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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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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BY 장미정 2000-09-14


=== 흔들림속의 또 다른 시작 ===


비가 내리는 10월의 아침...
창문으로 걸어가 블라인드 틈새로 바깥을 바라 보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외로움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대화방을 드나들지 않은지가 제법 오래 되었기에
나도 모르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존재성을 다시 깨닫고 싶었는지 모른다.

컴의 스피커에서 잔잔한 선율이 흐르고
짙은 커피향과 함께
빗소리를 듣는다.

되살아나는 습관속에 클릭하는 대화방.
[중고품]
이라는 방제를 달고 방을 열었다.
혼자 있기도 잠시.....
누군가 입장한다.


>>> 비 그리고 애인님 입장 했습니다. <<<

바다> 하이

비 그리고 애인> 미투...방가르~~

바다> 비 그리고 애인? 훗~ 그 괜찮네요.
대화명이......

비그리고 애인> 바다님을 위한 대화명이죠..하하

바다> 네? 무슨말?

비 그리고 애인> 또 기얼상실증세가 보이는군여~ ^^

바다> 저 아세요?

비그리고 애인> 나참! 이거원..
상세 프로필 확인 좀 하고 대화 하시죠?
하하하....

바다> 그럼...잠시만.......


[이름: 이 민석
나이: 36세
거주지:서울]


바다> 음.......

비 그리고 애인> 기억 났어요?

바다> ㅎㅎ 네...미안했어요.
저 그동안 챗 안했거든요.

비 그리고 애인> 그런것 같더라구여..
도통 보이질 않으시고 최근 종료시간을 봐도
보름이 휠씬 지났더라구여......

바다> 네.....

비 그리고 애인> 요즘도 새벽 하이킹 하세요?

바다> 아네.....아침 저녁으로 부쩍 추워지긴
했어도, 가끔은 가긴 하죠...왜요?

비 그리고 애인> 그럼.....한강에서 새벽 커피 한잔 어때요?

바다> 네?

비 그리고 애인> 내가 한 잔 사지요...
그 시간이면 커피숍들은 문을 열지 않았을거구
음.....자판기 커피라도 어떨지?

바다> 후후.....글쎄요.

비 그리고 애인> 뭐가 글쎄요에요...가면 가는거지...
어차피 바다님이나 저나 근처에 사는거 다 알고
산책이라 생각하고 금방 갔다 옵시다.
저도 한강 안 가본지도 꽤 되거든요.

바다> 이거원......간만에 온 대화방에서
발목이 잡혀 버렸네....

비 그리고 애인> 하하하....바다님...

바다> 네.....

비 그리고 애인> 실례가 아니라면 전번 좀 알려 주세요.

바다> 싫은데요!! 쿠쿠

비 그리고 애인> 이런!~ 퇴짜를 놓다니...크~

바다> ㅎㅎㅎ

비 그리고 애인> 그럼 제 핸폰 갈켜 줄테니,
전화 줄래요?

바다> 글쎄.......요..

비 그리고 애인> 또 글쌔래....
핸튼 받아 적기나 해요..알았죠? 011-522-0000

바다> 받아 적긴 하겠는데....저보고 어쩌라구여?

비 그리고 애인> 어쩌긴 뭘 어째요.
이쁜 목소리 들려 달라는 거죠...하하하...
그리고, 새벽 하이킹은 이번주 금요일 아침으로
합시다. 제가 토요일은 격주로 쉬는 날이라...히히...

바다> 맘대로군......누가 나간대요?

비 그리고 애인> 낼 시간 되면 전화나 줘요.
그래야 만나는데 별 무리가 없을것 같은데...
중고차면서 너무 튕구지 마시고......푸하하하

바다> 뭐요? 나참...

비 그리고 애인> 하긴 새차는 부담돼요.
중고차는 살짝 긁혀도 괜찮지만.....
난 그래도 뭐든지 쓰다만 중고품이 좋더라
방제처럼.....오늘 아무래도 방제 넘 잘만든것
같네요...같은 중고차 끼리 한 번 달려 봅시다.
하하......



