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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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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BY 유수진 2000-05-24


" 음...아....아.........으음......아아아........아.......
아악............아아..............."


천정의 꽃등 다섯개를 멍하니 마주하고 있는 내 육신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숨을 시원하게 내쉴수가 없어 목까지 가득채운후 '꼴딱 꼴딱' 삼키고, 삼키고.....

그림을 그리고싶었지만, 낯선 침대에 낯선 방.....
도저히 일어날수가 없었다.

그대로 잠을 청해보려고 했지만, 정신은 마음과는 달리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허억....헉........허.......억...허억.....헉..."

하현수의 신음소리도 들려왔다.

"아아아아악...........아악.........아아....아....아.
학............아아아아.............아.........."

벽하나를 사이에 둔 저 짐승들의 신음소리는, 차라리 내 눈앞에서 하는 짓거리보다 더 치가 떨렸다.

"아아아아아아악!"

여자의 신음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끝났는가 싶으면, 계속되는 저 짐승들의
교미!

더러운것들.........

내가 구석방에 있다는걸 알고 즐기는 하현수.......

?!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이불에서도 온통 하현수의 끈적 끈적한 냄새가 나는듯 했다.

'홱' 걷어 옆에다 던져놓고,
아직 정리하지 않아 입만 쩍 벌리고 있는 침대 옆의 트렁크에 마치 창자가 튀어나온듯 여기저기 삐죽이 꼿혀 있는 옷가지들중 눈에 익은 검은 코트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마구 쑤셔놓은 옷가지들이 엉킨 탓인지 쉽게 빠지질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찌이이이익----!'

귀찮았지만,
몸을 일으켜야했다.

트렁크속의 옷들을 주섬 주섬 골라, 그 찢어진 코트를 들어 펼쳐보았다.

겨드랑 부분이 반쯤 찢어져 있었다.

" 후우~ "

한숨이 나왔다.

" 으허어억........헉...헉.....아!아!아!........헉..."

그 짐승들의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눈을 한번 흘기고는,
그냥 그 찢어진 코트를 덮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아악....악....."

"허억.........억..........헉!"

"어우.....어우......그만....그만....악..........악....
야!.. 하...현수 그만해........아아악.............그만..."

"헉헉......허억.......으......헉......"

"야! ..그만 ...하라니까......
너 언제까지........악.......아악......어욱....
야! 아퍼!.......아퍼어..........
아악!
이 변태...........헉......아.....아........"



하현수의 오피스텔로 들어온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그동안 그는 벌써 세차례,
여자를 끌여들여 저 짓을 하고 있는것이다.

마치 나를 의식하고 하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

여긴 그의 오피스텔이니, 그가 어떤 짓을 하건 상관 없어야 했다.

나는 있으나마나한 잡초니까...........



지금쯤,

집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나를 찾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 홀연히 없어지길 내심 바랬을지도.....

또 어쩌면, 가족이라는 의무적인 감정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을지도.......



짐승들이 잠든 후
칠흙같은 고요가 흐르고......

조금만 움직여도 '끼익' '끼익' 흔들리는 산악용 간이 침대의 잡음이 무척이나 성가시게 들렸다.


정말, 일주일을 여기서 보냈는지 문득 모든게 꿈같이 느껴졌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진재 오빠는 어떻게 됐을까......

뜻밖에 온통 내 정신은 진재 오빠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가족보다 더 큰 존재였던가,
내게........그는.........

많이 사랑한다는걸
지금 더 절실히 느낀다.

언제나 바라보기만 했던 그의 넓은 가슴.

두근거림으로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의 그 넓은 가슴에 내 온몸을 던지고 싶었던.....

왜.........

한번쯤........

꼭 한번이라도 그러지 못했을까.

어리석게도 우리의 사랑이 결실을 맺으리라는 뜬구름같은 착각때문이었으리라.

그와 파리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렇게 하리라고 허황된 희망속에서 착각을 야금거리며......

이렇게 끝날줄 알았다면, 한번쯤 그의 품에 으스러지도록 안겨볼것을......


나는,

잠에 취했다가는 떨림으로 화들짝 깨어나고,
다시 어둠에 빠져들었다가 번쩍 눈을 뜨고.....
그렇게 그밤을 몸부림으로 참아냈다.



누군가

나를 만졌다!

하.현.수.!

" 아악! "

'끼익-'

" 아유~
놀래라.
아니, 왜그래~ ? "

파란 앞치마를 두른 아줌마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덮었던 코트를 꽉 움켜잡고 가슴께로 단단히 끌어 당겼다.

" 놀랬어?
밥 먹으라구...... "

" ................."

" 이 방만 청소하면 되는데.....
밥먹을 동안 내 얼른 방치워야 해......

혼자 갈 수 있지 ?! "

아줌마는 몇칠전 한번 보고 안오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난 눈치껏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두팔로 황급히 방을 나가는데.....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시선을 피하는 그녀를 보고 원룸의 확트인 방 중앙의 침대를 쳐다봤다.

말끔히 정돈된 침대.

마치, 어젯밤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방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습관적으로 시계를 찾았다.

침대 맞은편 책상위에 돛이 멋지게 올려진 큰 배모양의 시계가 낯설게 느껴졌다.

12시를 향하고 있는 초침.

책상 옆, 한면이 전부 유리문으로 되어있는 창으로 하늘이 훤히 보였다.

