴까? 야! 전화 좀 줘봐!"

막무가내로 그녀의 핸드폰을 뺏어들며 나는 메모지에 적힌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가 내 귀 언저리에서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에요. 선경이...."
"아, 네....잘 들어 가셨습니까?"

나를 걱정해주는 그의 목소리....

"네. 덕분에 편하게 잘 왔어요."
"다음엔 꼭 커피 한잔 사주세요....하하"
"그러죠."
"전화 자주 해 주세요. 동생처럼 느껴지는데.... 저도 선경씨 같은 동생 만나서 기쁩니다."

어색한 통화를 그는 애써 바꿔보려 노력하고 있음을 느낀 나는 통화를 그만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세연이 한 마디 했다.

"아까 동일오빠 찾아왔더라. 여기서 한시간이나 기다리다 갔어."
"왜 방에 들이니? 그냥 가라하지...."
"야! 네 손님한테 친절히 대해 준 것도 죄냐? 그나저나 오빠랑 싸웠니? 요즘 네가 전화도 않하고 피하는 것 같다며 하소연만 늘어놓고 가더라....불쌍해 보이더라. 전화 좀 해줘."

역겨운 사람....잘난 체 하는데 도사....그런 그가 너무 싫었다. 더구나 내 친구에게까지 하소연을 늘어놓고 가다니.... 그를 진작에 냉대해서야 했었는데....

"정말 싫다. 그런 폼생폼사는...."
"응?"
사실 난 사귀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남들보다 배운 게 많았고 무슨 일에든 박식했다.
그러나 난 그의 그런 점이 싫었다.
자기가 안다고 해서 남을 무시하듯 대하는 그의 태도가 싫었던 것이다. 나이는 나보다 네 살 많은 25살이었고 외모도 꽤 준수한 편이며 성격도 그다지 모나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어딘가 모르게 사람을 무시하는 듯 한 조금은 기분 나쁜 느낌이 섞여 있었다.
그런 그가 내게는 부담이 되었고, 그 부담은 점점 그를 내 마음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아침 일찍부터 집으로 찾아왔다.
잠이 덜 깬 체로 그를 맞이하고는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쥐죽은 듯 누워 있을 때 그가 어느새 침대 아래에 다가서며 애절하게 말해왔다.

"경아....내가 뭘 잘못했니...."
"뭐가? 나 지금 잠 덜 깼어. 나중에 와."

내 옆엔 세연이도 함께 잠을 자고 있던 터라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요즘 왜 나를 피하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야?"
"에이~ 귀찮아! 나중에 오라니까! 꼭 친구 앞에서 이런 얘길 해야해?"
그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행동을 했다.

"경아....내게 잘못이 있다면 고칠게....내, 이렇게 빌게."
그는 무릎까지 꿇어가며 두 손 모아 빌기 시작했고, 나는 갑작스레 밀려드는 짜증에 벌떡 일어나며 그에게 소리 쳤다.

"화난 거 없어. 잘난 오빠에게 내가 화낼 이유가 없잖아."
"에이~시끄러!"

잠자고 있던 세연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으며 짜증을 내자, 난 매몰차게 그에게 말했다.

"날 우습게 아는 거야? 아침부터 찾아와서 이게 뭐야? 제발 가 줘! 나 피곤해!"
"제발....경아....제발...."

그는 서글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애원했지만 그가 그럴수록 난 그가 싫었다.

"가! 가란 말야! 제발! 내게 경아라는 소리하지마! 그 이름은 아무나 내게 부를 수 없어."
그의 애원에 나는 이미 피곤해져 있었다.

거의 30분 가량을 옥신각신 하며 밀고 당기는 싸움을 계속 해야했다. 내 인내심이 폭발하는 그 순간이었다.

