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들이 떼지어 불을 보고 날아드네
떼지어 새들이 떨어지고 떼지어 새들이 부딪치네
떼지어 눈이 멀어 떼지어 얻어맞고
떼지어 죽어버리네
등대지기 더이상 보다 못해서
그래서 불을 모두 꺼 버렸다네
멀리서 화물선이 암초에 걸렸네
< 자끄프레베르의 시. 등대지기는 새를 너무 사랑한다 >
오직 자신만이 민중을 구원할 수 있다. 여겼던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은 3선 개헌을 하면서 사사오입이라는 희한한 공식까지 내 세우며 불법 선거를 자행했지만 거대한 민중 봉기에 굴복했었다. 유신 헌법이라는 악법을 만들어서 장기집권의 기틀을 만들어 놓고 독재정치를 펼쳤던 서슬 퍼런 박정희 대통령도 믿었던 참모의 손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그분들이 갑작스레 자리를 비웠어도 세상은 또 다른 누군가의 지휘 아래 새로운 질서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굴러갔다. 어떤 사람이 하던 일은 또 다른 누군가로 모두 대체할 수 있다.
몇 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구속될 때 사람들이 더러는 차가운 바닥을 뒹굴면서 울부짖다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가고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이념에 따라 나누어진 사람들은 서로를 비난했다. 촛불집회를 거치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을 때 나는 소망했다. 다시는 반으로 나뉘어 같은 편끼리 싸우지 않기를, 반으로 나뉜 나라에서 다시 반으로 또 나누어지지는 말자고 간절히 빌었다. 반칙과 특권이 없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취임사에 눈물까지 핑 돌았었다. 서초동의 촛불과 광화문의 태극기가 함께 손잡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빛나게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 아름다운 느낌은 얼마 안 가 조국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서 마치 혹세무민하는 종교집단의 막무가내 믿음을 보는 것 같았다. 다시 반으로 갈라진 사람들은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대중들을 선동하고 편싸움을 부추겼다. 누군가의 허물을 애써 덮으면서 무조건 믿는 사람들의 막무가내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심리로 나타나서 눈에 보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살아있는 신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에는 신이 너무 많다. 신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오직 느낄 뿐이어야 진정 신비로운 존재인데 이렇게 신격화되어있는 많은 존재들을 보면서 대체 불가한 절대자께선 뭐라고 정의할까? 그것이 궁금했다.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을 때 부디 나 같은 시골 아낙에게 서초동으로 갈 것인지 광화문으로 갈 것인지를 묻는 나쁜 대통령은 되지 마시라 마음속으로 빌었건만 오히려 그때부터 갈등은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온갖 법안을 만들고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드디어 옥상에 텐트를 치는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인 이른바 “공수처”를 법안으로 발의하였다. 이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을 때 나경원 의원은 국회에 빠루까지 등장시켰다.
이후부터 양측의 날 선 공방은 더 치열해지고 사람들은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변해버렸다. 이것이 진정 백성을 사랑하는 참된 지도자의 처세인가? 새를 사랑하는 등대지기는 불을 끄지 않는다. 환하게 불을 밝혀 따듯한 곳으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가 불을 꺼 버리고 침묵 뒤에 숨었다. 서로를 죽이겠다는 협박이 난무하고 거리마다 떼지어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눈에 불이 붙어있다. 12.3 계엄의 밤, 군대의 야만스러운 국회 난입에 이어 1.19일 서부지법에 난입하여 모든 걸 박살 내는 영상을 보면서 민주주의는 어디 가고 야만의 시대로 다시 회귀한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자유 민주를 외치던 대통령이 이처럼 야만적인 사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간 장본인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2016년 그때에도 9년이 지난 지금도 추운 겨울에 백성들을 거리로 내모는 나쁜 정치에 이제는 혐오를 느낀다. 몇 달째 국민이 반으로 쪼개져서 광화문으로 헌법재판소로 내달리고 알 수도 없는 법률용어가 온종일 TV에서 흘러나온다. 예전엔 나이 드신 분들이 참! 할 일도 없구나? 생각했었는데 이젠 젊은 세대들까지 합류해서 몰려다니는 것을 보니 더욱 절망스럽다. 열심히 일하면서 자기 성장을 해야 할 생산적인 나이의 젊은 세대들이 귀중한 시간을 버려가며 자포자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들이 낭비한 아까운 시간을 무엇으로 보상할 것이며 몇 달씩 진창으로 처박힌 경제는 누가 건져 올려 줄 것인지 묻고 싶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 국민을 가장 힘들게 하고 가장 괴롭히는 집단이 되어버린 지금, 오직 자기 편만이 백성을 위한다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위정자들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