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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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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세상에


BY 만석 2022-11-28

"뾰로로~롱" "뾰로로~롱"
핸드폰 벨이 예쁘게도 운다. 막내 딸아이가 핸드폰 속에서 손짓을 한다. 
 "엄마. 내일 어디 가세요?"
"가긴 엄마가 어딜 가."
그래서 내일 점심을 같이 먹자 한다.
"반찬을 뭘 좀 해야할까?"
"언제 제가 엄마 밥 걱정 시켰어요? "
허긴 그랬다. 오늘도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기다리란다.

다음 날 딸과 사위가 각각 두 팔이 무겁게, 커다란 백을 들고 들어선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못됐다. 아무 것도 하지 말란다고 정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다니 ㅉㅉㅉ.
마주 나가니 무겁다고 비켜 서란다.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는, 딸과 사위가 들고 들어온 백을 풀어서 식탁을 챙긴다. 늘 하던 대로 4인분의 복어탕과 반찬이 상으로 가득하니 푸짐하다.
'....' 갑자기 무안하고 미안하고 민구스럽고 송구스럽고 또.... .
좀 일찌감치 움직여서 밥을 할 걸 그랬나 보다. 지난 번 영감이 복어탕을 맛있게 비우는 걸 본 사위가, 강남에 있는 복어탕 식당이 제대로 한다며 일부러 들러서 포장을 해 왔다지 않는가. 다시는 이리하지 않으리라. 백년손님이라는 사위 대접이, 이 나이에 벌써 이래서야 되겠는가.

입맛 까다로운 영감이 시원한 탕국을 먹음직스럽게 비운다. 포장을 해 왔으니 설거지감도 얼마 되지 않는다.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는 배를 두드리는데, 사위가 쇼핑백 하나를 다시 풀러서 주섬주섬 뭘 잔뜩 꺼내 놓는다.
"이거 시계 아냐?"
"예. 시계는 시곈데 신식시계예요. 호호호." 딸아이가 꺼내 놓은 시계를 영감과 내 앞에 놓으며 설명이 분분하다. 사위는 말없이 영감과 내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며, 뭘 설정을 하는가 보다.
"뭐여?"
 
"엄마. 병원에서 혈압 측정해 오란다면서요?"
"그러게 말이다. 늙으면 혈압이 높아진다더니, 그게 뭐 좋은 거라고 비껴 가지 못하고.... 요새 내 혈압이 많이 높더구나."
"요새 혈압 매일 재세요?"
"그래. 아주 귀찮아."
"그래서 이거 사왔지롱요. 이건 걍 시계처럼 차고 설정만하면 혼자서 숫자로 나와요."
"그런 게 다 있어? 별...."

"걷기하면 걸음 수도 알려 주고요 운동시간도 알려주고요 심장박동도 체크해 줘요. 체지방도 체크해 주고요 골격근량도 알려주지요. 심장이 고장이 나면 저 혼자서 119로 연결해 줘요."
"오~. 그것 참 신기하구나."
참 좋은 세상이다. 이러니 늙은이들의 수명이 길어질 수밖에.
이제쯤 병을 얻어서 좀 앓다가 가면 적당하다 했더니 것도 아니질 않은가.
오십이 훌쩍 넘고 머리가 희여지는  딸과 아들을 바라보며, 나도 이만하면 많이 살았다 싶긴하다만...
그래도 누군가 그만 살라고 하면 서운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