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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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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


BY 만석 2023-11-11

"딩동 딩동~."

영감이 잽싸게 대문 키를 누른다.

"아니~. 누구냐고 좀 물어보고 열어 주라니깐요."

벌써 여러 번째 하는 잔소리다아니그건 그렇고 그럴 땐 번개 같으네이젠 다 나은 겨아무튼 이젠 걱정을 덜었는가 싶어서 반갑다영감의 움직임이 반가워서, 미쳐 현관을 내다볼 채도 못한다.

"우리가 왔어요~."


오이~ㅇ?! 막내딸 아이의 목소리가 아닌가.

"아니미리 연락도 없이."

그러나 나도 오늘쯤은 막내딸내외가 오지 않을까 하고 장을 봐 놓기는 했지.

"ㅎㅎㅎ.  미리 연락하면 엄마가 바빠지실 것 같아서요." 

사위가 들으면 뭘 그리 잘 해줬냐고 면박을 줄지 모르겠지만내게는 우리 집을 찾는 손님 중에 가장 어려운 사람이 사위다자고로사위는 백년손님이라지 않든가. 그가 내 막내사위가 된 지 10년째지만 어렵기는 여전하다.


그러나 곧 나는 사위의 두 손에 무겁게 들린 것들에 눈이 가자 웃지 않을 수가 없었지.

'00복국

아하~오늘은 복국을 들고 왔구먼. 그 유명하다는 압구정동의 복집을 들러서 왔다는 소릴세.  영감이 지난 번에 잘 먹던 기억을 했나 보다딸아이는 에미의 수고를 덜어주려고내 집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4인분의 먹거리를 들고 온다주객이 전도 된 격이어서 처음에는 미안하고 송구스럽더니이젠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니 것도 버릇이 됐구먼.


포장을 유별나게 잘해서데우지 않아도 아직 복국이 따끈하기까지 하지 않던가반찬 종류까지도 섬세하다김치멸치볶음해초양념고추장에 젓갈 등, 그만하면 꼴 적은 우리 집반찬 서너가지만 꺼내 놓으면 한끼 식사가 족하다수저만 얹으면 훌륭한 한 끼 식단이다이제는 영감도 익숙해져서그러려니 하고 말없이 나와 앉는다참 좋은 세상이다아니참 편한 세상이다점심식사가 끝나고 과일로 후식을 마치자막내딸아이가 커다란 쇼팡빽을 연다


모양도 예쁜 가방이 우루루 쏟아진다.

"짜~ㄴ! 엄마는 어느 게 제일 맘에 드세요?"

"이거 다 우리 줄 거야이거 맘에 든다근데 왠 가방이야?"

"여보내가 잘 골랐지엄마가 이거 맘에 드신대잖아요이건 아래층 아가 거이건 새언니 것."

"아니 니네 로또 맞았니여행경비도 솔찮았을  텐데 식구들 선물까지 골고루도 챙겼네."

딸 내외는 보름간의 '미주횡단 여행'을 마치고빠진 강의를 바쁘게 땜질을 하고 오늘 내 집에 온 게다.


막내딸 내외는 딩크족(DINK)이다결혼 10주년을 기념하여, 보름 휴가를 얻어서 미국횡단을 다녀 온 것이다. 요번에는 거금도 마다않고 애완견 치와와까지 데리고 다녀왔다ㅎ~.  7년의 년상년하 커플이지만부부가 어쩌면 그렇게 맘이 잘 맞는지.... 부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결혼 10년째지만그들이 다투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아니올시다 하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잘 맞추어 사는지 신기할 지경이다더 다행스러운 것은 사위가 덩치가 좋고 내 딸아이가 몸집이 외소한 편이어서말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년상년하커플로 보지 않는다천생연분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점심을 먹고나자 딸의 설거지를 돕던 사위가 묻는다

."어머니컴퓨터 손 볼 데 없습니까?" 그는 컴 박사다우리 집에 오면 의례히 내 컴퓨터를 점검한다사진 올리기를 그 동안은 잘 했는데한참을 손을 뗬더니 작업하는 걸 잊어버렸다사진을 올리고 옮기는 것을 알려주고는, 안방의 TV도 점검을 한다. 이제는 딱히 내가 원하지 않아도 먼저 일어나서 바쁘게 움직인다. 내친 김에 에어컨도 손질을 해서 커버를 씌운다. 아구구~. 착한 내 막내사위! 사돈들은 어쩜 아들을 이리도 잘 키우셨을꼬. 키우시기는 사돈이 잘 키우셨으나 덕은 내가 보는구먼.


그 동안 나는 장을 봐다 놓은 것들을 손질해서 저녁을 준비한다. 영감이 좋아하는 바지락을 곁들인 대구 매운탕오징어 무침훈제오리고기를 손질하자 막내딸이 쪼르르 다가온다참 오랜만에 보는 익순한 풍경이다

"옴마나 한 입만."

막내딸이 입을 뾰족하게 내밀고 머리를 들여민다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모양새다이 아이가 어릴 적이 생각난다주방에서 제 입맛에 끌리는 냄새가 나면막내딸은 불이낳게 주방엘 드나든다.


"엄마엄마." 

나는 이 아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그녀의 요구를 알아챈다. 돌아보면 제 손위의 오빠가 언제나 멀지감치에서 딴전을 피우고 있는 바로 그 찰라다언제 적 이야기인가다시 그 시간이 한 번만 더 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가 더 젊어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30년만 어려졌으면 좋겠다. 한창 공부 중일 때라면 좋겠다는 말씀이야. 나는 더 좋은 환경을 만들고 경험한 대로, 좀 더 나은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데.... 그래서 아이들을 좀 더 큰 인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막내딸의 차가 집을 떠난지 한 시간쯤 지나자 문자가 온다

 "옴마. 우리 집에 잘 도착했어요~^^" 

폴짝 폴짝 뛰는 리모콘이 소리를 치는 듯 뒤따른다.

"엄마~! 안녕히 주무세여~. 사랑해여~."

나도 잘 자라는 귀여운 리모티콘을 하나 날린다.

"엄마도 사랑해~!  우리 사위도~." 

시계는 자정이 다가오지만, 내게는 아주 짧은 하루였다. 
막내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