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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는 밥심으로 사는 겨


BY 만석 2023-12-19

별 일이 다 있다.
영감이 송년모임엘 다녀오면서, 인절미 한 판을 들고 들어왔다. 손에 들고 다니는 걸 지독하게도 싫어하는 양반이었는데 말이다. 이제 몸이 늙으니 마음도 늙었나 보다.

영감이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오려나 몰라서, 밥은 앉힐까 말까하던 참이었다. 아니, 저녁도 해결하고 들어오기를 은근히 바랬다는 게, 내 솔직한 고백이다. 젊어서 술을 마실 때라면 몰라도 이젠 술도 쓶었으니, 저녁밥이나 먹고 들어오면 내 일이 없을 테니까 말씀이야.

마침 출출하던 차에 팥소가 들은 인절미를 보니, 밥 앉힐 일도 잊고 배를 채웠다.  그러고 보니 소가 들은 인절미는 참 오랜만에 맛을 본다.  맛이 좋았다. 하나 둘 셋. 서너 개를 먹었나 했더니 빈자리가 다섯. 그새 적지 않은 팥소인절미를 다섯 개나 먹어치운 게 다.

'이만하면 내 저녁은 패스~'
영감은 밥쟁이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저녁을 지었다. 아침에 먹던 찌게를 데우고 돌솥밥을 대령한다. 찬을 타박하는 일은 절대로 없는 영감이니, 물김치와 김만 올려놓으면 족하다.

영감이 밥을 먹는 사이에 내 손은 인절미로 가고 또 가고. 그러고 보니 일곱 개를 먹어치운 셈이다. 말랑한 인절미를 냉동실에 밀어 넣었다. 내일은 아침도 점심도 인절미로 떼우자는 심보다. 영감은 어차피 밥을 찾을 테지만, 나는 인절미 댓 개면 한 끼로 밥보다 나을 테지.

아홉 시가 지나자 내 몸이 갑자기 이상하다. 입 안에 침이 고이고 기운이 없다. 이제 감기는 다 떨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진땀이 난다. 맥이 뛰는 것 같지가 않다. 안방의 영감을 부르려고 문고리를 잡으러 일어나는데 일어날 수가 없다. 손이 떨린다. 이럴 땐 가만히 주저앉아야 한다. 잘못 넘어져 머리를 다치면 큰일이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배가 고픈 거야?'
그러고 보니 혈당체크가 생각나더라는 말씀이야. 온 몸의 땀이 순식간에 속옷을 펑 적신다.
'아~. 체혈! 체혈이 필요해. 저혈당이 오는 게야.'

저녁을 거른 게 생각난다. 그제야 체혈기를 열고 검사지를 착상하고 체혈기의 바늘을 꽂고.....
LCD창은 59를 가르킨다. 이런! 이런! 저녁을 거른 게 사단이 난 게다. 급한대로 <스포츠포도당캔디>를 뜯어 물고 죽을 데운다. 게눈 감추 듯 죽그릇을 비운다. 휴~. 비상용 죽도 좀 마련해이젠 땀이 식으니 한기가 든다.

누구야~! 늙은이 소식하라고 누가 그랬어. 소식하려다가 늙은이 잡을 뻔했구먼. 이제는 배가 나와도 바지 치마의 허리가 모자라도 나는 먹을란다. 누가 뭐래도 늙은이는 뱃심으로 산다는 나만의 진리를 믿으리라. 다시 채혈을 하니 135가 LCD창에 뜬다. 그려. 늙은이는 밥심으로 사는 겨.
                             <주님의 축복이 아컴의 모든 님들 가정에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