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정문 앞에서에서 505호 여자를 만났다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가 말을 붙였다.
“ 안녕하세요 ”
“ 아... 예... ”
간신히 영선을 돌려보내고 온 뒤라 피곤이 겹쳐와 대충인사를 했다.
“저......”
약간씩 불어오는 밤바람에 흔들리는 전나무 가지가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서도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빌라 입구에 들어서서야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미소를 잃지 않는...
비록 술장사를 하지만 그녀에게는 천박함이 없는 것 같았다.
한 아파트 한 동에 살지만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 마주 대하기란 처음이다.
내가 동거한 여러 여자들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몇 일전...여자친구분이 찾아 왔던데요..."
(아...영선이가 왔다 갔구나...) 영선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초인종을 계속 눌러서 제가....
전할말도 남기지 않고 그냥 갔어요...."
“아.. 예.. 여자 친구 아닙니다, 제 친구 아내입니다..“
그녀에게 내가 왜 영선이가 내 여자친구가 아니라고 굳이 변명을 했을까?
묻지도 않은 일을?...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 것 같았다...
옆모습이 참 예쁘게 보였다.
“5층 ?”
“아 ..예...”
닫힌 에르베이트 안에서 서로가 뒤늦게 층 단추를 누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겸연쩍어 하며 내가 누르자,
그녀의 손이 곧 바로 내 손등에 닫아 겸연쩍게 웃었다.
순간 웃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가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스쳐갔다.
(누구였을까?....어디서?....)
내가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는지 나를 한번 쳐다보며 씩 웃었다.
"저..."
순간 에르베이트 문이 열렸다.
그녀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앞서 갔다.
그녀의 연약해 보이는 뒷모습이지만 세상을 탐색하며
풍부하게 삶을 살 능력이 있어 보였다.
나는 사람들과 벽을 쌓고 살고 있고 이웃들과 말하는 것을 두려워 했다.
언어란 숨쉬지 않는 돌 바위, 나무, 적어도 인간들이 보기에 생명력이 없어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이웃과 말하기를 꺼려함으로 주위 사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고 생명력을 잃어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
그녀는 주위에 하나하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녀가 자기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며 가볍게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내 주위에 한 사물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입구에서 그녀의 만남이 하루 종일 우울하고 불안했던 춘배과 영선의 일을 잊게 했다.
샤워를 하다 순간 505호 여자의 얼굴이 생각났다.
" 그녀다!!"
바로 그녀...미현이....
내가 왜 그녀를 잊고 있었는가?
나의 가슴은 알 수 없는 파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주위의 모든 생명력 없는 것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