그 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뭐든 밀어 붙이는 성격같지만,
기분 상할 정도는 아니다.
예전의 "불륜이란..." 주제로
토론하던 방에서 만난 그는
아주 뚜렷하고 확고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듯 했다.
불륜은 그리 나쁜것만은 아니다는 그이 말에
많은 여자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하지만, 난 그의 말에 동의하듯
아무말도 못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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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았다.
가라 앉은 마음이야 비탓이랴 하지만,
괜히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있는듯
오전 내내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띠르릉.......
화들짝 놀라는 나 자신이 왜 그런지 조차
망각 해버린다.

그 사람이 이 곳 전화번호를 알 수가 없는데...
걸려 올거라는 기대라도 한듯.....

조심스레 수화기를 들어 보았다.
"여보세요?"

"응.....나야.."

다행히 부산에 사는 친구 경숙이였다.

"그래....웬일이니?"

"웬일은....그냥 잘 지내나 하고 한거지.."

그녀는 여고 동창이며 유일하게 10년 넘게
연락하고 사는 친구이다.
12살 나이 차이나는 남편과 결혼해
첫딸 낳고 세번의 유산끝에 둘째를 가진
아주 귀하신 몸이다.
해산은 올 겨울이란다.

성격이 조금은 비슷하지만,
깊이 알면 너무나 다른 이면성을 가진 우린
서로를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다.
때론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 놓으면
비수를 꽂듯 비판을 하는 묘한 친구이다.

"몸은 괜찮니?"

"응...괜찮지뭐...넌 장사 어때?"

"요즘....대목이잖아...
근데....내가 뭐 하나 물어 볼게 있는데....?"

"뭔데?"

"너 통신하지?"

"응...윤아 아빠가 인터넷 깔아 놓고 장기도 두고
주식도 보긴 하더라...
난 뭐...가끔 요리 강좌 같은거 보는게 고작이지만..
왜? "

"아니......."

난 어쩜 그녀에게 내 얘기를 돌려서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있잖아...내가 아는 언니 얘기인데...
통신에서 우연히 어느 모임에서 한 남자를 알았다네..
근데..그 남자가 알고 봤더니, 서로 가까운 동네에
사는걸 알았고, 같이 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핸튼.......그 언니 감정이 왠지 모르게
뭐라 해야 하나......사랑 같은 구질구질한건 아니고..
설레임 같은 감정이 생긴다는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음........솔직히 얼마 전에 TV드라마에서도
그런 비슷한 걸 본 기억이 나는데.....
솔직히 난 이해가 안돼...
통신으로 마음이 끌리나?
무슨 말인지원.......
그리고, 뭐 애들 장난 하니......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모니터로 사랑 나누게...
핸튼....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돼...
그 언니보구....일찍감치 정신 차리라고 해..."

역시 이해를 못했다.
역시가 아니라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할게 없어서 불륜을 하냐!~
지 마누라 지 애들 있으면서...
남의 것에 탐을 내면
내 것을 잃는다는걸 왜 모르지?"

그 후 그녀는 남편.애들 얘기로 말을 돌려 버렸다.
어쩜, 착각했는지도 ....
그녀가 나의 얘기를 깊이 생각하고
들어 줄거라는 기대와 함께.....

그래.....다 이해 못할 일.......그런 감정들이였다.
카운터에 쭈구리고 앉아 전화기만
뚫어져라 바라 보았다.

걸어볼까?
받을까?
뭐라하지?

별별 생각에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어쩜 이성을 단 둘이 만나적 없는 경험에선
떨리고 조심스러울 수도 있었다.
그냥 전화만 해보는건데...하는 마음으로
폰을 눌렸다.

세번의 신호음과 동시에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이 민석입니다..."

".........."

"여보세요?"

"저........여...기..."

"훗!~ 누군지 맞춰봐요?"

"네?"