그래, 여긴 19층이지!

아줌마를 의식하며 팔을 뗐다.

이제, 내 이런 흉측한 모습을 누가보든....
아무래도 좋았다.

마치 밥을 먹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열심히 음식을 씹고 떠넣는 행위에 열중했다.

저 아줌마는 날 처음봤을때부터 지나치게 잘 대해줬다.

동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익숙하지 않았지만, 우선은 마음이 놓였다.

식사를 마치고, 물을 먹는데 아줌마는 청소하다말고, 미리 준비한 귤을 쟁반채 가지고 와서는 내앞에 디민다.

난 낯선 동정(?)에 당황해서 차갑게 말했다.

" 됐어요!
과일 안 좋아해요! "

" 왜.....
먹어봐. 귤엔 비타민C가 많아서 건강에 좋아.
약으로 먹는것보다 더.....
자~ 내가 까줄께. "

거절할 새도 없이 입으로 들어오는 귤조각에 기침이 나왔다.

" 쿨럭, 쿨럭, 쿨럭....."

" 아유~
사레 걸렸구나.
물줄까.....
자아~ "

" 켁........됐어요! 쿨럭! "

안절부절하는 아줌마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기침을 참아야했다.

" 근데, 아주머니는 가끔씩.....쿨럭.....
가끔씩 오시는 거에요? "

" 응.......5일에 한번씩.....
그런데, 물 안마셔도 되겠어? "

" 괜찮아요.....
혹시 현수오빠 부모님과.....
현수 오빠 부모님 사시는 댁도 맡고 계시는 건가요? "

" 응......
아니, 난 요앞 아파트에 살아서 가까운데 어디 파출부 시간제로 할 수 없나 알아봤더니, 여기 장관 아들집에서 한 5일에 한번씩만 들여다보고 밑반찬좀 해 놓으면 된다기에 옳다구나하고 시작했지.
현수학생 어머님하고는 급료 문제로 처음 통화하고 매달 통장으로 보내주는거외엔 얼굴도 한번 못봤어.
테레비 뉴스에서 몇번 본거 같긴 한데....
그사람이 그사람같고....
그냥, 장관 아들이니까, 그런가보다 하는게지!

그런데, 사촌 동생이 있는줄은 몰랐네에~

뭐, 현수학생하고 부딪치는 일도 별로 없고....
학교 가면 와서 청소하고 반찬좀 만들어 놓고 하니까....
그리고, 뭐 이 오피스텔 잘 오지도 않더라구....
가끔, 친구들 끌고 와서 난장판 만들어놓고 가긴 하지만.....

그런데, 다리가 어떻게 된거야?
교통사고 난거야?
어휴~ 아주 크게 다쳤었나봐. "

".......네.......에 "

난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 혹시.....
현수오빠 부모님들 여기 자주 오시나요? "

" 자주 오긴......
내가 2년 가까이 일했는데 한번도 안왔어.
여긴 현수학생 심심하면 친구들하고 다녀가는.....
우리 학교 다닐때로 치면 아...아지트....뭐 그런걸로 쓰나봐.
근데, 사촌이라서 그러나?
왕래가 별로 없었나봐.
궁금한것도 많고.....
현수오빠 부모님들 부모님들 하는게....
이상하네...... "

" 네.........
네....다....다리가 이렇다 보니......
별로 연락을 못하고 살았어요. 우리 부모님들이...... "

" 아유~
그러면 쓰나~
그럴수록 더 친하게 지내고 해야지.
너무 안됐다.
아직 창창한 나이에.....
살날도 더 많은 아가씨가..... "

" .............................."

" 아! 저방 현수학생 옷들 장농에 몽땅 옮겨 놓을께!
아니, 그때가 언젠데, 짐도 하나도 안풀고....
내가 좀 도와줄까.......? "

" 아....
아니에요......
옷가지들만 좀 빼내주시면, 제가 할께요. "

"아니야-
내가 도와줄께....
가방이 난리도 아니야.
현수학생 옷 장농으로 옮기고 행거에 죽 걸어놓을께.
몸이 그래가지고 어떻게....
내가 할테니까, 테레비 보고 있어.
케이블 테레비도 나오고....아!
비디오도 몇개 있더라구....
내 얼른 찾아줄께......"

" 아, 아니....."

아줌마는 거절할 새도 없이 그 빼빼 마른몸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5일마다 한번씩 그녀를 봐야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비디오 테입을 내쪽으로 번쩍 치켜든 후 TV를 켜고 방으로 들어가는 아줌마의 모습을 확인한 후 창으로 갔다.

19층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이제야,
비로소 세상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마치,
세상의 자동차는 다 모아놓은듯 몰려있는 차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아주작은 미니추어 도시에서 기계들이 움직이듯
똑같은 속도였다.

너무 높아 그들의 표정을 확인할수는 없지만,
아마 얼굴 생김도, 표정도 다 찍어놓은듯 똑같을거 같았다.

자동차들의 경적이 희미하게 들렸다.

그 소리를 온몸으로 감상하고 싶었다.

유리문 위의 들창까지는 손이 닿질 않았다.

그냥 그들만의 세상밖에서.....

그들만의 틀 밖에서 훔쳐보는거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양손바닥과 이마를 창문에 댄체......



창에 투영된 얼굴......

테두리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또다른 나의 모습.......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