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공연음란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64

계획 없이


BY 귀부인 2022-11-22

계획 없이


사람이 뜻하고 계획한다고 다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란 걸 새삼 느끼며 사는 요즘이다.

"나, 퇴직하면 아무것도 안하고 쉴거야,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거야. 당신, 나한테 잔소리 하면 안돼, 절대로!"

오십 중반을 넘기며 입버릇처럼 해오던 남편의 말이었다. 회사 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족들 생각하며 견뎌냈을 남편은, 아마도 퇴직 후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버틴 날이 많았으리라.


그런데 지난 7월, 30년의 직장 생활을 마친 남편은 쉼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집안일 이라곤 해 본적 없던 사람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를 위해서.


처음 3주간 정도는 나도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에서 살았다. 한, 두 주는 이리저리 인사를 다니고 근처 맛집도 다니느라 시간이 잘 지나 갔지만, 3주차가 되니 남편도 나도 시골 생활이 무료해 졌다.


"우리 둘 다 시골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애. 엄마는 내가 돌볼테니까 당신은 서울로 올라 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배우고, 또 일 할 수 있으면 일도 하는 게 좋지 않아?"

"괜찮지~ 근데 당신 혼자 엄마 돌보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다 할 수 있어?"

"무슨 소리야? 그동안 내가 안해서 그렇지 하면 잘해. 그러니까 걱정 말고 올라 가."


막상 말은 호기롭게 했지만 남편은 시골 생활을 힘들어 했다. 어머니가 센터에 계시는 동안 일이라도 해보려 했으나, 남편에게 마땅한 일은 없었다. 농사를 짓는 게 아니다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어 도서관에도 가고, 가끔은 동창들도 만났지만 무료함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서툰 집안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막걸리 한 잔을 마신 날이면 이렇게 지내는 게 맞는지, 이러다 우울증이라도 오면 어쩌나 걱정 된다고도 했다. 그럼, 내가 내려가서 같이 살까? 하고 물어보면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며 그냥 해 본 소리라며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런데 시골 생활 두 달쯤 지나니 익숙해졌나 더 이상 힘들다 소리는 하지 않았다. 운동도 다니고, 어차피 어머니 모셔야 되니 요양보호사 자격증이라도 따야겠다며 학원에 등록도 했다. 여느 주부들처럼 오늘은 뭐 해먹냐 고민하며 주말엔 밀린 집안일을 해냈다.


어느 날 인가는 수화기 너머로 막걸리 한 잔의 힘을 빌어 얼굴 마주 보곤 절대 하지 않을 말을 했다. 집안일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며 회사 다닐 때 자기만 힘들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당신 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 라고.


한 번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왔다. 첫 마디가 배고프다! 였다. 입맛이 없어 저녁밥을 조금 먹었는데 배고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 했다. 마음이 쓰여 잠을 설친 나는 다음날 학원 수업을 빼 먹고 시골로 내려갔다.


살짝 여윈 남편과는 달리 어머니 얼굴에는 살이 올라 있었다. 처졌던 어깨엔 힘이 들어 갔고, 힘없던 목소리엔 힘이 생겨 카랑카랑했다.


"내사 큰아들이 옆에 있응게 아무 걱정 없다. 낮엔 센타 가서 놀고, 집에 오믄 아들이 있고 대복이여어. 너거 아부지 덕에(시아버지) 내가 호강하고 산다"

아닌게 아니라 어머니는 아무 걱정 없는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아 생전 시아버님은 효자셨다. 치매를 앓기 전 시어머니는 내게 자주 얘기 하셨다. 너의 시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얼마나 잘한 줄 아니 라고. 나도 기억한다. 분홍색 보자기를 목에 두른 시할머니를 양지바른 곳 의자에 앉히고, 물을 묻혀가며 정성스레 머리를 잘라 주시던 시아버님의 모습을.


시할머니 젊으셨을때 큰 손자(우리 남편) 밥해주시느라 시할아버지랑 1년 가량 떨어져 사셨다고 한다. 아버님이 할머니 나이 되고 보니 아직은 젊은 나이인데 두 부부를 떼어 놓는 큰 불효를 했다며 종종 눈물을 글썽이시던 모습도 기억한다. 살림을 해보지도 않은 남편이 혼자서 어머니를 돌보겠다 팔을 걷어 부친 것을 보면 집안 내력인듯 하다.


며칠 시골에 머무르는 동안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쓸고 닦아내고 반찬도 만들었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호박죽을 끓여 냉동실에 차곡차곡 채워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 오는 날 어머니는 서운해 하지 않으셨다. 웃으며 '잘 가라' 라고 하셨다. 서운한 표정의 남편과 웃는 얼굴을 한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잠을 잤다.


남편이랑 힘들어도 1년은 아무 생각 없이 지금처럼 살자고 했다. 특별하게 계획함 없이 매일 하루 하루 남편은 남편 자리에서,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미래가 새롭게 펼쳐질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계획 했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