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이 없는 것을 그리는 이의 의도에 따라 살아 있는것 처럼움직이게 하는 작업을 우린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혹은 본래 생명을 가지고 있는것이라도 그것을 그리는 이의 의도에 따라 별개의 생명체로 재창조 하는 작업 애니메이션...
두뺨 남짓 크기의 작화지안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들과 더불어
산지 2년 남짓...
아직도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라이트박스에 코박고 새우잠을 자는 청승아닌 청승을 떨며 받는 보스는 턱없이 빈약한 댓가지만
툴툴 털어버리고 일어서지 못하는 주저함은 아마도 이 직업엔
설명할수 없는 묘한 마력 같은것이 있나보다
마치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한 대마초에 점점 빠져드는 것처럼
오늘도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을 들뜨게 하고 하얗게 밤을 새우게
하는 것은 아닌지...
커튼을 젖히며 승애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밤새 철야해서 끝낸 CUT를 한장 한장 번호를 확인하고 CUT봉투속에 넣고서 커피메이커의 커피를 그득 따랐다
서랍을 열었다
며칠전 철야하다 받은 팩스를 꺼냈다
< 안녕! 자주 소식 못전해 미안!
여기 온지도 벌써 2년이 다되가네...
폭싹 늙은 기분이야 >
승애는 피식 웃었다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승애야 나, 사실 우울해... 많이
어젯밤 과음을 했거든 술 조금만 마시기로 너랑 약속한것
어겼어. 여기 회사와서 낯설고 외로울때 옆에서 위로해주던
친구가 있었거든. 나이또라고... >
승애는 언젠가 그 친구와 통화했던 목소리를 생각했다
"안녕 하셰요? 저는 나이또 이라고 하니읍니다 "
<그 친구와 거의 같이 철야작업을 했어. 그친구는 이작품의
연출을 나는 원작을 보거든. 근데 그친구가 며칠전 부터 골골
거리더라고. 식은땀을 흘리고... >
승애는 완성된 CUT를 아트백속에 넣었다
시트, 원화, 레이아웃지, 동화지... 빠진것은 없나 꼼꼼히
챙겼다
<회사에 메인 몸이라 시키는 데로 철야의 연속... 후우...
정말 몸이 지쳤나봐.
가끔씩 승애 목소리 듣는걸로는 만족을 못하겠는데 어쩌나...
이젠 승애도 제법 그리겠는걸?
병아리가 이젠 중간 닭 정도 되었나?>
옷을 끼어 입으면서 승애는 힐끔 힐끔 팩스용지를 들여다 보았다
< 보고 싶어 늘 글썽거리던 너의 눈이 보고싶어.
하고 있는 작품이 끝나려면 아직 몇달은 있어야 겠고...
도망쳐 버릴까? >
승애는 버스를 탔다
북적이는 버스속에서 승애는 가방을 열어 여권을 확인했다
회사에 들어 서자마자 제작부로 향했다
뚱뚱한 제작부장이 일찍 나와 있었다
"아이쿠! 승애씨. 일찍 오셨네요 "
승애가 내미는 두툼한 CUT봉투를 받아들며 그남자는 해벌쩍
웃었다
"세상에... 500매도 넘는 동화를 나흘만에 끝내다니 굉장하네요 "
승애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켰다
"나흘 연속 철야한 얼굴 안보이세요? "
"정말 미안해요 펑크난 스케쥴이라 어쩔수가... "
그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누런 봉투를 꺼냈다
"고마워요 어디 여행좀 하려고요 부탁들어 줘서 고마워요 "
승애는 돈봉투를 주머니에 찔러넣고 회사를 나왔다
"여행사죠? 어제 예약한 티켓 찾으로 가려고요
네. 이 승애요. 영자로 LEE Y....."
기네에 깊숙히 앉아 승애는 눈을 감았다
<나이또는 오래전 부터 폐가 안좋았데.
폐암 말기 였다더군. 의사가 절대 안정해야 한다고 했다던데
작품에 자기 목숨을 건거지. 미련한 친구...
어젯밤 같이 철야 했는데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그친구
라이트박스에 코를 박은체 숨져 있는거야
이 작은 작화지에 남은 인생을 찍은거야
타프에 눌린 그의 얼굴이 왜 그렇게 평온해 보였을까?
하루종일 그어떤것도 그릴수가 없어 마셨어
백지위에 쏟아내는 우리의 열정과 꿈들이 다 부질없는 몸부림은
아닐까?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
승애는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아. 이미 짜여진 스토리 보드속에서 제한된 공간속의 표현일지라도 우린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속에서 우린 무한한 무언가를 얻고 싶고 표현할수 있으니까..."
나리따 공항은 생각 보다 작았다
귀에 와닿는 낯설은 일본말...
공중전화를 찾았다
"모시 모시... 이마진 데스 "
"스미마셍게도... 강꼬꾸노 호우 가따데스.
리 영빈상 오네가이시마스. "
"아, 아! 리상! 쇼쇼 맛찌 구다사이."
더듬 더듬 외운 일본말이다
"여보세요 "
"영빈씨! 나야 "
"승애? "
"응..."
"왠일? 어제 아침 통화 했잖어?
일은 다 끝난거야? "
"응! "
"와-- 대단한걸? 500매도 넘는다며? "
"나, 이제 잘나가는 동화맨이야. 왜이러셔? "
"어련하실라고? 어디야? 일은 갖다 준거야? "
"보고싶어 "
"나도.... 근데 어쩌지? 몇달은 꼼짝 못해. 알잖어? "
"지금 여기 올수 없어? 무지 보고 싶은데... "
"왜그래? 승애야. 어디 아프니? 철야 하고 끝내고 나니 허탈
스럽고 우울하고 그런거야? "
"여기 일본이야 "
"이젠 농담까지... "
"정말이야. 나리따야. "
"기가 막혀서... 뭐가 뭔지...
알았어. 여기서 1시간 반쯤 걸리니까 거기 2층 샹때라는 커피숍에 들어가 있어 낯선 어떤놈이 말걸어 와도 쳐다 보지도 말고!
알았지? "
"O.K! 빨리와! "
창밖으로 내다 보이는 일본의 하늘은 푸르고 상쾌했다.
1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