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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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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는 새 친구와 오 천 보 걷기


BY 만석 2024-01-16

하루에 몇 번씩 아컴방에 들어와 봐도 아무도 만날 수가 없다.
우선 첫 바램은 세번다님이 나타나서 따님에 대한 좋은 소식을 올려 놨을까를 기대하며, 시간 나는대로 하루에도 몇 번이라도 열어본다. 나는 생각 나는대로 하루에 몇 번이라도 기도를 드렸으니까,  혹시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내가 아닌 우리 님들도 내 맘과 꼭 같겠지. 그냥 창을 닫고 돌아서는 그 마음을 나는 알지.
그래서 오늘은 빈 구석이라도 잠시 채우고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즐거운 이야기도 없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딱히 짚히지 않는다.

오늘도 에세이방을 열어보고 뻗뻗한 다리를 달래기라도 해야겠다고 가을이를 데리고 나선다.
가을이는 지난 가을에 큰아들의 친구에게서 받은 <화이트 테리어>순종의 강아지다. 산달이 가까와서 털있는 강아지를 키울 수가 없어서 걱정을 하더란다. 마침 같이 지내던 강아지를 잃고 허전해 하는 영감을 위한 아들의 배려로 내 집으로 왔지.

낮설은 집에 왔으니 얼른 친해지자고, 전 집에서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가을이라고 불러주기로 한 게다. 사실 나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털 있는 짐승은 털이 날리는 게 싫었던 것이지. 다만 영감이 잃어버린 푸들 강아지를 잊지 못하고, 몇몇 일을 찾아다니는 게 보기에도 딱해서 받아 키웠다는 말이지.

잘 키울 것 같던 영감은 내가 원하는 만큼 가을이를 건사하지 못하더군. 영감과 다투는 일까지 있었다는 말씀이야. 그러니 어쩌겠어. 급기야 내가 밥도 챙겨 주고 목욕도 씻기는 동안 정이 들더라는 말씀이야. 지난 봄엔 내가 몹시 앓아서 막내딸아이 네 집에서 일주일을 지냈 잖았던가.

딸네는 딩크부부라 작은 덩치의 치와와를 키우는데, 그 정성이 어린아이한테 하듯 그리 정을 주며 기르더란 말이지. 집에 있는 우리 가을이 생각을 하니 불쌍하더만. 영감 밥 해주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피난을 가고 보니, 백사 만가지가 걱정이더라구. 열흘만 있다가 가야지 했는데 그날 저녁으로 집으로 왔지.

그 뒤로 집에 와서는 나도 딸 내외를 따라 가을이를 사랑하게 되더라는 말씀이야. 무섭고 징그럽던 그 강아지가 며칠만에 보니 그 녀석도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나도 걔를 사랑하게 되었다네. 이젠 쉬를 하면 고추도 닦아주고 응가를 하면 똥꼬도 닦아주게 되었다네 ㅎ~!

옳거니. 내 주위에는 나와 놀아 줄 아무도 없더라는 말이지. 이렇게 나를 따르는 가을이만큼 나를 사랑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 그래서 나는 이 녀석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네. 옥상에 움막처럼 집을 짓고 키웠는데 이 녀석이 짓는 소리가 어찌나 우렁차던지 이웃의 누군가가 민원을 넣었겠다?!

경찰이 오고 여순경도 오고 하더니, 그래도 우리가 나이가 고령이라 봐 주더군. 한 번 더 민원이 들어오면 벌금을 물릴 수밖에 없다나? 그래서 2층의 허름한 창고에다 자리를 마련 해 주었겠다? 냄새가 날라 싶어서 목욕도 자주 씻기고, 대소변가리기를 열심히 가르키고 있다는 말이지.

인터넷에 살펴보니 <화이트 테리어>가 옛날엔 사냥을 하던 녀석이라지? 그런 녀석을 좁은 베란다 창고에다가 가둬서 묶어 놨으니, 추위는 덜었어도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말씀이야. 왕년에 잘 나가던 주인마님의 쪼그라든 이 신세나, 왕성하게 움직이던 그 녀석이나 피장파장이구먼. 가을이도 실내용 멋진 집을 사 줘야지. 깔게도 용변 판도.  

옳다. 좋은 생각이 났구먼. 너도 내 친구 하고 나도 네 친구 하자. 다음 날로 녀석에게 목줄을 하고는 제가 뛰면 나도 뛰고 내가 쉬면 저도 쉬고.... 나는 숨이 턱까지 차는데 저 녀석은 어서 뛰잖다. 헉~! 허~! 헉~! 폰을 꺼내서 들여다보니 에게~. 3000보에도 못 미친다. 그래도 오늘은 그만 하자. 내가 그새 이리 됐나?!

그래도 돌아가는 길이 있으니 5000보는 너끈하겠다. 그래. 가을아. 매일 이만만해도 괜찮겠다. 네 주인마님은 시방 오금이 저리 걸랑~! 가을아. 이만만 해도 충분히 네 밥값은 된 겨. 더 욕심 부리지 말고 이만큼만 하자. 왕년엔 귀족들의 사냥을 도왔다더니 제법이구먼. 나는 왕족이 아니니 이만만 해줘도 고마워~^^

(영감의 생일에 일본에서 엄마랑 아빠랑 다니러 온 손주가 무서워하지 않고 잘 노네요.
손주가 추운데 자꾸만 가을이 보러 밖으로 나가자고 해서, 영감이 급히 가을이를 목욕을 시켜서 들여놨어요. 착한 영감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