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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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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삶의 의미.(1)


BY 로미 2000-10-04


24. 내게 남은 삶의 의미.(1)

나은이는 한 밤중이 되도록 징징거리며 나를 심란하게 했다. 달

래고 어르다 지친 나는 결국 매를 들었다. 딸애의 종아리에 맺

힌 피 멍은 내 삶을 향한 채찍이었다. 아줌마가 와서 나은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매를 던지고 주방으로 달려가 소

주병을 들고 마셨다.

-정말 거지같애.....

거지보다 못한 삶이라고,,

나는 방향을 잃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 건지, 어떻게 가야하

는 건지. 누군가 내게 일러준다면 시키는 대로 그냥 끌려서 가

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친 상태였다.


나은이가 잠들었다고 아줌마가 와서 일러주었다. 나는 멍하니 천

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알았다고,,고맙다고 겨우 말하고는 일어

나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언니, 나예요. 나은이 엄마요. 잘 지내셨어요?"

"니, 술 마셨나? 목소리가 와 그런데?"

"조금이요,,,,신애는 잘 지내요? 날은 잡았어요? 요새 통 소식

이 없어서 궁금했어요."

"신애? 말로 다 몬한다....내 속 썩는 거 누가 알겠나?"

"왜요?"

"그 문딩이 가시나가 얼라를 가졌다꼬 뻥쳤다믄 말 다했재."

"예?"

"하이고 마, 처녀가 할 거짓말이 따로 있재, 미친 가스나다! "

"그래서요?"

"그 노무 자슥이 도망가 뻐렸다. 잘된기라 그기는..근데 이 가스

나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쌌고,,지금 이불 뒤집어쓰고 꼼짝도

안 한다...니가 함 전화 해 볼래?"

"네, 알았어요."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 설움을 전하려고 전화를 했었

는데, 혹 떼려다 왕창 붙인 그런 기분이었다. 왜, 내가 아는 사

람은 행복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까..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

다.

신애는 핸드폰을 꺼 놓고 있었다. 나는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를

내려 놓았다.

-신애야, 지금쯤 혼수준비로 바쁠 줄 알았는데,,,무슨 일이니?

나한테 전화 좀 해 주렴. 보고 싶다..참, 우리 집에 올라오든

지..


무엇이 잘 못 된 걸까..

혹시 나와 상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 속이

빙빙 돌며 몽롱 했다. 아마 술기운 탓이겠지. 이제 모든 게 정리

되면 나는 나은이와 떠나야 겠다...어디든지...아무도 없는 곳으

로...


그 밤, 산부인과 의사가 손을 집어넣어 내 자궁을 꺼내 드는 악

몽을 꾸었다. 그녀는 꺼내 든 자궁을 높이 쳐들며 내게 말했다.

-죄 많은 자궁이군..이런 건 없어져야해!

-제발,,선생님 살려주세요!

철철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절규하며 잃어버린 자궁을 찾으려고

했다. 피로 얼룩진 손으로 의사의 가운을 잡아 당겼다. 그녀가

돌아 보았는데, 나는 기절하게 놀라서 펄쩍 물러났다. 그녀는,

승준의 어머니의 얼굴이었다가, 신애였다가, 은정씨 였다가,,수

시로 바뀌며 나를 비웃고 었다.

-아, 제발,,그만해! 살려줘요!

세사람이 동시에 나에게 덤벼들며 목을 졸랐다.

-악!

눈을 뜨자 머리가 쑤시고 온 몸이 떨려 왔다.

"괜찮으세요? "

"네..."

아줌마는 내 소리를 들었는지. 물 한 컵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악몽을 꾸셨나봐요..그리고 전화 왔었어요. 오늘 병원으로 좀

나오시라 던데요..그리고 집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있는데,,어

떻게 할까요?"

"보러 오라고 하세요...나은이는 요?"

"아직 자고 있어요. 아이한테 너무 심하게 화 내지 마세요..."

"네 아줌마, 미안해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내 어깨를 다독여 주고 아줌마는 문을 조용히 닫았다.

병원으로 나오라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죽는 건가? 그

럼 나은이는? 나은이는...


병원 문 앞에 이르러서도 나는 계속 나은이만 생각하고 있었다.

정작 내가 죽는 다는 일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은이는?

그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그 생각만으로 다른 생각에 빠질

틈이 없었다.

"어서 와요..."

의사는 친절히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녀의 웃음이 무얼 의미하

는 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긴장했다.

"긴장하셨군요. 결과가 나왔어요..그런데.."

"제가 죽는 건가요?"

"아니요,,그렇게 생각하셨군요.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암은 아

니예요..아니, 좀 더 검사를 해 봐야 자세히 알겠지만,,아직 암

은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자궁 경부 상피 내 종양이라고,,암

의 전 단계쯤 이예요. 그것도 경미하다면 간단한데,,중증 이예

요. 종합병원으로 옮겨서 더 자세히 검사를 해 봐야 겠어요. 제

가 소개해 드릴 게요. 전에 이모가 계셨던 병원, 괜찮으시겠어

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암은 아니라면서요?"

"만약, 영인씨가 아이를 더 낳지 않을 거라면 자궁을 적출 하는

게 제일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지요."

"자궁을 들어 낸다고요?"

나는 지난밤의 꿈이 생각났다.

"네. 다른 방법도 있지만, 결과를 장담하기가 좀 그러네요. 암

은 아니지만 손쉽게 암으로 발전할 단계이고 지금도 좋진 않아

요. 너무 많이 퍼져 있고요. 자궁을 들어낸다고 해서 여성성이

상실된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전처럼 섹스도 가능하니까요. 자

궁만 들어낸다면 호르몬 치료도 별로 필요 없구요.."

"그럼 암하고 다른 게 뭐지요?"

"영인씨.이런 말 그렇지만 미리,일년 전이라도 검사를 받아 봤다

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네, 네,알겠어요..알았다구요..."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괜찮으시겠어요?"

"네."

자궁이 없는 여자....

어차피 내게 자궁은 이제 쓸모 없는 거라고 해도,,,그래도 나는

그렇다면 이제,,여자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런 걸까. 그래도

죽지 않는다면, 나은이를 지킬 수 있는 거라면 다행이라고, 그것

만으로도 다행이라고,,그렇게 생각하려 애쓰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