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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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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BY 만석 2024-01-28


만석이의 맏며느리는 참 착한 사람입니다. 생전에 누구와  다투는 걸 보지도 못했습니다. 알량한 시어미의 잔소리에 말대답을 하는 적도 없습니다. 이르는 말에 딴지를 거는 법도 없습니다.  남편과 딸에게는 형편이 되는대로 고가의 옷을 입히지만, 제 것은 값 비싼 것을 걸치지 않는 현모양처 바로 그 자체입니다. 오히려 친정언니의 것을 받아 입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녀의 옷걸이가 좋아서 더 근사해 보입니다.

그녀는 안동지방의 담장이 높은 대갓댁의 양반으로 자랐다는 것 외에, 나는 그녀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아들이 회사를 통해서 거래처를 드나들다가, 언제나 조용한 그녀에게 반했을 즈음, 결혼을 재촉하는 어미의 뜻을 등에 업고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다른 건 모르지만 인성만은 엄마와 많이 닮아 있다고 하더니, 외모는 확실하게 시어미를 월등히 능가하고도 남습니다.

나는 늘 그녀에게 빚을 지은 것 같습니다. 그 작은 지방에서는 서울로 시집을 갔으니, 성공한 케이스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겠지요. 그러나 우리 살림이 그녀의 욕심에 얼마나 흡족한가를 몰라서, 늘 빚을 진 것만 같습니다. 이럴 때면 내가 좀 더 부자였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들 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수 있게 해 주고 싶고, 더 좋은 입성을 입히고 싶어서 늘 부족한 마음입니다.

그녀는 요조숙녀요 현모양처입니다. 아들들 딸들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히 쏟아지는 글은, 쓰기를 마치고 읽어보면 자랑 같아서 얼굴이 확끈거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며느님의 이야기는 아주 편한 마음으로 적어 내립니다. 과장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고, 더군다나 욕심은 천만의 말씀이지요. 거짓 없는 사실 그대로이니까요. 어느 친구의 며느님처럼 우당탕탕 실수를 하는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그야말로 참 요조숙녀입니다.

님들이 혹 과장이라고 하실까봐 적습니다. 예. 내게는 과한 며느님입니다.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그녀는 이제 열 세 살의 딸을 기르는 어미입니다. 그런데 백일 때 해 주던 수수팥단지와 백설기를, 아직도 빠지지 않고 생일상에 올려줍니다. 아마도 시집을 가기 전까지 계속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덕분에 우리도 해마다 수수팥단지와 백설기를 잘 얻어먹습니다. 나도 아이들에게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했습니다.

어미는 딸을 버릇 없이 위해서만 기르지도 않습니다. 상을 차릴 때는 손주에게 수저를 정리해서 자리를 잡게 합니다. 혹여 내가 행주를 잡는 날에는 큰일이라도 나는 듯 손녀딸을 나무랍니다. 손녀딸아이는 어미를 닮아서 날씬하고 새하얀 피부가 자랑스럽습니다.  지금도 부부는 학원을 나서는 딸을 마중해서, 딸을 가운데 세우고 와서는 도란도란 식사를 하는 게 불문율입니다. 애비가, 또는 딸이 빠진 식사는 절대로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 거실에 차려진 상 앞에서, 아들이 작은 소리로 며느님을 마주보고 말합니다.
"나, 한 잔 해도 되?" 안주가 좋으니 술이 한 잔 생각났나 봅니다. 처가 그리하라고 무언의 수락을 한 모양입니다. 아들은 기분이 좋아서 술잔을 들고는, 내게 씽끗 윙크를 해 보입니다. 나도 기분이 좋습니다. 어쩌면 애비를 그리 길을 잘 들였을까요. 나는 참 복이 많은 시어미가 맞습니다. 내가 하늘에 가는 그날까지, 그녀와 이렇게 변함없이 사랑하기를 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