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게 그런 사랑이 시작되었던 건지.
그걸 사랑이라 불러도 되는건지.
한 해가 지나고 다시 6월이 되었다. 내 첫사랑이 결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여자, 사랑해?
내가 물었을 때 사랑하니까 결혼하는 거야, 그는 말했다.
그랬다.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사랑하니까 결혼하는 거다.
그런데 왜 결혼한 모든 사람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할 순 없는 걸까. 나 또한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헤어진 거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나는 남편을 사랑했기에 주해를 사랑하고 우리 가족을 사랑했기에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라고. 아니 그게 아닌지도 모른다. 난 그와 살고 싶었고 그래서 가정을 포기하고 싶어했던 건지도. 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불과 일 년전 일이 까마득하게 먼 옛날 일처럼 여겨진다.
내가 결혼을 했었던가. 그를 사랑했었던가.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다. 모든 게 희뿌옇게만 느껴진다.
그의 말처럼 나는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가 보고 싶어서 울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가끔 남편이 생각났고 남편과의 연애 시절이 떠올랐을 뿐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을 주해를 생각하며 멍하니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어? 궁금해서 전화했어.
잘 지내요. 당신은요?
나도 잘 지내.
우리는 의미 없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생각보다 남편 목소리는 활기 차 보였다. 내 목소리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건강하게 들려졌다.
목소리 들으니 좋은 거 같네. 혼자 사니까 재밌어?
남편의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난 혼자 사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이렇게 혼자 생활하는 걸 꿈꾸었었단 게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다.
주해는 잘 지내요?
내가 묻고 응, 남편은 짧게 대답했다.
주해 얘기를 하는 순간 잠깐이었지만, 누군가가 비수로 내 가슴을 찌른 듯한 통증을 느꼈다. 난 그 누군가가 나임을 깨달았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새 장가라도 가는 거에요?
나는 정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남편에게 농담을 할만큼.
그랬으면 좋겠어?
아니다. 솔직한 내 마음은 아니다. 남편이 아니 이젠 남편도 아니지만 계속 남편이라 부르고 싶은 이 사람이 평생 재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 좋다는 사람이랑 하면 좋죠, 주해에게도.
이것도 본심이 아니다. 주해는 내가 키우고 싶다. 아직까지 난 주해에게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주해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이야?
남편이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글쎄, 이젠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우리 주해만 보고 살지, 뭐.
남편은 여전히 활기 찬 목소리로 말했지만 난 그 목소리가 너무도 쓸쓸하게 들렸다. 목이 메어왔다.
나 아마 미국가게 될 거 같아. 형 사업 좀 도와줄려구.
남편의 형은 내가 아주버님이라 부르던 그 사람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신다. 이제 한국에 남편은 없는 건가.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는데. 정말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주해도 가는 거에요?
그렇게 될 거 같애. 많이 생각했는데 그게 주해를 위해서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당신 생각은 어때?
그러고 보면 남편은 항상 내게 물어보곤 했었다. 결혼을 할 때에도 이건 어때? 이 색깔이 낫지 않아? 당신 생각대로 해. 그게 좋을 것 같은데. 언제나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근데 나는 왜 그런 남편을 두고 그에게 끌렸던 것일까.
그럼 한국에는 안 오는 거에요?
모르겠어, 당신이 부르면 가끔 다녀갈게.
남편은 농담인 듯 진담을 말했다.
잘 가요.
내가 말하고 남편이 그래, 했다.
그럼 끊을게요.
나는 수화기를 오래 들고 있으면 아무래도 울 게 될 거 같아 그만 끊으려 했다. 남편이 내 이름을 불렀다.
윤아,
얼마 만에 들어보는 내 이름인가. 결혼을 하고는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던 남편이었다.
내 첫사랑이 누군 지 알아? 너야. 그 말 꼭 하고 싶었어. 잘 지내.
뚜. 뚜. 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음이 들려왔다.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가만히 오래도록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