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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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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앵두엄마 2000-09-22

현관을 들어서는 남편을 한참 노려보던 나는 그의 품에 있는

사과 바구니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왠거야. 생전 과일같은건 안사오더니"

빨간 홍옥이 가득담긴 바구니를 나에게 넘기며 남편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애구. 그거 안고 오는데 침 고여서 죽는줄 알았내.

홍옥이 좀 시냐. 그거 무슨 맛으로 먹는지."

"근데, 나 먹으라고 사온거야"

내가 함박 웃으며 그에게 묻자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과 손수건을

꺼내 화장대 위에 내려 놓았다.

"그 사람 만났어"

"누구"

"새벽에, 그 아줌마 남편"

"응?"

"회사로 전화와서 만났지. 배고파 얼른 밥먹자"

남편은 목욕탕으로 들어가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사과 바구니를 싱크대위에 내려두고 반찬을 꺼냈다.

내손은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지만

내귀는 목욕탕에 있는 남편에게 가 있었다.

"머래"

나는 관심없는 듯이 슬쩍 물어보았다.

발을 수건으로 닦으며 밖으로 나온 남편은 달려오는 딸아이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안됐더라. 그사람. 그 부인이 말을 못하는 사람이더라고"

시선을 그대로 씻고있는 상추에 고정하고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려와 싱크대 가득이 되었다.

"머해."

남편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밥을 퍼 식탁에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6살먹은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대. 그래서

아줌마가 교회에 새벽기도 다니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나봐. 아줌마가 새벽에 놀래고 나서 정신을 좀 차렸나봐

고맙다고 하면서 저 사과를 갖다주더라. 그리고 담에 꼭 같이

보자고"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밥먹는데 열중했다.

"된장이 좀 짜다"

"또 다른말은"

"남자가 참 착하더라. 요즘 보기드문 사람 같았어.

된장 진짜 짜다. 간 봤냐"

"물 부어서 먹어. 그럼"

생각 할 시간을 안줘요 애그.

과거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현실의 문을 닫아 버렸다.

어두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모로 누었다.

마음이 아프다.

바깥의 내 현실은 딸아이와 히히거리며 쩝쩝거리며 달그락

거리고 있었다.

나를 알아본걸까.

나는 불연듯 사과 생각이 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남편은 식사를 끝내고 빈그릇을 싱크대 넣고 있었다.

"사과는 머라면서 준거야"

"그냥 주더라. 건 이상하더라. 부인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러대. 자긴 아내를 무척 사랑한대. 아이의 죽음보다는 아내의

절망이 더 보기 힘들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그랬지.

저도 제 아내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히히히. 앵두도 엄마가

제일 좋지?"

아이를 빙그르 돌리며 거실로 남편이 나갔다.

그날 저녁 남편은 다른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화장대위에 놓인 남편의 명함집속에서 나는 그의 명함을 찾아

보았다.

선명하게 씌인 그의 이름 석자.

여전히 착한 마음으로 사는 그에게 이젠 행복만이 다가오길

빌어주면서 그의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도 당신을 젤루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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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첫사랑과의 재회를 마음에서 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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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