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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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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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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BY 유수진 2000-09-22

'탁!'

손끝의 떨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떨어뜨린 붓을 집으려고 휠체어에서 몸을 숙였지만, 복부의 강한 통증이 이내 배를 움켜잡고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보호자 간이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자고있는 진재오빠를 창백하게 쳐다봤다.

반쯤 벌린 그의 입술.

이를 악물었다.
예정일은 한달 조금 더 남았는데.....
지독하게 고통스러웠다.
끊임없이, 뭔가 강한 쇠붙이 같은것이 짓누르는듯.....

고통의 조각들을 주워담고, 다시 펼쳐진 부활한 행복의 조각들
을 맞추고 있는데....
너무나 너무나 행복해서, 그 표현들을 넘치도록 그려내도 모자랄것 같은데....
내 몸이 이러니, 자꾸 더디게만 움직이고, 거기에 비해 시간들은 너무나 빨리 나를 비켜 지나갔다.
이제, 겨우 행복 조각 세점을 완성했을 뿐인데.....


'쿵'

애절한 상념에 빠져있다 느닷없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두리번 거리니, 오빠가 병실바닥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어~어우~ 아퍼!"

그는 한쪽팔을 움켜잡고 비어있는 내 침대를 올려다 보고는, 이내 나와 눈을 맞췄다.
머쓱한 그의 미소에 나도 얼른 입가에 미소를 띄워보냈다.

"뭐야~
해인이 너 또, 그림 그리고 있었어."

"오빠, 괜찮아?"

"으,으응
어휴~ 되게 아프다 야."

"후후~"

저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오빠는 리드미컬하게 내쪽으로 걸어와서는, 떨어진 붓을 주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밤 자꾸 새면 큰일나.
그만해!"

"으응....
하지만, 나 너무 행복한데.....
'이해인이 행복도 표현할 줄 아는 화가구나.'
'이해인이 행복했었던때도 있었구나....'

나중에, '이해인이라는 화가 작품은 왜 이렇게 무섭고, 고독하고, 분노만 가득한거야' 하면 어떡해."


그렇게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불행위에 표류해 있고 싶지 않았다.
이제 행복의 노를 저어가며 이 행복을 마구 승화시키고 싶었다.
병들어 조급해진 마음이 때로, 내 표현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천여점도 그려낼 수 있을것 같았다.
안타까웠다.
힘없이 떨리고 있는 내 손끝이.....

오빠는 나를 안아, 침대위에 소중하게 올려 놓았다.

나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른채, 뜨거운 눈빛으로 속삭였다.

"오빠...
사랑해."

오빠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그 시원한 입매로 '허허'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고맙다.
그소리, 영영 못들을줄 알았어."

부드럽고 촉촉한 오빠의 입술이 내 이마위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내 콧등을 따라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
코끝에서 멈추는가 싶더니 내 입술을 포근하게 덮었다.

오빠의 떨리는 눈꺼풀과 긴 속눈썹 한가닥까지 전부 머리에 각인시키고 싶어, 눈을 더 크게 뜨고 오빠의 모습을 붙잡았다.




어디선가, TOMMASO ALBINONI의
'Adagio fur Streicher und organ, G-moll' 의 선율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환청일까?

내가 즐겨 듣던 곡.......

이 황홀한 순간을 자제시키려는듯,
서서히 뚜렷한 선율이,
살을 에이는 통증을 불러오고 있었다!

"헉!"

순간!
폐부를 관통하는 무서운 통증!

음의 선율이 온몸을 휘감은걸 느끼면서,
오빠의 품속으로 까무라쳤다.

"해인아!"

오빠의 비명소리에, 수습할 수 있을 정도의 감각을 순식간에 되찾은 난,
두려웠다.
무서웠다.
혼자 감당해야하는 죽음의 순간이라니.....
오직 혼자만이.....
다시, 옛날의 그 치열한 고독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오빠!"

얼른 그를 불러, 지금의 현실을 움켜잡았다.

어깨를 붙잡고, 나를 들여다보려는 오빠를,
온몸을 부들거리며 끌어 안았다.

"해인아...
놔봐! 얼른!"

"오빠..."

"말해.
아프니...."

"오빠...
나 무서워...
오빠,
나 무서워 죽겠어."

"놔봐!
얼굴좀 보자.
해인아..."

"오빠...
나......
나,
살고싶어.
오빠...
나 살려줘!
오빠, 나 살고싶어.
살고싶어!"

"해인아..."

"아......"

복부에서부터 느물 느물 암울한 통증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야금 야금 나를 씹어 삼키는 무서운 고통!

"아아.....아....
아악!"

"해인아!"

"악!"

오빠는 순식간에 나를 들쳐안고 뛰기 시작했다.

마구 흔들거리는 오빠의 품에서 일그러진 내 몸뚱아리가 춤을춘다.

오빠의 얼굴을 한번만.....
오빠....

앞만 보고 뛰는 오빠의 얼굴....

오빠....
해인이좀 봐...
나좀 봐...
나좀 봐줘.
나....
사랑한다고 한번만....

눈앞이 피빛으로 물들었다.

춤을 추던 내 몸뚱아리가 둔탁한 침대에 닿는 느낌 위로,
다시 시뻘건 피의 바다가 나를 삼켜 버렸다.

숨쉬기가 너무 두려웠다.
눈이며, 콧구멍, 목구멍속으로 핏물이 가득차 있었다.

살려고 버둥거리는 내 육신이 숨을 들이켜버린다.
가득찬 핏물을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들이켰지만,
숨을 쉴수가 없었다.

"어헉..으어..억..어...헉.."

피의 바다 속에서 나는 숨을 꼴딱거리고 있었다.

"마취 준비해! 허선생 불러오고!"

의료진중 한사람의 흥분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피로 물든 눈빛으로, 집요하게 의료진들속에서 오빠를 찾기 시작했다.

"오...."

"이해인씨, 제말 들리세요?"

"오...빠................오....."

"해인아!"

"이해인씨...."

"오...빠오......."

"해인아....."

오빠가 보인다.

"오빠....
가...지마...
내가...잘못했..어"

"해인아....."

"오빠....
나....."

"보호자분!
이쪽으로 나오세요. 빨리요!"

"아.....안.....돼..."

"해인아....."

눈물이 내리고 있는 오빠의 두눈빛이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위로....
뿌연 안개가 뿌려졌다.

안개는 서서히 내 통증을 빨아들이며
온 사방을 하얗게 채워갔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