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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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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BY 유수진 2000-07-15

" 해인아!
뭐하는 거야! "

그의 우왁스런 손길이 내 어깨를 '홱-' 잡아 끌었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어깨가 으스러질것 같았다.

난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물끄러미 돌아보다, 이내 코웃음이 나왔다.

" 허-! "

어깨를 잡은 그의 커다란 손을 밀어내며 빈정 거렸다.

" 뭐하는 거에요!
.............
왜?
내가 이 창밖으로 뛰어내리기라도 할 거 같았어요? "

진재오빠는 잠깐 멈칫 하는가 싶더니, 계속 밀어내고 있던 내 조그만 손을 힘주어 잡았다.

난 한손으로 내 반쪽의 몸을 지탱하기가 벅차, 필사적으로 손을 빼려했다.

순간!
'털퍼덕' 주저앉아 그대로 나를 안아버리는 그......

언젠가 내 코끝을 자극했던 향긋한 스킨 향속의 넉넉한 그의 품....그의 상쾌한 바람 냄새에 취해 끌려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대책없이 밀려드는 행복감에 당혹스러웠다.
지금의 현실에 이런 사치스런 감정이 밀려들다니....
인간 이하의 말종이다. 난........

'두근 두근 두근 ......'
마구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심장.

그가 나를 뒤에서 품은게 정말 다행이다.

내 감정 다스리기에, 이 요동치는 느낌이 그에게 전해져봤자, 좋을건 없으니까......

난, 숨죽여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내 음성에 고루 고루 강약이 들어갈때까지 충분히 냉정을 되찾았다.

" 진재오빠! "
" 해인아... "

나의 냉정을 흐트러뜨리는 그의 온화한 목소리에, 서둘러 말을 이었다.

" 해인이가 먼저 .. "
" 나, 가지고 싶으세요? "

진재오빠는 내 어깨에 걸쳤던 머리를 번쩍 치켜들었다.

" 나,
가지고 싶으면, 가져요! "

" 너...... "

" 왜?
이제, 너무 더러워서....?

남자들도 다 똑같은거 같던데....
여자면 병신이 됐건, 나이만 어리면 그만 아냐...
어린여자의 정기를 먹으면, 젊어진다고....

오빠도 지금 그런거 아니에요?
자.....
마음데로 해봐요.
....가지라니까.. "

" 그만해! "

벌떡 일어나는 그를 느긋하게 돌아다봤다.

오빠는......

정말 무척이나 키가 컸다.
내목이 뻐근할 정도로.....
마치 우리의 엇갈린 인연의 높이처럼....

언감생신, 그와 같은 높이로 시선을 마주하려했으니.....
우린, 지금 이모습으로 살았어야 했다.

" 너.......
왜이래... "

" 병신에 비뚤어진 성격....
게다가, 다른남자의 아이까지 임신한 여자를,
지극정성 병간호에......
사랑이란 허울좋은 이름을 뒤집어 씌워놓고....
이젠, 솔직히 말할때가 된거 아니에요.
정말......
바라는게 뭐에요?

비록 병신이지만, 꽤 있는 집안 딸이니까 한밑천 톡톡히 잡아보자는거에요? 아님, 정말, 한번... "

" 그만해! 해인.... "

무겁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적잖이 위압적이었다.

" 니가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속에 있는지 잘 알아.
그만해.....
니가 어떤 말을 해도.....
그게 나를 사랑해서 하는 소리라는거 다 안다.
불안해 하지마....해인아....
내 사랑은 변함없이 너 하나야.... "

" 훗~
착각 하지 마세요!
동정 하지 마세요!
오빠 인생까지 망쳐가면서..... "

" 동정도 사랑의 일종이야... "

진재오빠를 향한 내 얼음짱같은 목소리가 내자신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 그런종류의 사랑따위 필요없어요!
그리고.....
지금 이 배속에 자라는 저주의 씨앗은 절대 안 죽여요!
두고 두고 내 복수의 칼을 갈게 할거니까.... "

" 해인아....
누구도 아기에게 손 못대....
네 가족들 말은 잊어라.... "

" 동정 거두시고 그만 사라져 주시죠.
내게 남은건 복수의 감정뿐, 사랑이란 사치스런 감정 들어올 틈 없어요!
그리고, 그 사랑의 종류가 동정이라면 더더욱.... "

" 내말에 오해를 했구나.
난 너를 사랑했기에 동정을 하는거다.
결코, 널 동정해서 사랑한게 아니야. "

" 오빠하고 말장난 할 시간 없어요. "

" 왜......
여기서 또 달아나려고....? "

" 그말은 마치 또 누군가와 동침하려고..
하는거처럼 들리는군요. "

" 해인아! "

" 경진이 있잖아요.
걘 다리도 멀쩡하고, 머리가 좀 텅 비었긴해도
내 대신 한밑천 잡기에는 걔가 더 적격 아니에요.
마침, 오빠한테 목메고 있는데.... "

" 이해인! "

오빠의 고함소리가 병실을 '쩌렁' 울렸다.

목을 조르는듯한 숨막히는 침묵 속에서 우린 싸늘한 시선을 부디쳤다.

이윽고, 오빠의 입이 움직였다.

" 나.....
지금 무척 힘들다.
너무.....
지쳤어.
계속되는 너의 냉소에도....

