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려들 있는 비닐하우스 위로 부서지는 초가을 햇살,
그 투명하고 눈부신 빛의 굴절에 내 시력을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옥수수와 앙증맞은 키작은 나무들이 빙 둘러져 있는 초록숲속으로 빨간색, 파란색 현대식 원색 기와지붕들이 도드라져 보였다.
웅장하고 광활하게 펼쳐진 초록 논밭들 끝으로, 드믄 드믄 형성된 아파트 밀집지역들이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나의 화니가 부활한듯 광활한 초록 논밭 한가운데 씩씩하고, 튼튼하게 우뚝 서있는 거대한 나무.
거목이 만들어낸 넓디넓은 그늘아래 경운기를 대놓고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찍어내고 있는 밀짚모자를 쓴 농부의 모습이 평화로와 보였다.
이쯤에서 연필을 쥔 손을놓고, 도화지속의 풍경들을, 눈앞에 펼쳐진 안산 풍경들과 대조했다.
그리고, 다시 멀리 옥수수와 키작은 나무들 뒤로 가꿔진 작은숲 언덕에서, 약을 치는 사나이들 서너명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늦여름의 끝자락을 움켜잡은 날씨 탓일까.
사랑원 건물앞 나무숲이 만들어낸 그늘 아래에 앉아있는데도, 땀이 비오듯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해인씨....
아까부터 왠 땀을 그렇게 흘려.
저녁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냥 병원 들어가는게 나을거 같은데..."
"아니....
괜찮아요."
마당의 빨래를 걷어 툇마루에서 개키고있던 그녀는 넓직한 수건한장을 들고 내려와 내 이마를 부드럽게 닦아줬다.
따뜻하고 자상한 그녀.
넉넉하고 투박한 그녀의 손길은 세번째 방문임에도, 오래전부터 길들여진, 아니 어쩌면 너무나 간절히 그리워했던 엄마의 그것이었다.
"도련님 불러 줄께요.
도련님, 도련님...."
난 내 이마에 머문 그녀의 손길을 붙잡았다.
"아니에요.
오빠, 바쁜가본데 그냥 놔두세요."
그녀는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더니, 푸근하게 미소를 보낸다.
"엄마 되기 쉽지않지...."
나는 힘없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기를 임신하고, 아기를 키워봐야 엄마 심정을 안다니까...
아!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가져서, 이렇게 힘들게 키우셨구나."
"................."
육신의 소름끼치는 한기에도 찾아들수 없었던 엄마의 품...
꿈속에서 끝없이 쫓아가던 엄마를 찾아 눈을 떠도, 언제나 굳게 닫혀있던 엄마의 방.
내게 엄마는 언제나 차갑고 칙칙한 암흙의 터널속같은 과거를 부여안고 살아가게 했던 존재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들에대한 일방적인 간절한 소망 하나로 서성이며 기다리는 존재지....
해인씨도 이제 그 어머니의 길로 입문하는거야.
소감이 어때?"
"제가.......
살아있어야할 이유지요.
그게............"
"와~
절절하다.
음......
그 이유 말고는 살아있어야할 이유가 없다는 말로도 들리네.
내가 너무 예민했나...?"
"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전 남은 생을 죄책감으로 채워야할거에요.
피를 토하고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한이 있어도, 꼭 이 아이를 세상밖으로 살려내야할......
그래서,
제가 사는거지요."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들고있던 수건을 떨어뜨릴뻔하다, 얼른 움켜잡고는, 잠시 당황한듯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내가 스케치한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킨체, 두런두런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솔직히 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야....
후후....
그거알아.
불임 여성들이 이론엔 더 밝다는거....
아이를 가지고싶은 간절함이 모든 책들을 다 섭렵하게 만들더라..
임신의 경험없이, 내 아이를 키워본 경험도 없이, 정말 내가 우리 사랑원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있긴 한걸까....
끊임없이 반문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지.
그렇구나...
엄마란....
모성이란.....
난 아직 우리 사랑원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절박한 감정 느껴본적이 없어서....
놀랍고, 당황스럽고....."
"죄송해요...."
"아니야.
아주 아름다워 보이는걸.....
다만.....
도련님이, 가끔 상심한 모습을 보이셔서...."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다 잘될거야.
그럼~.
해인씨 마음먹기에 달린거야.
'내가 꼭 이깟병따위 이겨낸다' '아기도 무사히 세상구경시켜줄거다'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니까.....
해인씨가 먼저 굳게 믿어야해.
할수있지!"
눈을 반짝거리며,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는 그녀에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답답해져오는 가슴을 움켜잡고 외면하는거외에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