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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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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


BY self 2000-08-26


온갖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하는,
사랑이란 단어가 얼마나 힘 겹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놈은 마치 창문 틈새로 가만히 내려앉은 먼지처럼
보이지 않는 집착의 꼴을 하고 따라 다닌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하는것은
힘겨운 사랑을 추억이란 단어로 바꾸어 간직할줄 알기
때문이다.

북적북적 시장통은 날씨가 더운 탓에 야채와 과일의
썩은 냄새가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 다닌다.
어제 팔다 남은 야채전의 채소도 무더위를 이기지 못해
짓물리기 시작해 부패하기 시작했다.
부패한 채소탓인지 괜히 기분이 불쾌해졌다.
성한것을 정리해서 시장사람들을 나누어 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썩은 부위를 떼어 내어 다듬고 있다가 순간 한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도 나를 스쳐보다 잠깐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짓다
그냥 지나갔다.
나는 순간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일점의 지나가는 바람의 움직임 일지라도
나는 그를 알아 볼수 있다.
다듬다 만 채소를 손에 들고 그저 멍하니 그가 사라진 시장
끝을 바라 보았다.
그가 무슨 색깔의 옷을 입었으며, 손에 무엇을 들었는지 알수
없지만 다만 그가 지나간 사실만은 확실히 안다.
"어이! 성민이엄마 왜 그래?"
"으...응"
"왜 그리 넋잃은 사람처럼 그러지?"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세상의 모든 고독과 우울함의 무게가 밀려
짓눌려 왔다.
"성민이 엄마! 왜그래?"
"응.. 내 첫사랑 같아서..."
"첫 사랑?.. 정말?.."
"그래.. 조오치...한번 봐야 되는데"
과일집 여자는 시장 안쪽으로 고개를 쭉 내밀며 말했다.
"나도 몇년전에 시부모 교통사고 나 병원에 갔을때,내 첫사랑
을 만났잖아.."
"그래서?"
튀김집 여자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며 물었다.
"세상에 그런 비극이 어디 있겠노.."
"왜?"
"잠결에 쑤세방탱이가 된 머리로 시부모님 교통사고에 놀라
애기 하나는 포대기에 들쳐업고 하나는 걸리고 해서 퍼런
뿔딸다리 신고 그대로 달려 갔잖아.."
"그래서?"
"병실 복도에서 그 운명의 사랑을 만났잖아.."
"그 남자의 실망스런 눈빛이 아직도 선해..."
"눈이 마주쳐 어쩔수 없이 서로 아는체는 했지만..그 남자는
남이 볼까 주위를 이리 저리 살피는거 아니겠어..."
"나하고 안다는 사실이 쪽 팔리는지..."
"세상에 쪽 팔렸겠다.."
"그래.. 병실에 들어서자말자 엉엉 울었어... 시부모는 자신
때문에 우는줄 착각하고 나를 도리어 위로 했어... 걱정
하지 말라고 하면서..."
"심정이 이해 간다.."
"남자는 행복할때 첫사랑이 생각나고,여자는 불행할때 첫사랑이
생각난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나 그놈을 생각했는데...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창피하고,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그러니까 신랑한테나 잘해.. 첫사랑 생각이나 하지말고...
뚱땡이 아줌마도 좋타고 데리고 살아주니 고맙다 생각하고..."
나는 그녀를 이해 할것 같다.
나도 그의 뒷 모습도 보이지 않치만 앞치마에 묻은 흙을 털면서 머리
에 자꾸만 손이 간다.
혹 그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100원을 두고 서로 실강이를 벌이는 북적북적 시장통에 있는 이
세속적인 사람들을 보면 한때 그들도 아름답던 사랑의 주인공들
이었다는 생각초차 하겠는가?
누가 감히 펑퍼짐한 4-50대 아줌마들의 엉덩이를 보면서 한때 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며 하이힐을 신고 산들거리며
걸어가던 발걸음을 상상이나 할수 있으랴.....
나도 젊은 시절 지금 내 나이의 아줌마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어휴.. 나도 한때 너희들 처럼 허리가 24인치고 날씬 빠꼼이 였는데..."
그때 속으로(거짓말도 참 잘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지금 와선 그 말을 믿을수 있지만....
그래서 나는 절대 예전에
나도 날씬하고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것 처럼 보일테니까...
어느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진정한 사랑을 하면 사물을 파괴하거나 사람을 헤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없어진다고....
사랑하는 남여가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여인을 위해 꽃을
꺽어 주었다면 그것은 이미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그 남자의 마음속엔 사랑하기 때문에 흔적의 보답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보답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놀라운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 놀라운 감정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숙명적인 사랑은 이제와서 생긱하니 놀라운 감정이
아니고 오직 이기심과 자존심 때문이다.
중국영화 [동사서독]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자존심 때문에 그를 떠나 보내고 이제 생각하니 나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에는 그가 내곁에 없었다)라고-------

두 다리를 휘감던 더위가 목구멍 까지 꺽꺽 거리는 내 감정처럼
참지 못하고 후두둑 거리며 빗방울을 토해낸다.
빗물은 흙냄새를 풍기며 떨어지기 시작한다.
물건들을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여기 저기서 포장을 친다.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나도 포장을 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