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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름다운 추억만을 먹고 산다 2


BY 만석 2024-01-26

오늘은 영감과 함께 년말도 지났으니, 새 기분으로 쥐꼬리만큼도 안 되는 통장을 정리하고 왔다. 뭐 큰 액수의 잔고정리도 아니니, 그런 것쯤은 영감이 그 긴 컴파스로 휘휘 저으며 다녀와도 좋으련만. 자랑스럽지도 못한 인물의 마누라를 대동해야만 한다. 아직도 영감은 은행엄무를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하던 버릇이 있다. 아직도 혼자 다니려 하지도 않거니와, 나도 혼자 보내기가 염려스러워서 늘 같이 다닌다.  잘 못하면 헛걸음을 하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내가 다시 납시어야 하니 말이다. 남들은 이왕에 같이 나섰으니 손을 잡고, 아니면 손은 잡지 않더라도 나란히 서서 걸으라고 한다. 그렇지만 서너 발자욱 영감보다 뒤에 서서 따르는 게 나만의 상식이다.

아무튼 돌아오는 길에 시장기가 돌기에, 영감의 시장기를 걱정하며 영감의 걸음을 재촉해서 집으로 돌아왔겠다?! 거실의 벽시계를 쳐다보니 4시가 가깝다. 나는 요새 바짝 더 쳐진 눈을 힘주어 열고, 앞서 거실에 드는 영감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아빠. 우리 점심 먹고 나섰수?"
"나는 먹었는데 당신은 몰라. 먹는 거 못 본 것 같은데." 오랜만에 영감의 긴 대답을 다 듣는다.
아, 그랬다. 나는 아침을 늦게 먹었고, 영감은 제대로 밥상을 차려 올린 게 맞다, 맞어.
큰일일세. 나도 누구보다 영악하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이젠 글렀다. 치매도 곧 오겠지.

아, 치매 퇴치로 사진 작업을 하기로 했지? 급하게 허기를 채우고 컴을 열어보니 이런 이런. 오늘은 아무도 다녀가지를 않았구먼. 나라도 뭔가 흔적을 남겨야지. 누군가 맡기기라도 한 듯 마음이 급하다. 그새 저녁 지을 시간이 되겠으니 서두르긴 서둘러야겠다. 누구라도 내 게으름을 탓할 동지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녁을 짓기 전에, 나라도 흔적 하나 남겨야겠다는 말씀이야.
그래. 이 나이에 올릴만한 아름다운 추억이 없다면 그건 슬픈 일이지. 나에게는 아름다운 나만의 추억이 얼마든지 차고 넘친다는 말이지. 특별히 선별하고 다독일 재주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오늘은 영감과 손녀딸의 아름다운 추억 하나 꺼내보자.

 사진 1 (손녀딸은 시방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방법을,
            할아버지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사진 2 (할아버지를 일으켜세우기까지는 성공했지만 답답한 영감은,
            예쁜 손녀딸을 결국  슬프게 슬프게  울리고 말았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