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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BY 장미정 2000-07-01


10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난....
태민씨와 8년의 연애 생활을 청산하고 결혼을 했다.
태민씨는 여전히 만화를 그리고,
난 삼촌의 작은 출판사를 도와줄 겸 공부도 할 겸
글 쓰기 작업을 간간히 해왔다.

2년의 결혼 생활.....
여전히 애기가 없다.
불안해 하는 친정엄마의 마음은
기여코 점쟁이 집을 찾게 했고,
난 팔자에 자식이 없다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듣고 와야만 했다.


거실에 놓여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
야채칸에 야채가 아닌 한약팩이 가득하다.
아기를 갖기 위한 시어머님과
친정엄마의 마음이자, 나에겐 큰 부담이 담겨 있는
약이다...

의식적으로 난 팩하나 잡고,
가위로 조금 잘라내, 머그잔에다 부어
전자렌지에다 집어 넣는다.

윙~ 윙~ 하며 돌아가는 렌지소리 ...
잠시후...삐삐 하며 끝났다는 신호음이
또 다시 울린다.

벌써 약을 먹어 온지 일년......
쓴지 단지도 모른채...의식적으로 먹어왔다.

입에다 잔을 대는 순간......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여보세요?"
"나야..."

애란이였다.
"웬일이야?"

"웬일은....그냥....
근데...나 지금 너희 집에 가도 돼니?"

"오는거야 뭐 문제니?
무슨일 있어?"

"일은.......그냥...지금 출발 할께.."

애란은 바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오고 가는 시간이 고작 10분이면 되는 거리이다
보니...왕래가 잦을 수 밖에 없다.

그녀는 나름대로 이른 결혼을 시작해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산다.

은비가 벌써 초등학생이 되어버렸다.
그 후, 은비의 동생은 생기질 않았다.

온 집안에 한약 냄새가 진동 하는 것 같아,
난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 사이로 지나간다..

딩동~
벨 소리와 함께 난 그녀가 온걸 알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10년 전 애란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어머...약 먹었니?"

"냄새 심하지?"

"아니..괜찮아... 근데..너두 지겹겠다..
챙겨 먹을래니..."

"후후...그렇지뭐..
은비는?"

"피아노 학원 갔어. 기집애..요즘 학원 다니기 싫다고
난리야...호강에 받쳐서리...
하고 싶어도 못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너무 무리하게 시키지 마...
싫다는 거 억지로 시키면
안하는것도 보다 못하잖아..."

"그래도..안돼...조금만 여유를 줘봐..
나사 빠진 애 마냥...정신을 못챙겨...
그래서..가능하면 이것저것 보내는거지.."

"그.....래..."

자식이야 키우는 사람이 더 잘 알겠지...
난 대화의 한계를 느끼고 만다..

그걸 알아 챈 듯 그녀는 말을 돌린다.

"나....요즘 아르바이트 할려고 해~"

"웬 아르바이트?"

"너...요 상가 입구에 위치한
벨라지오 라고 알지?"

"응...레스토랑 이잖아..."

"그래...그 곳 주인 언니가 울 남편
직장 상사 부인 이잖아....
그래서, 내가 도와 줄겸 낼 부터 아르바이트
하기로 했다는거 아니니..."

"진석씨는 허락해서?"

"그럼...길지도 않고, 하루에 5시간만 봐주기로 했거든."

"허락 했다면 문제 될건 없네..."

"첨엔 방방 뛰더라...
남자들 시선 받아 가며 그런데서 일하는것 용납 못한다며..
근데...그 언니가 전화 한번 했었거든.."

"뭐라고?"

"그냥...걱정 하는 일 없도록 할테니..
자기 하는일 당분간만 도와 주게 해달라고..."

"음.....그래도. 진석씨 입장에선
직장 상사 부인이다 보니....거절할 위치도 아니였겠다."

"그렇긴 한데...
솔직히, 나두 10년 동안 집에서 살림만 했잖아.
갑갑할 때 잘 됐지뭐..."

"그래...핸튼 시작한 일이니, 잘 해봐..
혹시 아니..그렇게 시작하면서
너도 가게 하나 차릴지..."

"마저...나두 그런 욕심으로 지금 시작 해볼려는 거야."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마음에
그녀는 들떠 있었다.
한참의 수다를 마무리 하고 그녀가 나간 후
집은 또 잠잠해진 호수마냥...
조용하다.....

출판사의 번역 작업도 마치고,
한가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지도 일주일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과하고 난 지루함을 느끼고 만다.

거실의 뻐꾸기 시계 바늘은
저녁 8시를 향햐고 있다.

늘 퇴근이 늦기만 하는 태민씨를 기다림 조차도
오늘은 날 가만 두지 않는다.
늘 무언가에 ?기듯 일을 해야만 하는 성격탓인지
살도 조금씩 빠져 가고,
일주일의 한가로움도 나에겐 기나긴 터널 마냥
어둡기만 하다.....

어느 날 부터인가
긴 밤을 조금이나마 날 잠재워 주는건
수면제 한 알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