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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자녀 1인당 출산 양육비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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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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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BY 장미정 200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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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할~~ 내가 뭐 월급쟁이야!
왜 허구언날 일찍 들어와라...
외박 하지마라..잔소리 해대는지원...."

"선배...그래두..형수님 같은 사람도 없어.
나름대로 자기 일 해가며
선배 한테 잘 하잖아.."

"야! 잘 하는 여자가 저렇게 깐깐하게 구냐?
너두 장가가봐...그런 소리 나오나..."

"하하하...그것두 한때라고 하더만...
지나면...싸움 하는것도 귀찮다고 하던데,
2년이면 싸울때도 지나지 않았나?"

"말 마라....날이 가면 더해...
예민해서리..나를 가만 두질 않는다니깐..."

"그건...선배가 이해해야지...
생겨야 할 애가 없으니..형수 심정은 오죽해?
어른들 볼 낯도 없을테구...
선배가 다독 거려줘야 되는거 아냐?"

후배 영찬의 말에 태민은 조용히 소주병만 기울린다.
영찬의 말도 틀린게 아니다.
어쩜 이럴수록 자신이 더 가정적이야 하구
어느 누구보다 아내를 챙겨줘야 할 입장이거늘
일에 파묻혀 있다는 이유로 소홀한 점이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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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를 뒤로 하고 나온 그는 6층의 그의 집을 보았다.
여전히 예상대로 불이 꺼진 상태였다.
미현이가 들어오지 않은걸 알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그는 안방으로 가보았다.
없었다. 다만 적막감만 흐를 뿐....

그는 자동 응답 스위치를 눌렀다.

[나야...나 잠시 여행 다녀올께.
출판사 다음주에 다시 나가니깐...
그 때 까지는 올거야...
나에게 3일 정도는 여유 줄 수 있지?
나온 후,갑자기 이러는거 정말 미안해..
그냥...잠시 쉬고 싶을 뿐이야..]

그래....잠시라면 좋다.
이해해주마...하는 그의 표정 속엔
허전함이 감돌고 있었다.

도저히...이런 상태에서 그는 아내가 없는 집에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늘 가던 작은 까페에 향한다.

몇 병의 맥주와 안주를 시키고,
그는 말없이 술잔을 연거푸 들이킨다.

그 곳의 마담은 30대 후반의 나이로
태민과 비슷한 또래이다.
늘 젊고 우아한 분위기가 풍기며
옆에 있어 주는것만으로도 충분히 편안함을 주는
그런 여자였다.

소문에 의하면......
결혼 1년 만에 폭력적인 남편의 정신질환
문제로 이혼하고, 위자료로 이 까페를 차렸단다.

가끔...혼자 있고 싶을 때,
그는 이 곳을 찾는다.
"로즈마리"라 하여
의외로 손님들이 많은 곳이다.

말없이 연거푸 술을 마시는 태민을 보고,
그녀는 말없이 다가온다.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허허...그렇게 보여요?"

"제가 잘못 짚었나요?"

"아뇨...제대로 짚었는걸요!~~ "

"옆에 좀 앉을께요..."

"그래요...오늘은 좀 한가하네요?..."

"그렇죠? 밖에 비가 올려나봐요..괜히 날씨 탓인지
손님 발걸음 마저 뜸하네요......"

"저......."

"네?"

"제가 여기 드나든지도 벌써 1년 넘은거 아세요?"

"아마...그 정도 되신듯 하네요.."

"그런데...말입니다. 제가 이 가게 주인님 성함을
아직 모른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하하하....그거...말이 좀 안되네요~~"

"그렇죠? 허허허.. 가끔 술친구는 되어 주신것
같아도...깊은 얘기는 안하다 보니..."

"전....이 로즈마리 주인이구...
이름은 이 하영 이라 해요."

"하영씨라.... 그럼..하영씨?"

"네...말씀 하세요?"

"제 아기 하나 낳아 주지 않을래요?"

"네??........."

"하하하...농담입니다.
그렇게 놀란 토끼 마냥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그냥...그냥 해본 소립니다..
답답해서리.....내가 새끼 하나 못낳는
능력없는 놈이라 생각하니 답답해서리....."

그러면서 그는 술 잔을 들고 한 숨에
들이키고 만다.

"울 마누라가 말입니다.
나 때문에 괴로워 집을 잠시 나갔는데...
아무래도...내가 못난 놈 같네요...
여자 마음 하나 못 알아줘...가슴치고 지금 후회 하거든요.
여행 간다고 간 아내가 왜이리 보고 싶죠?
집에서 잠이 오지 않을 듯 하더라구요.
허~ 그래서 이렇게 그냥...정말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나 정말 웃기는 놈이죠?"

"지금 다른데서 한 잔 하신데다가
여기서도 지금 여러 병째에요...그만 드세요.."

"그래야죠...내가 이런꼴로 무슨 남편 자격이 있다구.."

마담은 태민의 토해내는 인생의 찌거기들을
아무 말없이 들어 주고 있었다.

가게문 닫을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태민의 눈치만 보는듯 했다.

태민은 뚜벅뚜벅 걸어 나와
카운터 쪽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어 계산하며,
"내가 미안해 하는거 아시죠? 허허..."

"후후...괜찮으니..조심해서 댁에 들어가세요.."

"그래야죠...전 이만 갈랍니다..죄송했습니다."

그는 까페의 문을 힘없이 밀며 나온다.
자정이 지난 시간....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한적은 도로에 보이는건 가게의 네온싸인과 차들의
행렬 불빛 뿐이다.

죽을 힘을 다해서 불빛을 향해 가고 있는 간절한 희망.
매순간 그 불빛이 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지만 밤길 속에서
그 불안이란
곧 바로 절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간힘으로 단호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시간이란
하루나 일주일, 혹은 한달을 단위로 하여
한 묶음씩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태민은 여전히 원하는 단조로움 속에서
그런대로 지내리라 생각한다.

시간은 의미를 부여한든
부여하지 않든....말없이 흘러 갈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