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615

살아남은 자의 고통


BY self 2000-09-14



"인간의 역학은 중력과 마찬가지다"
-시몬느 베이유-

고통받는자는 누구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혹은 동정심을 유발하여 자기의 고통을 알리려 애쓴다고 한다.
그 방법은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행위이며 또한
실제로도 이러한 방법으로 고통이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만,너무 낮은곳에 있는자는 아무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누구도 괴롭힐 힘이 없는 경우 고통이 가슴속 내면에 그대로 남아 사람을 망쳐 버린다고 했다.

나는 이러한 빈자리와 빈자리를 메우는 법칙속에서 북적북적 시장통에 있는 양품점 여자가 그 고통속에서 서서히 망쳐 버릴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

인간의 염려가 얼마나 어리석다는 것을 계절이 잘 일깨워 준다.
가을이란 놈은 슬그머니 와서 몇일 전의 시장통에 대목을 잡으려는 상인과 한가위 음식을 차리기 위해 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함께 어우려져 북새통을 이루었던 소리와 추석 명절 음식이 더위에 상할까 염려하던 그 마음을 앗아갔다.

명절후 라 시장은 한산하지만 그래도 장사라는게 뭔지....
북적북적 시장통의 상인들은 가게문을 열고 나도 채소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찢어지게 악을쓰는 목소리가 진공이 주는 고통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는 분명,미래를 빼앗긴 자의 소리다.
사람들이 양품점 문앞에서 웅성거리며 기웃거렸다.
시장 끝에 포장마차를 하는 여자가 가는 길을 멈추고

"저기 나래 양품점 시어미가 와서 며느리 머리카락을 쥐어 뜯고
난리가 났어요"

그녀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한번 저었다.

"세상에 남편 초상친지 얼마 안되는데.. 나래도 몸이 말이 아닐텐데..."

얼마전 교통사고가 나서 그녀의 남편이 죽었다.

한 일주일전인가.. 똑딱거리는 구두 소리를 달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 그녀가 큰 가방을 들고 가던 모습이 생각났다.

"어디가? 대목에 장사는 안하고...."
"예...아줌마.. 속상해 죽겠어요...대목 볼려고 서울 가서 새 물건 많이 해 왔는데...."
"그런데?"
"시어머니가 아파서 꼼짝 못한다고 병원에 간호하러 오래요..가서 명절 지나고 와야 될것 같아요"
"그래도 대목 장사는 해야지... 신랑이나 먼저 보내지.."
"같이 가자고 난리 잖아요.. 남편이.."

장사라는것-----
사람들은 무슨 돈에 환장이 들어 명절이나 부모 보다도 더 중요해 가게문을 여냐고 하지만....
내 채소전도 그렇지만 특히,양품점은 더욱 더 그러하다.
명절 몇일전에 주부들은 옷을 많이 사입고 또 그동안 밀린 외상값도 그때 받아야 한다.
만약 한창 성수기인 명절 전 가게문을 닫아 버리면 매상 보다도 단골 고객을 다른곳으로 빼앗겨 버린다.
이 기간 문을 닫는것은 반년 장사를 망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부모나 남편은 그것을 이해할리 만무하다.
그녀는 서울서 해온 물건을 쇼우윈도에 정리도 하지 못하고 시어머니에게로 갔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고 자식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어리광에 가까웠다.
그녀는 가게도 걱정되고 돌아오지 안으려는 남편을 졸라 돌아왔다.
억지로 돌아오는 남편은 고속도로 차안에서 그녀와 티격거리며 싸웠다.
화가난 남편은 차를 과속으로 몰았고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를 들어 받았다.
그녀는 딸애와 뒷 좌석에 앉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그 남편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년아! 내 아들 살려내라..."

마르고 신경질적인 시어머니는 누군가 싸움을 말리려고 힘있게
그 노인의 손을 잡는다면 바스락 거리며 뼈가 흘러 내릴듯 했다.
그 노인은 미래를 빼앗긴 자의 피맺힌 절규와 원한에 사로 잡혀 거의 짐승의 소리를 냈다.

"사돈.. 고정하세요... 사돈 아들이기도 하지만 얘 남편이기도
하잖아요..."
"네 이년! 남편 잡아먹은년.. 내 아들 살려내라.. 가기 싫어하는 애를 억지로 끌고 가더니..."

노인은 가게 바닥에 두손을 치다 가슴을 쥐어 뜯다 번갈아 했다.

"그렇게 잘 잘못을 따지자면 사돈도 책임이 있어요..
이렇게 잘 움직이면서 꼼짝도 못한다고 애들을 불러 올렸으...
살아남은 애 어미가 더 불쌍해요.."

나래의 친정엄마는 거의 기진한 딸을 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찔금찔금 흘리며 말했다.

그 노인은 아들을 잃은 슬픔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며느리를 괴롭혔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 노인도 고통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양품점의 젊은 여자를 보니
너무나도 낮은 위치에 있어 그 고통의 아픔조차도 느낄수 없는 입장에 선 그녀가 앞으로
서서히 그 고통속에서 망쳐버릴것 같은
예감이 들어 가슴이 아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