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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BY 장미정 2000-07-14


잠시 꿀먹은 벙어리 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에게
오히려 기분 괜찮냐는 말을 건넨다.

내 기분에 맞춰 얘기 할려는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먼저 무슨 말을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으나
아무말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말문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어쩜, 우린 결혼이라는 관례 속에서
서로에게 이해 해줘야 하고, 이해를 받아야 하는
이기적이면서 토속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몰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뜬금없는 나의 짖궂은 질문에 그녀는 황당해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절망속에
허우적 거리던 그녀......

갑자기 자기 혼자만의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가장 괴로운듯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을 부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없는 결혼 생활이였단다.
의무감...무든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상황대로
살았을 뿐이라며 후회를 감추지 않았다.

마치...무언가에 미쳐있는 듯한......
사랑!
바로 그것이였다.

너무나 애절한 사랑을 하고 있단다.
지금처럼 이렇게 행복할 때가 없었단다.

애란을 미치게 한 그 남자는
39살의 대기업 간부이며, 그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이였다.

단골처럼 다니던 이 가게에서 첨 본 순간부터
서로에게 반해 가고 있었다고 한다.
3일 만의 사랑.....
가능한 일인가?
그녀는 사랑을 이제서야 시작하는 것을 느낀단다.

그 남자만 보면 분수처럼 치솟아 오르는
격한 욕정을 감출 수가 없다는 그녀..
그녀의 언행과 눈빛 속에서 쉽게
말장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짐작 할 수 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시계를 보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벌거숭이가 된 채
나에게 털어 놓는 그녀의
사랑고백을 조금은 마무리 한 채........
자신을 이해할 수 있냐고 묻는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글쎄........"

전부였다.

도저히 이해 될 수 없었던 그녀의 사생활의
지꺼기가 어느 정도 걸려졌으리라 믿고
지낸 몇 주............

잠시 만나자는 진석으로 부터 연락이 온다.
퇴근 하는 길에 들린 커피숍엔
세초롬한 모습으로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진석을 볼수 있었다.

"미안하다..바쁠텐데.."

"아니....근데...무슨 일이니?"

"애란이 한테 들은 얘기 없니?"

"무슨?"

어느새, 난 능청스럽게 모든걸 알고 있지
않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즘 집에 안들어와...
그게...레스토랑에서 일을 한 후...
점점 이상하게 변해 가더라구...
사실 상사의 사모님이 하시는 가게라
별걱정 없이 간섭을 안했는데....결국은.."

"그래도 너에게 무슨 말이 없었니?"

"우리 부부 대화 단절 된지 좀 됐어.."

지금까지 조신하게 잘 지내던 애란의 행동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진석은 애란의 대한 분노와 원망이 솟구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며 말을 이었다.

"어쩜...애란은 첨부터 나에게 사랑 따윈
없었는지 몰라....
다만, 철부지 불장난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에
의무감을 갖고 나에게 온 것인지도.....
언제 한번 잠자리에서 그러더라구...
어느 여자를 첨 본 순간
마구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느껴본적 있냐구...
그 질문 할때 부터 짐작을 했어야 했는데.....
역시 난...첨에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미련한 건 어쩔수 없나봐..
요즘 내가 어떤 기분이 드는 줄 아니?
마치 철 지난 논 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허수아비 처럼 매우 쓸쓸한 기분이야....
미현아......"

"응......"

"혹, 애란의 전화가 오면...
나보다 네게 먼저 걸려 올거야
그럼....대신 말 전해줘...

당연히 있어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을 잃는 것은
몸 한쪽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지만,
그 반쪽이 떠난채 다시 돌아 오고 싶지 않다면
난 그 가는길 막을 수 없다고......"

진석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정리라도 한 듯
피던 담배 꽁초를 재털이에 문질러 꺼며,
그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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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이 집을 나간지 석달이 자나도록
그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알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였다.
아파트 단지내 공원에서
나무 뒤에 숨어 꼼짝하지 않고 있던 애란을 발견했다.

난 애란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별안간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충동이 일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듯한 핑계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 난 무심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잠시......들어가자.."

말없이 그녀는 내 뒤를 따랐다.
비를 고스란히 맞은 그녀는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아파트 내를 서성거리고
잇었던거다.

"미...안....해, 비오는 날,
청승맞게 찾아와서..."

그녀는 말을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했다.

"우리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샤워부터 하고 옷 갈아입어....."

그동안 그녀는 진정 사랑하는 삶의 마음을
확인이라도 받은 듯 행복의 취해 있었단다.
그녀가 돌아온 걸 난,
새로운 희망을 느끼고 있었던 건
잠시 후 나만의 착각이였다는 것을 알았다.

진석과 합의 이혼을 결정하고 다시 돌아온 거란다.
어쩜 진석의 조금은 한 발 물러서,
애란을 잡아 줬다면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황할 그녀도 아닐텐데...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

라는 애란의 말 한마디에 진석은
10년의 쌓은 정이 다 떨어져 나갔다던 남자였다.

약속은 애란이가 깬것이고,
진석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만든 것이다.

애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 지 모를 난처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세상에 어떤 남자가
자신을 배신한 여자의 행복을 바라겠냐마는
처음부터 두 사람 관계의 시작은
당연히 비극이 예정되어 잇었던 것일까?

서로 만나지 말아야 할 것을
서로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 길을 가야
했던 것을 구지 나서서
억지이상 인연을 엮어준건 아니였나 하는
미안함 감정이 맴돌았다.

정작 하고싶은 말을 모두 토해 내지 못한
그녀와 헤어질 때 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이 허락 된 것은 아니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간절하고,
절실할지라도.......

날지 못했던 새가
날개를 찾아가는 한 마리 새마냥
그녀는 유유히 아파트를 빠져 나갔다.



*끝*


== 그동안...재미 없는 저의 글을 읽어 주신
님들께....감사 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