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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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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외눈박이물고기 2000-09-23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한지가 벌써3시간이 훌쩍 넘었다.
뭐라고 해야하나? 남편이 현관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머리속은 온통 하나의 전화번호만이 맴돌고 있었다.
어느새 내 손가락은 전화기버튼에 가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_**** "
몇번의 신호음이 울린다.
'미쳤지....'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화기를 귓가로 가져가자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목안이 갑자기 뜨거워 지는것을 느꼈다. 심호흡을 하고 수화기를 가까이 댔다.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내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갑자기 스쳤다.
"저는...박현우씨 아내되는데요..."
"......"
차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말이 없었다.
지금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 만날수 있을까요?"
갑자기 어디서 용기가 막 생기기라도 하는건지 내 입술은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만나고 싶어요...그래줄수 있죠?"
".............네."
뚜뚜뚜뚜...이미 끊어진 수화기를 내려 놓지도 못한채 멍하니 화장대 거울을 쳐다보았다.
자꾸만 눈꺼풀을 깜빡이는데도 야속한 그것이 볼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이러면 안돼는데...난 절대 이러면 안돼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은 벌써 흐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렸을땐 벌써 집안이 어두워져 있었다.
불을 켜고 거울속에 비친 내모습은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형상을 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를 넘어 가고있었다.
부리나케 거실로 나가 집안을 어둠에서 해방시켰다.
어쩌지? 어쩌지?...
이리 저리 허둥대던 내 발길을 붙든건 아침에 했던 남편의 말이었다. "오늘 늦어. 회사일이 요즘 갑자기 바빠져서..."
그래. 그랬어. 이젠 뭘해야 하나? 갑자기 내가 할 일이 없어져 버렸네. 또한번 상실감이 밀려왔다.
"난 뭐지?... 도대체... 난...뭐야?"
남편이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 더이상 할 일이 없다. 회사일로 다른 모임으로 저녁을 먹고 들어 올때가 많았지만 그때는 이런 기분이 아니었는데.
그땐... 그때는. 음악도 크게 틀어 듣고 보고싶은 비디오도 빌려다보고 하루가 온통 내것처럼.. 그런 사소한거에 행복감을 느꼈었다.
하루를 남편을 위해 준비하는게 내 행복이라 생각했는데.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주말이면 남편이랑 근사한 저녁을 먹고 영화도 보면서
이제 8번이나 지난 기념일이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붉다 못해서 검어 보이는 장미를 한다발 내밀며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 아침도 남편은 출근길 인사를 잊지 않았고 사랑한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일주일전 남편의 지갑에서 그 사진만 보지 않았더래도....
남편의 지갑은 금기물이었다. 내스스로 남편 지갑은 절대 열어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결혼한 선배언니들이 언제나 전화해서 잊지 않았던 말이 있었다.
"얘. 언제나 남편이 너만 사랑하며 살것 같지? 하지만 살어봐라. 남편도 어쩔수 없는 남자일뿐이야. 그래서 한번씩은 점검을 해 봐야할 필요성이 있단 말이야. 어? 애가 웃네? 그래.그래. 넌 아니라 이거지? 잊지마. 지갑이랑 주머니는 한번씩 정기점검을 해야해...."
하지만 그날저녁 호기심과 장난기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금기를 어겼다.
그 댓가는 정말로 냉혹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것 이었다.
남편의 지갑에 고이 간직된 사진한장.
보란듯이 보여지는 위치에 꽂혀 있지는 않았지만 그 사진을 잘 간직하고 싶은 남편의 마음을 알수가 있었다.
3살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단정해 보이는 여자.
그리고...내 남편!
그날 이후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와 무관한 여자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