나라는걸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음.......바다님인것 같은데..."

"아........네에....맞아요.
근데..어떻게 알았대요?"

"척하면 척이죠..제가 어제 전화하라고 했구.
그리고 걸려 올거라는 필 같은걸 느꼈구..
하하....그럼 된거 아닌가? "

"나참...후후 식사는?"

"방금 했어요..시원한 꽃게탕으로..."

"요즘...납때문에 꽃게 안좋은데..."

"걱정 마십시요..싱싱하게 살아 있는 놈으로 먹었으니..
벌써 애인 몸생각 부터 하시나? 하하하..."

"나참...무슨 말을 못하게....."

"금요일 갈거죠?"

"글쎄...아직 결정을......"

"한강 한번 같이 보자는데...참 정말 힘드네원...
그냥 차나 한잔 해요..편하게 친구처럼..
설마 제가 잡아 먹기나 하겠어요?
싱싱한 꽃게라면 몰라두..."

"하하.....그게 아니구..."

"참...자전거는 무슨 색깔이죠?"

"은빛요...앞에 같은 색깔의 바구니가 달려 있구요."

"네...그래요...그럼 그 곳에서 반포대교나
잠수교를 건너면 되는데.......음...
밑보다는 위가 낫겠죠?
우리 반포대교 건넙시다.."

"근데....멀지 않나요?"

"6시 쯤 출발하면 차 한잔 하고 가고오고
시간 합쳐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 할겁니다.
만약 시간 촉박할 것 같음 제가 자전거 트렁커에
실고 댁까지 태워다 드리죠뭐.......어때요? 괜찮죠?"

확실한 나의 대답도 듣지 않은채 멜을 남기겠다며
그는 통화 마무리를 했다.

무척 간단해서 좋겠군...
복잡해지는 내 마음이야 알바 아니라는 듯......
모 통신에서 등산도 가고,
문학동 참가차 술도 진탕 마셔본
여러 경험 속에서
어느 낯선 남자와의
단 둘의 만남은 아직 없었다.

뭐 만난다고 다 불륜이랴...
그냥 만나서 차만 한 잔 하면 별무리 있겠냐하는
생각 속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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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동안 내린 비는 그치고,
참 맑고 깨끗한 새벽이였다.
비 온 후의 세상은 너무 맑고 아름다웠다.

5시에 기상한 난.....
세수하고, 세면대 거울을 보았다.
짙은 화장은 안해도 눈썹과 림스틱 정도는
발라야 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그리고, 서재에 있는 컴퓨터를 켰다.
그의 멜이 와있었다.

[금요일 아침 6시 출발...
핸드폰 지참 요망...
차선이 아닌, 자전거도로나 인도로 주행 바람.
011-522-0000 다시 적어서 나오시길...
그리고, 출발하면서 전화 주시고,
바다님 전번 갈켜주시길......
그래야...중간에 저두 연락하죠..
알았죠? 나중에 봅시다.
바이!~ ]

최근종료 시간이 5시 30분
방금 보낸 멜이였다.

난 다시 컴을 꺼고,
다이어트 땀복으로 사놓은 펄이 들어간
은색 츄리닝을 걸쳐 입고 현관을 나선다.

마당 뒤뜰에 세워둔 자전거를
마른 수건으로 닦으며 점검을 해보았다.
안장도 조금 조절하고, 걸쳐 올라 탔다.

비온 후의 아침이라, 바람이 약각 쌀쌀했다.
시계를 보니, 6시 10분 전이였다.
아직, 짙은 어둠이 깔린 새벽길.......
많은 차는 아니지만,
출근차량이 여러대 보였다.

빨간색 자전거 도로를 따라
동네 우체국,소방서를 거쳐
난 반포대교로 향한다.

어느정도 가다보니, 등 줄기에 땀방울이 맺히듯
촉촉함이 느껴진다.
나름대로 신선했다.
평소보다 힘찬 움직임이였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서
마냥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그 사람은 과연 어떤 남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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