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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BY 장미정 2000-07-01


겨우 잠든 밤은 어느새...
창문 커튼 사이로 삐져 나온 작은 햇살 한 줄기가
날 잠에서 깨우주고 말았다.

무심결에 시계를 보았다.
오전 7시 10분을 막 넘겼다.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 입을때 까지
거실에서 작은 소리 조차 나지 않는다.

그 느낌 하나로 태민씨가 어젯밤 들어 오지
않았다는걸 예감 할 수 있었다.

거실로 나와, 앞치마를 두른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서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남편을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여자....

짜증이 난다.

씻다 말은 쌀 바가지를 툭 던지듯
내팽겨 친 후,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의 핸드폰은 메세지를 남겨라는
낯설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메세지를 남기긴 남겨야 할 것 같았다.

[언제 들어와?]

그것 외엔 할 말이 더이상 없는듯
난 그렇게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밥을 하다 말며, 난 소파에 걸쳐 앉았다.
그리고는 혹, 모른다는 마음에
자동 응답 스위치를 눌렀다.

메세지가 남겨져 있었다.

"나야...미안해..오늘 좀 늦겠다.
만화 출판 기념으로 동안 수고한 넘들끼리
쫑파티 한다...
아~ 미치겠네...야..여기 시끄럽거든..
그렇게 알고, 먼저 자라...미안...."

온통 시끄러운 소음같은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노랫소리에 대략 장소는 짐작 갈만했다.
그래..그는 그렇게 밤을 새고 만 거였다.

하다만 식사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왠지 어제 저녁도 굶은 탓에 힘이 없었다.
먹고 기운을 내고 싶었다.

된장찌게에다 계란부침.
김치에다 단촐한 식탁위에 난 홀로 앉았다.
딸그락 거리며 젓가락질을 하며
우거적 먹어야 하는 나 자신이
왠지 자꾸 초라함으로 다가 왔다.

이럴때,..애기라도 있으면...
아이의 웃음 소리...아니, 울음소리라도
들으며 쫑알 거리며 밥을 먹을텐데......

언제 들어올지 모를 태민씨를 기다리듯
난 시계를 의식한다.
오전 9시가 되어 간다.


더 짜증이 날 것 같은 내 감정을 눈치라도 챈듯
초인종 벨이 울린다.
그였다.

하루 사이에 부석해진 그는 머리를 가다듬으며
들어선다..

"아...미안해..어제 술 마시고, 3차로
화실에 갔는데...거기에서 다들 쓰러졌다시피
했잖아...도저히 올 자신이 없어서 자버렸어..
미안하다야~~"

"밥 먹어야지?"

"아니...속이 좀 그렇네..."

"그럼 좀 기다려..."

싱크대 위 에서 난 꿀통을 꺼내어
몇 숟갈 떠내어 컵에다 넣어,얼음과 생수를
부어 꿀물을 만들었다.
그에게 내밀며....
"마셔........그리고......"

"응..."

"담부터 늦더라도 좋으니, 외박은 하지마!"

그 말만 남긴 채,
난 안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잠시 집안은 냉바람이 돌고 있었다.

침대에서 들어와 이불을 덮고 누울 찰라에
그가 방문을 열어 재낀다.

"그깐 일로 아침부터 그렇게 인상 찡거릴 필요 있어!"

"그깐 일?
그래? 태민씨는 그깐 일이야?"

"도대체 왜그래? 남자가 바깥일 하다보면
늦고 술마시다 보면...하루 정도 못 들어 올수도 있지."

"그렇게 자유롭고 싶은 사람이 결혼은 왜 했는데?"

"그만하자...그만 하자구...
예민해 있는 것 같은데....그만해!"

그는 금방 수그러든다.
어쩜...서로가 지쳤는지 모른다.

어느 날, 꿈속에서 딸을 봤다는 그.....
막 돐 넘긴 딸 아이를 거닐고 공원을 산책하다가
잠에서 깼다는 그.....

어쩜...서로가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꿈 속에서 볼 만큼......

집착이 강한 것도 아닌데.....
서로의 예민함은 깊어 가고,
너무나도 사소한 것에 우린 목숨이라도 건듯...
이렇게 서로를 할퀴고,흘뜯고 있었다.

술만 마시면....
"나에게 미안해 하지마....
어쩜..하나님이 우리 둘만 깊이 사랑하고
더 아름답게 살아라고 아직 아기를 보내지 않은지 몰라.
기다리다 안 오면 우리가 필요한 천사가 없다고 생각하자.
그리고...맘껏 서로만 사랑하자.."

그렇게 자꾸 날 위로할려고만 했던 그였다.
어쩜 그건 위로가 아닌...
나에겐 심한 우울증과 고통의 시작이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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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거실로 나왔다.
그는 소파에 앉은채 담배를 물고,
TV를 보고 있었다.

"나..잠시만 나갔다 올께.."

"어디 갈려고?"

"아니..그냥...바람도 쐴겸...
핸드폰 놓고 가니깐....연락 하지마..."

"미....미현아..."

"걱정마...그냥...잠시 머리 식힐려고 나가는 거니깐.."

그는 나가는 나의 뒷모습만 볼 뿐...
더이상을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