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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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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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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같은 우리집


BY 로미 2000-08-12

할머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밤이 었어요.

언제나 처럼 적막하고 외로운 우리 집에 그날 따라 아빠도 들어

오시질 않고,엄마는 아빠가 없으니까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비바람이 들이치는 데도 흔들림 없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어요.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전 빠르게 기어가서 엄마가 뭘 하나,

뭘 보고 있나,,기웃거렸지요.

웬지 불안 했거든요.

아빠가 계시면 언제나 처럼 엄마는 문을 잠그고 방에서 꼼작도

하지 않았을 텐데, 비때문에 거실 바닥까지 젖어 가는 데도 꼼

짝 없이 엄마가 서 있는 게 어쩐지 전 무서웠어요.

무릎이랑 손이 젖어서 차갑고 미끄러웠지만 전 엄마에게로 기어

가서 엄마 바지 자락을 잡아 당겨 보았죠.

그런데도 엄마는 절 쳐다 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어요.

불안한 생각에 전 으앵~하고 울어 버렸지요. 제가 울면 엄마가

절 볼까 하고요.

엄마는 그래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더군요.

섬뜩한 느낌이 들었어요.

엄마가 죽으려는 거구나,엄마가 정상이 아니구나 - 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어요.

세상에 저를 두고,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까요...


할머니! 할머니! 도와주세요!!!


제가 그렇게 외친 거 알고 계시죠...

물론 할머니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셨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어떻게 해 주실 수 없다는 것도 전 알고 있

었지요.그렇지만 전 어떻게 해야 좋을 지 알 수 가 없었거든요.

필사적으로 엄마 다리를 붙들고 기어 올랐지요. 그러면서 크게

외쳤어요.

- 엄마!엄마!그러지마. 날 두고 죽으면 안돼. 엄마 사랑해!

라구요.

엄마는 흠칫 놀라 절 쳐다 봤어요.

엄마에게 제 말은 엄마 맘맘맘마,이 정도 밖에는 안 들렸겠지만

엄마는 절 와락 끌어 안아 주면서 외쳤지요.

"지웅아! 지웅아,니가 말을 하다니...엄마라고..엄마라고,,,말

을 하다니..."

그리고 생각해 보니.

언제나 저는 울기만 했지 엄마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을 했던

기억이 없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말이 안 나왔던 거

같기도 하고, 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기도 했어요.

엄마는 울면서 말했죠.

"지웅아,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널 두고...다신 안 그럴께.

엄마한테는 너 밖에 없는 거 알지...아가야,사랑한다."

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엄마 젖가슴에 파묻혀 엄마에게 말

을 했지요. 나두 엄마를 사랑 한다구요.

엄마가 알아 들었는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엄마가

날 두고 죽어버리지는 않겠구나하고 안심했어요.


엄마는 다음 날 부터 절 외할머니께 맡겨 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

으러 다니셨어요. 그리고 조금씩 달라졌지요.결혼 전에 엄마가

다니던 여행사에 다시 나가기로 하셨대요.

일을 하기로 하면서 활기를 찾는 엄마를 보니까 저도 마음이 놓

였어요.

할머니께 엄마는 이렇게 말했지요.

-엄마,지웅이가 조금 더 클 때 까지만 돌봐 줘요.더 크면 어디

어린이집 이라도 알아 볼테니까. 내가 하루 종일 돌봐주지 못해

서 미안하지만,지웅이도 알꺼야.하루 종일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도 지웅이를 더 사랑하고 아낀 다는 걸.정신적으로 건강한

엄마가 옆에 있는 게 지웅이 한테 더 나을 테니까.

할머니는 조금은 못마땅해 하셨지만 엄마가 우울해하고 힘들어

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판단하셨는지 엄마의 결정에 찬성해 주셨

지요.

-시댁에서 그리고 김서방은 뭐라고 하지 않냐?

-어머닌 아직 모르시고,지웅아빠한테도 이제 말해야지.

하지만 내가 결정한대로 할꺼야.

할머니는 엄마가 시한폭탄 같다고 생각하셨나봐요. 정신과 치료

라는 게 할머니한테는 좀 두렵게 느껴지셨는지,엄마가 병원에

다닌다는 말을 들으신 후부터는 엄마를 별로 야단치지도 않으셨

거든요.


저녁에 아빠가 들어오셨을때,

반갑기도 했지만 순간 전 바싹 긴장했어요.

혹시 전에 처럼 또 싸움이 나는 건 아닐까 하고 두려워 하고 있

었거든요.

거실에 나와 앉아 있는 엄마와 절 발견하곤 아빠는 잠시 어리둥

절해 하시더군요.

-얘기 좀 해요.

엄마는 아주 담담하게 말을 했어요.

전 아빠에게로 기어 갔지요.

아빠는 절 번쩍 안아 들고 쳐다 보셨어요.

-지웅이,아직 안 잤구나.

전 이때다 하고 외쳤죠.

-아빠빠빠...

-이 녀석,아빠 소릴 하는 거야 지금?

아빠는 감동하신 거 같았어요.

그래요 아빠...제가 아빠라고 말했어요. 아빠,엄마하고 정답게

얘기 나눌려고 많이 연습했어요.

-걔도 바보는 아니니까요..그래도 아빠라는 걸 용케 알아 보긴

하네요.

-그건 내 탓이 아니잖아. 당신 탓이지. 문 걸어 잠그고 꼼짝도

안하는 바람에 애도 볼 수 없었잖아.

-죽이려고 했던 아빠를 그래도 아빠라고...핏줄이 무섭긴 하군

요.