나도.....
사람이고 한 남자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괴로움.....
그리고, 소중한 나의 너에게 일어났던 그모든 일들이.....
나를...
마구 흔들어대고 있어.
너까지 이러면.....
난.......... "

오빤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문앞에서 다시한번 나를 돌아보며 힘없는 목소리를 쥐어짜는듯 했다.

" 휴~
미안하다.
내게 시간을 줘.
당분간..... "

그렇게 바람에 한숨을 실어놓고는 사라져 버렸다.
진재오빠.....

'털퍼덕-' 엎어졌다.

침대의 다리 네개가 마치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나온듯한 착각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려드는 구역질나는 재앙의 씨앗!

" 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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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m! "

" 누나......
이 붓.....
바탕색 칠할때 제격일것 같아서.... "

" 경빈아! "

멀뚱 멀뚱 소처럼 쳐다보는 경빈의 천진한 눈망울에 대고 또박 또박 강조했다.

" 다시는 이런거 사오지마!
알았지. 난 그림같은거 이제 안그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여기 오지마! "

" 누나......... "

금방 울상이 되어버린 나의 어린왕자.....

"누나, 난.... "

" 가! 가란말야.....
나 미치게 하지말구....
빨리 가!
빨리! "

'툭-!
탁-!'

베개며 침대머리맡의 티슈통을 미친듯이 던져대는 내 발악에도 경빈은 얼어붙은듯 꼿꼿이 그자리에 서 있다.

" 가란 말야.
이새끼야...
가! "

활활 타오르는 분노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몸부림 쳤다!
그 불같은 분노를 온통 받아줄 상대가 내사랑하는 동생밖에 없었다.

" 가!
가버려....
다....
꼴보기 싫어!
가!
으아아아아아아악-
으악- 으악- 으악! "

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 누나.....! "

" 으아아악 - 으아아아악 - 으악- "

'철썩! 철썩! 철썩! 철썩!..... "

유일하게 필요이상의 구실을 해주던 내 손으로 사정없이 내뺨을 갈겨댔다.

경빈은 그제서야 뛰어나가며 의료진을 불러대고 있었다.

" 선생님, 선생님...의사선생님...선생님좀 불러주세요. "

경빈이 뛰어나간 문으로 하얀 포말이 일었다.
뭉게 뭉게 피어나는 하얀 모레 포말 뒤로 새까만 수평선이 그려지는가 싶더니, 점점 내시야를 그득 메웠다.

말떼들......
언젠가 봤던 그 말떼들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 히히히히히힝....히히히히히히히히힝.... "

' 다가닥 다가닥 다가닥... '

" 히히히힝...히힝...히히히힝... "

두팔로 온몸을 꼬옥 감싸않은체 엎드렸다.

" 아아아악- ! "

" 히히히히힝.....히히힝..... "

말떼들은 사정없이 내 몸을 짓이기며 지나갔다.
무섭게 흔들어대는 시뻘건 통증들이 사지를 마비시켰다.
그리고, 시커먼 죽음의 감각이 나를 암흑속으로 내동뎅이쳤다.


칠흙같은 암흑이 나를 다시 토해냈을때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경진이 간호사와 얘기를 주절거리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낯익은 모양의 눈.......
경진의 손짓에 간호사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쌩' 나가버린다.

" 너! 뭐야... ! "

다짜고짜 달려들 기미를 보이는 나를, 경진은 눈에 익은 미소로 빈정거렸다.

" 태평이다.. "

" 또, 무슨 꿍꿍이야. "

" 너한테 알려줄게 있어서....
진재오빠랑은 완전히 끝났다면서...?
요즘 아예 안온다는거 정말이니? "

" 꺼져!
역겨워! "

" 너, 말 자꾸 함부로 하지마!
병상에서 머리끄뎅이 잡는씬 연출하고싶지 않으니까..
간단히 말하지.
현수... "

" 듣기싫어!
어서 나가지 못해! "

" 호-!
이게 아주 기세등등이네.
너 바보아냐?!
하긴, 가정교사 그 뚜벅이가 피임같은건 안 가르쳤겠지. "

난, 반사적으로 스프링처럼 튀어내렸다.

경진은 재빨리 문쪽으로 몸을 피하며 소리쳤다.

" 하현수 죽었다! "

난...........
튀어내린 그 자세 그대로 얼어 붙었다.

놀라 털퍼덕 앉아있는 내모습에 안심을 했는지, 경진은 문에 기댄체 계속 말했다.

" 아주 큰일을 벌려놨어.
너만 지나가면 모든게 태풍 지나간 흔적이야.

해빈오빠가 때릴때 넘어지면서, 대리석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디쳤어.
그 후로 지금까지 뇌사상태로 겨우 목숨 부지하다, 얼마전에 산소호흡기 땠다.

이제, 해빈오빠의 긴 옥살이만 남았어. "


경악했다.

이건, 경진이 지어낸 거짓말 같았다.
거짓말이길 바랬다.
그녀가 내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기위한 준비된 시나리오 였기를 정말, 간절히 원했다.

귓전을 윙윙 울리는 그녀의 거미줄같은 목소리.

" 이 대사를 읊조리는건 아무레도 내가 가장 적격일거 같아 이렇게 전한다.
지금, 엄마 아빠는 법정 뛰어다니고, 변호사 선임하느라 정신없고......

넌 우리집안을 완전 말아먹은거야.

축하해.
니가 끊임없이 추진했던 일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