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 하나 가득 들이치는 느즈막한 아침햇살의 눈부심에 잠에서 깬 나는 습관적으로 시계를 쳐다봤다.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깊은 잠 속에서 깨어날 줄 모르는 평화로운 얼굴의 백설 공주처럼 딸아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다.
혼자 였을 땐 그렇게 허허벌판 같던 침대가 오랜만에 그득해진 느낌에 나는 괜시리 가슴이 벅찼다.
이 방을 드나드실 때마다 종합운동장이 따로 없다며 늙은 엄마를 울적하게 만들던 문제의 침대였다.
엄마의 눈총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킹사이즈의 침대를 고집한 건 순전히 오기 같은 거였다.
남편이라는 이름과 함께 십여년 이상을 더블침대에 익숙해 있던 나는
싱글침대가 주는 온갖 종류의 선입견이 진절머리나게 싫었다.
어쩌면 내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압축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토록 이유없이 화를 내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큰 침대에서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잠들 수 있어....
발정난 암코양이의 히스테리처럼, 못된 시누이의 트집처럼 스스로에게 시위하며 짜증을 내었던 못난 나였다.
베개에 침을 흘려가며 달게도 자고 있던 딸이 뒤척거렸다.
피곤하기도 할꺼야..극장으로 백화점으로 온종일 끌려 다녔을테니.
양재동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모처럼 시끄럽고 유쾌한 만찬이 끝난 후에도
노래방까지 들른 다음에야 짧고도 길었던 하루의 여정이 막을 내렸던 어제.
간밤에 딸아이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미 곯아 떨어졌었다.
이불을 새로 고쳐 덮어주며 나는 딸의 발등에 슬며시 입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오래전 어느 행복했던 풍경들이 떠올라 마음이 쓰려왔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이렇게 수시로 딸의 발에 입을 맞추곤 했었는데...
발등으로 발바닥으로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던 그 입맞춤은 딸에 대한 내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발로였다.
그때마다 간지럽다며 까르르 숨넘어갈 듯 웃던 아이.
이렇게 남은 시간들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아지는 순간이었다.
여행도 좋고, 어떤 종류의 이벤트도 좋고 뭐든 다 좋겠지만
느즈막히 일어나 토스트 한쪽씩 구워 먹고
다시 또 침대에서 뒹굴며 하루 해를 넘겨도 좋을 성 싶었다.
자고 또 자고, 먹고 또 먹고, 이불 속에 엉켜서 장난치고 떠들며
그렇게 정지된 듯한 찰나의 시간을 보내도 행복할 듯 싶었다.
잠든 딸의 윤기나는 머리카락 위로 떨어지는 빛의 입자들 처럼,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그 평화로운 장면들을 나는 온몸 구석구석에 붙잡아 두었다.
한번씩 꺼내서, 조금씩 꺼내서 힘들고 외로운 어느 날들에 위로 받아야지.
아마 오래도록 나를 웃음짓게 하고 지탱해 줄 내 생애의 가장 행복했던 그림일꺼야.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는 썩 내켜하지 않는 딸과 함께 집근처 목욕탕으로 향했다.
내 손으로 직접 딸아이의 몸을 씻겨줄 수 있는 마지막 추억이 될 터였다.
불과 며칠 후면 낯선 곳에서 중학생이 될 딸아이는
6개월 사이에 좀더 성숙해진 육체로 내 앞에 서있었다.
함초롬 봉긋해진 조막만한 딸의 젖가슴을 애틋하게 감싸고 있는 연분홍색 스포츠 브래지어는 그여자의 손길이었다.
브릿지를 넣은 단발머리에도, 기름기 흐르는 발그레한 볼에도...딸의 곳곳에 그여자의 흔적이 있었다.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지만,
그저 내겐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사치일 뿐이었다.
내가 떠나온 직후 생리도 시작했다는 딸아이는 그저 내 마음을 신산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해가는 그 길목 마디마디에서
엄마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자괴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상처였다.
딸이 이렇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물어가고 있는 동안
남편과 나는 서로를 할퀴는 생채기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못내 내 마음을 서럽게 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감정과는 상관 없이 딸아이는 내내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제 이모와 있을 땐 그렇게 잘 웃고 까불던 아이가 내 앞에서만은 계속 골을 부리고 있었다.
그 응어리진 마음 한켠의 슬픈 잔상을 그러나 나 역시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얽히고 ?鰕?실타래처럼 서로에게 꼬여 있었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너 왜 나에게 이리 못되게 구니....내가 뭘 잘못했는데....너 혼자만 피해자인 척 울상짓지 말란 말이야....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이 턱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랬다. 이혼을 요구한 건 남편이었다.
내 가슴에 폭풍처럼 이는 회한과 감정의 기복들 속에서 마침내 내가 내린 결론은
남편의 여자를 그냥 무심히 인정해 버리자는 것이였다.
내 자신과의 타협이기도 했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나만은 온전히 행복한 여자로 남을 거라는 객기를 부려 본 적이 없었다.
내 남편은 이런 삼류 신파극에서 예외일 거라는 헛된 기대도 가져 본 적 없었다.
내가 쉽게 현실과 타협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나란 여자가 지극히 현실주의자 였던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혼 후의 삶이 내겐 너무나 막연했고 비현실적이기만 했다.
줄기차게 이혼을 거부하는 내게 집요하게 이혼을 원하던 남편.
그는 가식적인 얼굴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였을지도 모르겠다.
주객이 전도 되어버린 상황에서 미친 여자처럼 실실거리던 어느날,
나는 탁,하고 위태롭게 남아 있던 마지막 한가닥 인연의 끈을 놓았다.
참을 수 없이 무미건조해진 지겨운 싸움에서 그것은 오히려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어차피 남은 생을 살아감에 있어 허허롭긴 마찬가지 였다.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