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취기가 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한끼도 먹지않았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단지 자꾸만 조갈이 나고 그저 시원한 맥주만 생각났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뭐가 저렇게 바쁠까하고 민우는 궁굼해 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수업도 그렇고 학교활동도 그렇고 아무런 의욕이 없다.
이젠 학내문제로하는 데모도, 이데올로기로 핏대올리던 토론도 흥미가 없다.
차라리 군대나 가버릴까하고 마음먹어본게 벌써 몇번인가.
민우는 다마신 빈잔을 들고 카운터로가서 한잔값을 더 내고 빈잔에 따라주는 생맥주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빠텐을 보는 아르바이트생은 신기하게도 여러 맥주잔을 돌려하며 한방울 흘리지 않고 따라냈다.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온 민우는 수포가 올라오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찬 생맥주는 잔에 이슬방울을 만들고 있었다.
옆자리에서는 정답게 또는 격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혼자인 민우는 가끔 그들의 대화를 자신이 원치않는 가운데 듣고 있었다.
"야 전두환인가 하는 놈이 대단하다는데 너 들어본적인냐?"
민우는 전두환이 누구인가하고 생각했다.
탈랜튼가?
네개의 층이 모두 생맥주를 마시는 이곳은 항상 만원이다.
문이 열리는 오후부터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재수없으면 4층까지 걸어올라가며 자리를 찾아도 허탕인 경우도 많았다.
민우에게는 이제 요령이 생겨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지만 처음 이집을 단골로 삼았을땐 자리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화장실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여자들이 더 많았다.
화장실은 계단의 중간에 있었다.
남자하나, 여자하나인 화장실은 양변기인데 시간이 늦어질수록 전쟁터로 변해간다.
남자화장실이 뚜껑을 올리고 사용하다보니 이리튀고 저리튀고, 먹은거 확인한 흔적에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생맥주를 마시니 화장실가는 횟수는 많았다.
사건이 일어난 날은 화장실앞이 유난히 붐볐다.
서너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유난히 장난기어린 표정이었고 재미있어하는 얼굴들이었다.
민우는 기다리기가 힘들어서 한층을 더 올라가서 용무를 보고 내려왔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그자리에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민우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로 돌아와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네명이 서로 예기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한여자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남자한명이 들어갔다.
용무를 보기에는 너무짧은 시간에 들어갔던 남자가 나오고 빠르게 교대로 남자들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이런 치사한놈들.
민우는 받쳐오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같은 또래여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민우는 그런 치졸한것을 보면 참지못했다.
민우는 그들에게 가서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약간은 시비조인 민우의 말투에 그들은 조금전까지 누리던 행복과 재미가 신경질로 바뀌며 여러명인 자신감에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민우는 이 관철동바닥을 거의다 알고 있었다.
학교보다도 이곳에서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고 오락실,밥집은 한번쯤은 들어가본터였다.
조용한 골목에서 민우는 그들에게 물었다.
"뭐야.화장실에 구멍뚫었냐?"
네명은 어이가없는 표정이었다.
키는 켰지만 덩치가 좋은것도 아니고 험상굿은 얼굴도아닌 학생같아보이는 자기 또래가 혼자 네명에게 시비를 붙는게 아닌가?
"넌 뭐야 이새끼야!"
무리중 한명이 성질을 부렸다.
민우는 일단 말로해서는 안될 분위기를 직감하고 방금 그말을 배튼 남자의 면상에 일격을 가했다.
그리고 민첩하게 하나하나 제압했다.
설마 네명을 상대하랴하던 무리는 급소를 맞으며 고꾸라졌다.
민우는 제압한 네명이 일어나기전에 쓰레기더미에 있던 각목을 집어들었다.
기습적으로 쓰러드리기는 했지만 정신을 차리면 상대하기 어렵다는것을 잘 알기때문이었다.
"무릎꿇어!"
민우는 낮고 굵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네명은 정신을 차리고 대항하려다 각목을 잡은 민우가 보통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대항하지는 못하고 민기적댔다.
그렇다고 쉽게 무릎을 꿇을 수도 없어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민우는 그중 가장 크고 힘있어 보이는 놈의 옆구리는 힘껏 걷어찼자.
널부러졌다.
그제서야 그들은 무릎을 꿇었다.
"너희들, 화장실에서 뭐했어"
넷은 지나간 행복과 즐거움을 이런식으로 예기해야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구멍뚫고 여자들을 훔쳐봤냐?"
민우의 분노가 격해지려하자 안경낀 친구가 말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뚫은게 아니구여 자세히 보면 틈이 있어요.저희도 친구들이하는 예기듣고 오늘 처음와 봤어요".
억울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정말이야?"
이제 무리는 대항하기보다는 빨리 타협하려는 자세였다.
"일어서,그리고 정말이라면 같이 가보자".
앞장선 민우를 그들은 초등학생처럼 따라왔다.
비슷한 나이고 분명 학생같이 보이는 민우를 그들은 홀린듯이 따라왔고 화장실앞에선 민우뒤에서 꾸지람을 들으려는 잘못한 초등학생이었다.
민우는 화장실안으로 들어가기전에 여자들이 들어오지못하게 하라고 말했다.
그들은 끄덕였다.
민우가 작은 유리조각을 붙여 인테리어한 화장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들의말대로 여자화장실쪽 벽틈이 있었다.
그런데 거울이 여러곳을 비추어 잘 보이지 않았다.
"야,너 들어가봐"
안경을낀 변명라던 남자를 여자화장실에 들어가게하고 자세히 보니 어느정도 그 윤곽을 볼 수 있었다.
민우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테리어를 하던 사람들이 실수로 남긴 작은 틈으로 그들은 여자들의 엉덩이를 훔쳐본것이다.
"너희들 자리로 가라"
민우는 더 이상 그들을 욕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 이집의 지배인같아 보이던 사람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화장실틈은 모두 조사되고 고쳐졌다.
그런 생각을 하던 민우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모른체하고 그들의 재미와 즐거움을 그냥 둘껄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잔을 들었다.
그 이후로 이집에서 민우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민우가 않보이면 그랜드베어로 가서 찾아봐라하는 예기가 학교에 퍼졌다.
우수운 예기였지만 그게 거짓말은 아니였다.
민우는 거의 모든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학교수업도 거의 듣지않았다.
교련기간이 들어있는 목요일은 예외였지만 그 이외날들은 이 종로 관청동에서 젊음을 갉아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