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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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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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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비온뒤 2000-07-07

그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정확히 오전 열 시였다. 장마철 내

내 찌뿌둥한 습기를 머금고 불편한 심기로 노려보는 것 같던 이

불들을, 모두 싸들고 욕실에 들어가 지끈지끈 밟아가며 한창 빨

래를 하고 있던 그 때였다. 오늘은 모처럼 아침부터 날이 맑

게 개었다. 선영은, 햇볕이 쨍할 때 볕좋은 곳에 이불들을 널

어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땀방울이 뚝뚝 이마를 타고 떨어지는 것

도 느끼지 못한 채 빨래에 열중해 있던 참이었다. 남편이 흘린

눅눅한 땀자국과 습한 체취들을 모조리 빼내고,아무 근심과 걱정

없게 그냥 보고만 있어도 온통 새하얗게 기분좋을 그런 이불로

되돌리려는 생각으로, 마치 고행을 하는 수도승처럼 선영은 그렇

게 모질게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날카롭게 허공을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선영은 흠칫 놀라 이불

을 밟던 동작을 멈추었다. 비눗기에 젖어있는 발을 대강 물로 헹

구어 내고, 선영은 서둘러 거실로 뛰어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서둘러 전화를 받으러 나오느라 조금은 숨이

찬 선영의 목소리에 뒤이어, 나직하면서도 굵은, 그러나 상당

히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영 씨, 맞습니까?" 순간 선영은 아

차 싶었다. 갑자기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어젯밤 열두 시쯤, 연락도 없이 귀가가 늦는 남편을 기다리

며 멍한 눈으로 텔레비전 토크쇼에 눈을 두고 있을 무렵, 남편

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발음이 뭉그러지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

한 채 숨소리가 가쁜 남편의 목소리에, 선영은 남편이 마셨을

엄청난 술의 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분명히 남편은, 술

이 너무 과해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잠을 자고 내일 곧바로 회사

로 출근하겠다는 이야기를 할 참이다. 또 그런 남편의 비틀거리

는 어깨 한쪽을 왠 가녀린 여자가 힘겹게 지탱하고 있을 것이

고, 그들은 이내 전화를 끊고는 가까운 모텔로 키득거리며 직행

할 것이다. 물침대와 대형거울이 사방에 완비된, 그들만의 아지

트로.


선영은 예상과 꼭 같이 이어지는 남편의 말에 덤덤히 그렇게 하

라는 대답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아까 먹은 저녁 설

거지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갔다. 혹시 남편이 늦게 들어와 밥

을 찾을까봐 다시 한번 끓여놓으려 했던 된장찌개는, 가스레인

지 위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싹 졸아들어 있었다. 그

제야 선영은 자신이 가스렌지의 불을 끄는 일을 잊었음을 떠올

렸다. 다 졸아든 된장찌개를 개수대에 버리고, 설거지를 시작했

다. 시커멓게 그을려버린 찌개 냄비, 딸 혜미와 단촐하게 먹은

밥그릇 두 개, 수저 두 벌, 물컴 한 개가 설거지감의 전부였

다. 설거지를 마친 후 다시 방으로 들어서자, 어느덧 별볼일

없는 연예인들이 나와 역시 별볼일없는 그저그런 이야기들을 늘

어놓으며 저들끼리 킥킥대던 토크쇼는 끝나고 애국가가 흐르고

있었다.


혜미의 방에 들어가보니, 혜미는 세상모르게 쌔근대며 잠들어 있

었다. 유치원에서 내준 그림그리기 숙제를 한다며 부산대던 오

늘 낮의 일들이 여섯 살박이 아이를 피곤하게 했으리라. 그래서

인지, 가볍게 코까지 골며 혜미는 곯아떨어져 있었다. 내가 제

일 잘 그렸을 거라던, 그래서 우리 햇님반 선생님한테 칭찬 많

이 받을 거라던 그 그림을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둔 채. 선영은

가만히 그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림 속에는 새하얀 얼굴에 새

빨간 입술을 가진, 머리를 뽀글뽀글하게 어깨 위로 드리운 여자

가 있고, 약간 거무스름한 얼굴에 듬성듬성 턱수염을 달고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가 그 옆에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엔 유

치원의 빨간 원복인 듯한 차림으로 배시시 웃고 있는 여자아이

가 있다. 저마다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와 여자아이와는 달리, 여자는 그저 입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

간, 그러나 웃는다거나 미소를 짓는다고는 할 수 없는, 묘한 표

정을 짓고 있었다. 어린 딸의 눈에도 엄마의 얼굴은 늘 그늘진,

한 번도 제대로 환하게 웃어주지 않은 얼굴로 각인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자, 선영은 새삼 가슴 한 쪽이 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