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계절에 따라 굵기나 양이 다 다르게 내린다. 겨울을 재
촉하는 비가 종일 내렸다. 한개의 이파리도 남아있지 않는 나
무가 곧 추위에 떨게 되겠지...나도 이젠 정리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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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아 있지 않은 곳이 없었고, 추억이 느
껴지지 않는 곳이 없는 이곳에서 계속 장사를 하면서는 그를
잊을 수가 없을 것 같기에....그는 언제든 또다시 불쑥 찾아
올 수도 있는 사람이기에...
가게에 들어서는 그가 보인다,그는 언제나 코를 벌름거리면
서 들어오곤 했지. '으흐음! 좋다,언제나 똑같은 선배 냄새
!'
'내 냄새가 어떤데? 늘 같애?'
'네,포근한 냄새.'
'냄새에 포근하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어딨니?'
'여기요,
형광등을 다는 그도 보인다.
'이런건 남자가 하는 거예요. 무슨 여자가 무섭지도 않아요?'
'이까짓걸 뭘 못해. 나 이런거 얼마나 잘 하는지 모르지?'
'난 더 잘해요. 그니깐 담부턴 나 올 때까지 기다려요. 여자
는 이런거 못 한는 척 하는 게예요.'
'내가 여자루 보이니?'
'아니요, 아줌마루요.'
셔터 오른쪽 꼭대기에 스티커 사진이 하나 붙어 있다.
'우리, 저거 한번만 찍어요. 군대 있을 때, 쫄따구들 들어 왔
는데 , 수첩에 여자친구랑 찍은 스티커 사진을 안 붙인 애들
이 없더라구요. 나 그거 무지 부러웠었어요.
사진 찍으며 갖은 장난을 다 해대던 그.
'이거 우리두 핸드폰에 하나씩 붙여요.'
'...난, 못붙이잖아.'
'.....그렇...겠죠....내가 다 가질 께요.' 라면서 전화기에
수첩에 마구붙이더니 하나를 셔터 꼭대기에 붙여 놓았다.
'여기는 선배와 내가 반씩 만든 매장이니깐,여기에두 하나
붙일께요. 다른 사람들 눈엔 잘 안 띌 거에요.' 그랬던 것이 그
거센 장마비에도 안 떨어지고 용케 붙어 있었다.
거울 속에서 그가 장난스레 나를 부른다.
'선배, 이리 와봐요, 여기 영화배우 왔어요.'
'어디에?'
"여기, 거울 속에요.'
'어디? 여자 모델 밖에 없는데, 뭘.'
구석구석에서 그가 불쑥불쑥 장난치며 튀어나와서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었는데, 그것도 이젠 추억이란 상자에 담아서 가슴
속에 묻어 두어야 한다.
매장은 인수 할 사람이 쉽게 나서질 않았다.IMF 여파로 내놓
은 매장들만 수두룩 할 뿐이었다.
핸드폰 번호도 바꿨다.번호를 바꾸기 전에 마지막이라 생각
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