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아직 어둡지 않았다. 혜진은 미리 싸 놓은 보자기를 다시
한번 바라다 보고 얕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과거의 나날들이 그 보자기 안에 들어가 있었다.작은 지갑
을 따로 챙기고 오른 손에 보자기를 안듯이 받쳐 들었다.거리로
나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지나가는 차들을 말없이 지켜보다 개인
택시를 세웠다. 머리가 희끗한 기사가 행선지도 묻지않고 혜진
의 거동을 살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전달된 표정 이였다.
한남대교로 가 주세요.다리 까지만요? 갑자기 두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연이 있을듯한 혜진의 표정에 말없이 차를 몰았다.
묵묵히 앞을 보던 그녀는 각오라도 한듯 다리 중간 부분에서 차
를 세웠다. 여기서 잠시 세워 주시고 기다려 주세요.하며 문을
열었다. 해는 이미 노을 만을 남기고 지고 있었지만 강물은 소
리 없이 다가왔다. 보자기를 풀던 그녀는 잠시 노을 만이 남은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에게는 지난 모든것이 꿈과 같이
느껴졌다. 결혼해서 아이낳고 남들과 비슷하다면 비슷했고 특이
하다면 특이 했던 생활이였는데 그녀 나이 사십에 남편은 다시
못올곳으로 떠나고 말았다.받는 사랑만을 원하던 남편이였다.
온 식구가 장남이라고 떠 받들며 자란 남편이였기에 그녀의 고충
또한 남 달랐었다. 그런 남편이였지만 세상을 떠나고 나니 온통
절망감 뿐이였다.그때부터 그녀는 네 자식을 어떻게 키울까 고
심한 나머지 생리도 끊기고 말았다.여자 나이 단지 사십에 여자
로서의 생식 기능을 상실 하고 만것이다. 물론 남편이 없어서
더 이상의 아이는 낳을수 없었지만 여자로서 느끼는 비애감은
컸다,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가 계획을 세웠다 .먼저 일
년에 스무번이 넘는 제사를 생략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시댁과의 단절을 의미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서상 도덕상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였는대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런 결심
을 하게 된것은 그런일에 일일이 얽매이다가는 도저히 빈손으로
자식을 키울수 없다는 판단에 의해서 였다. 그리고 생활과의 싸
움이 시작 되였다.육이오가 지난지 얼마되지 않은 때라 물자가
귀했지만 혜진에게는 바느질 솜씨가 있어서 구호 물자로 건너온
옷을 한국 사람 체형에 맞게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결혼때
받은 얼마 안되는 금붙이는 식량으로 바꾼지 오래라서 그녀 로서
는 다른 대책이 없었다.다행히 솜씨를 인정받아 일감이 꾸준히
들어왔다.그녀의 희망은 오로지 자식들이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큰아들이 그 어렵다는 경기고등학교에 합격했다.그녀는
오랫만에 울고 또 울었다. 길고 긴밤의 외로움도 그녀에게는 사
치 였었다. 돌리고 돌린 재봉틀의 소리도 그녀의 인생과 같이
달달거렸었지만 자식의 합격소식에 모든 괴로움이 저 멀리 사라
지는듯 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시댁 식구에 대한 마음을
풀길이 없었던 그녀는 매일밤 일기를 썼다.마치 살아있는 사람
에게 대하듯 어느 날은 하소연 하듯 어느날은 욕을 퍼붓듯 그렇
게 자신의 모든것을 쏟았던 것이었다.딸둘은 혜진을 닮아 야무
졌다. 아무 걱정도 시키지 않고 대학까지 마치고 결혼을 했다.
큰아들은 대학교수가 되어 그녀의 자랑거리가 되었다.처음에는
고시공부를 했는데 번번이 이차에 실패를 해서 나중에는 그녀도
지치고 아들도 지쳐서 긴 의논끝에 대학쪽으로 노선을 바꿨던
것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품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모든일이
순조롭게 될수는 없는지 둘째 아들이 언제나 혜진에게는 두통거
리 였고 어쩌면 그녀를 지탱하게 해주는 힘인지도 몰랐다. 하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이였고 언제나 늙은 혜진의 목을 죄었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늙도록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다. 능
력을 인정받아 개인 지도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원래 일욕심도
많지만 내 한몸 움직이면 작은 아들의 생활에 보탬이 된다는 생
각으로 친구도 만날틈 없이 일하고 일했다.봄이오고 여름이 가
는 줄도 모르는 생활이였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도 못다한 사랑
을 불태울 기회는 있었다. 그녀의 모든것을 책임진다고 나타난
사람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였다. 그녀의 도덕성은 남의 가정을
파괴 할만큼 뻔뻔 하지가 않아서 미련없이 거절했다. 그리고
흰머리를 날리면서 아직까지도 자식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
는 것이다.작은 아들은 그녀에게 십자가의 무게였다. 전생의
업보라고 되뇌이면서도 그 생활의 일부라도보탬이 되어줄수 밖에
없는 현실이였다. 여자로서 살아온 세월과 어머니로서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보자기 안에 있는것을 조심스레 꺼냈
다. 이미 노을도 사라지고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있는 강물에 이
제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떨어뜨렸다. 차마 못다한 이야기가
강물속으로 통곡하듯 날아갔다. 그것은 그녀의 일기를 태운 재
였다 . 높이가 있고 무게가 없어서인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
지만 그녀의 가슴에는 큰 소리로 울렸다. 지난날의 슬품과 괴로
움이 한꺼번에 아우성 치는 느낌이였다.눈물인지 홀가분 함인지
뜻 모를 야릇한 표정이 떠올랐다 서서히 사라졌다.버려진 그녀
의 과거가 어둠속에서 물결이 되어 멀어져 가는듯 했다.이제 모
든 과거로 부터 해방이다. 밝힐수 없는 괴로움도 말할수 없었던
고민도 저 어두운 강물과 함꼐 이미 과거가 되어 그녀로 부터
떨어져 나갔다.다시 새롭게 사는거야.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아까
내린 택시를 타고 아무일도 없었던듯 집으로 들어왔다.어머니
식사하시지 않으시고 어디에 다녀오셨어요? 응 잠시 볼일이 있
어서 ..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 미숙한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