"난 너 포기 못해! 내가 잘못 한 것도 없다며? 절대....포기 못해."
"너 또라이니? 제발 가! 꺼지라니까!"
난 옆에 있던 티슈 상자를 그에게 던졌다. 그렇게 못되게 굴어도 그는 그 자리에 무릎 꿇은체 부동자세가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도 생긴 거야? 난 그전엔 널 포기 할 수 없어. 내가 못나서 네게 다른 사람이 생긴 거라면 할 수 없지만.... 그전엔...."
"그래....나, 다른 사람 생겼어. 그러니까 가!"

그의 말에 불현듯 스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규용씨....그 사람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난 내가 그에게 매몰찬 또 다른 이유가 바로 규용씨에 대한 감정이 섞여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와 헤어지기 위해 너, 거짓말 하는거지?"
"아냐....정말이야. 이젠 오빠가 싫어졌어. 나, 맘에 두고있는 사람 있어....그러니까 가!"
"그래....네 말이 사실이라면....내가....물러설게."

그는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뒤돌아 섰다. 그의 마지막 뒷모습을 지켜보는 나 또한 썩 유쾌한 감정만은 아니었다. 그가 가고 난 뒤, 이불 속에서 키득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웃니?"
"너....좀 심한거 알아?"
이불을 걷으며 일어서서 말하는 세연에게 나는 무덤덤 하게 대답했다.

"아마 내 평생 남자에게 이렇게 못되게 군건 첨일거야...."

'난, 아마 천벌을 받을 거야....'

그에게 너무나 냉정하게 대했던 나였으므로 마음 한 구석 에서는 그 죄값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연이 씻기 위해 타월을 손에 쥐고 일어서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너무 심했어. 그래서 웃음이 나오더라."
"심하긴 했어. 그렇지만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여자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겠지. 그 사람의 그런 점이 싫어. 자기가 영화속 주인공인줄 착각하는...."
"왜 너의 가치를 그렇게 떨어뜨리지? 그 사람이 너에게만 무릎을 꿇은걸 수도 있어."
"아니,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거야. 나 아닌 다른 남자는 너에게 이렇게 까지 애원할 수 없을 거라는....여자에게 무릎 꿇는 진정한 남자....이 정도면 충분히 가치를 높이는 게 되잖니? 어쨌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

"그는 항상 그런 식이야. 내가 사람을 평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못되지만 그 사람이 내 게 원하는 건 알 수 있어. 바로, 자신의 생활 속에 안정적인 필요로만 생각하는 거....그는
날 사랑한 게 아니라, 날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을 사랑한 것 일수도 있어. 당장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아무여자나 일단 꼬시고 보는 거....이렇게 말하면 내가 아무 여자가 되 버리는 셈이지만 그 사람이 원하는 건 가정이야....난 그런 사람에게 내 평생을 맡기긴 싫거든."

실제로 그는 나에게 몇 차례 동거를 요구 해왔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내 감정이 뚜렷하지않은데 섣불리 동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구나 난 남자와의 동거는 생각지도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지금 사귀는 동안에도 질려오는 그의 행동을 받아줄 큰 그릇이 되기엔 내가 너무 힘겨울 것 같았고, 사랑이라고 명확히 밝힐 수 없는 감정만으로 그에게 나를 맡긴다는건 모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와 헤어졌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여자는 누군가와 헤어질 때 상대가 밉든 좋든 기분이 조금은 우울하다던데 난 오히려 홀가분했다. 겨우내 걸치고 있던 무거운 코트를 이제 막 벗어버린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아마 난 세상에서 가장 독하고 못된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지 명확한 사실은 한차례 소나기가 물러갈 때 즈음 흰 구름이 먹구름을 밀어내듯이 내 감정의 하늘에서도 규용이란 그 사람이 그를 완전히 밀어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사람과의 3시간 가량의 대화가 동일이 그와 30분의 대화보다 짧게 느껴졌다면....단지 사람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그런 느낌이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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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고 싶은 것을
내 것이게 할 수 없다는 현실....
그 현실을 느낄 때마다
나 자신의 무력함을 발견하는 나....
96년 6월 17일 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