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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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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BY 귀부인 2022-08-01

귀국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케 해준 것은 푹푹 찌는 무더운 날씨다. 해마다 여름에 한 차례 한국 방문을 할 때는 잠시 견디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 있어 그려러니 했었다. 하지만 30 여 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완전 귀국을 하고 나니 적응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한 낮의 더위가 무색하게 해가 지고 나면 서늘했던 요르단의 날씨가 그립다.


정년 퇴직 한 참을 앞두고 남편이 한국으로 가자 라는 말을 했을 때, 그럴 필요 있느냐고, 돌아가서 뭐 할 거냐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속마음으로는 정년을 채우고 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안정적이고 익숙한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하는데 대한 거부감, 새 일자리 잡기도 어려울 것 같고, 갑작스런 수입 절벽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마음 내색하지 않고 남편 말에 순순히 따른 것은 바로 시어머니 때문이다. 매 주 전화 드릴 때마다 전에 없이 아들 보고 싶다고 우시는 거다. 그러니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남다른 남편 마음이 오죽 했을까? 오랜 세월 해외 생활하느라 지쳐 있기도 하고, 더 늦기 전에 어머니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 남편에게 굳이 내 생각을 드러내어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며 하소연 하시는 어머님이 행여 잘못 되기라도 하면 남편 마음에 평생 지우지 못할 큰 상처를 줄 것 같아 익숙했던 삶의 터전을 뒤로 하고 1년 반이나 일찍 귀국을 했다.


서울에서 급한 일 몇 가지 끝내고 일주일 전에 시골로 내려왔다. 큰아들 내려간다는 얘기를 그리 했건 만 까맣게 잊으셨나, 니가 여기 웬일이냐며 마치 귀신 보듯 놀라시던 시어머니는 큰 아들 손을 붙잡고 꺼이꺼이 우셨다. 분명 남편이랑 택시에서 같이 내렸는데 시어머니 눈엔 내가 보이지 않으셨나 보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큰 아들만 온 게 아니고 나도 왔다고, 아들만 반갑고 며느리는 반갑지도 않으시냐며 농담처럼 말하자, 그제서야 '아녀, 너도 반갑지, 반갑고 말고.' 라며 눈은 아들을 향한 체 영혼 없는 대답을 하셨다. 친구 하나 없는 시골에서 아버님 돌아가시고 당신이 가장 힘드셨던 시간 반 년이나 모셨는데 그런 며느리는 안중에도 없는 시어머님이 잠시 서운하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단기 기억력은 더 나빠 지셨다. 똑 같은 질문을 1분 간격으로 하시는 바람에 입이 아플 지경이다. 치매시라 그런 걸 알면서도 같은 대답을 몇 번 하다 보면 점점 목소리가 올라 간다.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이 이어진다.

" 너, 언제 너의 나라로 갈래?"

" 어머니랑 같이 살라고 완전히 퇴직하고 왔어요."

"그려, 내사 좋다만 뭐 헐려고 그려?"

"그동안 일 많이 했으니 당분간 좀 쉬어야죠?"


1분 쯤 지나면,

"너이 몇 밤 자고 갈래?"

"아유, 어머니 안 간다니까요. 전화만 하믄 매 번 우시고.... 그래서 어머니랑 같이 살라고 왔어요."

"그러냐, 나는 몰랐다. 근디, 엄마 센타 가고 나믄 너는 뭣 한다니?"

"당분간 쉬고 천천히 알아 봐야죠.”

"나는 엄마랑 여기 있고 며느리는 서울서 왔다 갔다 해야지요.“


귀국 전 남편이,‘ 어머니는 내가 알아서 모실테니 당신은 걱정 하지 마’ 라며 호기롭게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평생 집안일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라 영 미덥지 않다. 그렇지만 두 눈 딱 감고 맡겨 보려 한다.


일주일 동안 마누라 해주는 밥 먹고, 회사일 스트레스도 없고, 어머니도 그만그만 하시니 맘이 편한가 음식을 너무 맛있게 잘 먹는다. 배둘레헴이 심상치 않다. 걱정 마, 당신 서울 가면 나 운동 열심히 해서 살 뺄거야! 또 호기롭게 말한다.


점심 식사 후 서울로 올라 오기 위해 짐을 챙겼다.

”아, 근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음식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시골에서 뭐 하고 지내지?

엄청 지겨울 것 같은데....“

”1년만 이렇게 살아보세요. 당신 평생에 딱 1년 떼어내서 어머니랑 한 번 살아보세요. 쉽지는 않겠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너무나 감사한 맘이 들 수도 있잖아요. 그러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막상 혼자 어머니 챙기려니 걱정이 되는지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이는 남편에게 파이팅을 남기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왠지 자주 내려 와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는데 일단 1년이란 기한을 정해 둔 것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우선은 1년,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니 맘이 편하다.

어머님이 사랑하는 큰 아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실 수 있도록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