-그 땐,내 정신이 아니었어. 그리고, 지웅이를 죽이려고 하다

니.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럼, 날 죽이려고 한 거였군요...하긴 죽으라고 말도 했으니

까요.

-여보,제발 그만 좀 할 수 없겠어?

-자신의 잘못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덮어 두려고 하지요.당신이

란 사람은.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빌어도 용서가 안되는 상황이

란 걸 알기나 하는 거예요?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다는 거야.그래 손 댄 건 미안하게 생

각해.하지만 당신도 내게 상처를 입혔잖아. 그리고 당신이 이유

없이 내게 적대적이었던 건 ...그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신에게 내가 상처를 입혔다구? 그건 죽지 않으려고 방어한

것 뿐이야. 정당방위라구. 당신하고 이런 얘기 길게 하면 뭐하

겠어요? 더 이상 말하는 내가 바보지...이런 얘길 하려고 한

게 아니예요. 당신에게 알려 줄 게 있어요.


그러는 동안 할머니,저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거실 한쪽 구석

에 앉아 있었지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문득 눈을 돌려 보니 벽에 동그란 구멍이 뚫린게 보이더군요.엄

마는 항상 내가 거기에 뭔가 넣어 보려고만 하면 기절할 듯 놀라

소리지르곤 했었지요.엄마가 아빠와 다투는 동안, 그래서 내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는 그 사이에,거기에다 뭔가 집어 넣어

보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졌어요. 그 까만 구멍안에 뭔가 넣

어서 막 쑤셔보고 싶은 충동이요.

두리번 거리다 보니 가까운 주방 식탁 밑에 젓가락 한 짝이 떨어

져 있는 게 보이더군요. 기어가서 그걸 집어다 구멍에 쑤셔 넣

어 봤어요. 잘 안들어 가더라 구요.


-당신이 뭐라든 간에,이제 난 내가 하고픈 대로 할꺼예요.

이미,당신에게 포기했어요. 이혼은 안해준다니까 그럼 한 집에

사는 대신 우린 각자 사는 거예요. 지웅이 부모로요. 당신 빨래

며 집안 일, 당신 것은 당신이 해요. 돈도 당신이 버는 건 알아

서 쓰도록 하구요. 난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요.공동생활에 필요

한 경비라든가 지웅이한테 필요한 건 따로 계산하기로 하죠.

그리고 당신 집안 대소사에는 지웅이 엄마니까.챙기겠어요.하지

만 그 밖엔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요. 여자가 생긴다면

그 때 말해줘요. 이혼해 줄테니까.나에게 아내로서 잠자리만 요

구하지 말아요. 당신 욕구는 당신이 알아서 해요. 난 상관하지

않겠어요. 당신도 내게 상관하지 말아요.

-그게,,부부로 사는 거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금?

-부부로서가 아니라,지웅이 부모로 사는 거예요.우린 지금부터.

그게 싫음 이혼해 줘요. 당신이 이혼해 주고 지웅이 날 준다면,

위자료는 요구하지 않겠어요.다만,양육비는 얼마간 줘야 겠어요

내가 자리 잡을 때까지만. 얼마 걸리진 않겠지만요.

-내가 다 거부한다면?

-그럴 수 없을껄요. 당신과 난 이미 회복할 수 없어요.난 당신

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당신도 날 사랑해서 결혼 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저,적당하다고 생각 했겠죠. 그리고

지금은 나란 사람한테도 질렸을 꺼구.

당신은 날 이해 할 수 없어요. 아니, 이해하려고 한 적도 없지

만요. 시간이 흐른다고 없던 정이 생기진 않는 다는 걸 알았어

요. 당신과 난 너무 많이 달라요.사실 내 바램은 당신도 당신에

게 어울리는 여잘 만나서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그게 당신을 위

한 내 마직막 배려예요.

-사랑하지 않았어도,당신은 결혼을 했고,그리고 처음에는 우리

서로 괜찮았었잖아. 선택한 이상 당신도 나도 책임을 져야지!

-그 실수는 인정해요. 난 당신이 편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결혼

이 꼭 사랑으로 이루어 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고,살면서 나

아 질 줄 알았지요. 하지만 아니였어요. 당신은 당신 밖에는 모

르는 이기주의자예요.나도 물론 당신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겠죠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예요,따져봤자 뭘 하겠어요?

단지 난,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내 아이,지웅이

엄마로써 책임을 다하겠다는 거죠.지웅이가 없었다면 당신이

뭐라든 간에 사라져 버렸을 꺼예요.

-지웅이 엄마로써? 당신이 말하는 대로 사는 게 지웅이 엄마로

써 책임을 다하는 거라고?

-버리고 죽거나,버리고 가버리는 것 보다는 나아요!

-아니. 버리고 가 버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 아이가 뭘

보고 자라겠어? 당신같은 엄마한테.

-아,항상 이런 식이지요,당신은. 당신같은 아빠는요? 아무튼,

그만 두자구요 이런 말싸움은. 당신 짐 내일 옆 방으로 옮겨 다

놓겠어요,전부.

아빠는 팔장 끼고 앉은 채로 잠시 말이 없었어요.

엄마가 일어서서 제게로 오려고 하자 아빠는 말씀하셨지요.

-니 맘대로 한 번 해봐..그래, 넌 잘났으니까.


그 때 였어요.

까만 구엉 속에 잘 안들어 가던 젓가락이 쏙하고 꽂힌 순간

말할 수 없게 무서운 짜릿함과 뜨거움이 제 팔을 통해 온 몸에

느껴 졌어요.

전 비명을 지르며 펄쩍 뒤로 물러났지요.

엄마와 아빠가 거의 동시에 제게 달려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