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서면 남편은 서쪽들판 향해 자주 휘파람을 불었다.
이따금씩 손바닥을 치거나 입으로 ‘똑딱’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그것은 복자씨와 우리가족 간 일종의 신호 같은 것이었다.
풀 섶에 숨어있다가도 휘파람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달려오곤 했다.
복자씨의 가출이후, 나는 집나간 자식 부르듯 이름을 불러댔고
남편은 휘파람이나 똑딱이 소리를 종종 들려주었다.
주말이 접히는 금요일 오후.
이층계단으로 향하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역시 서쪽 들판과 오솔길이었다.
덤덤히 바라보던 내 눈 앞에 익숙한 삼색 무늬가 보였다.
도랑물이 흐르는 시멘트길 끝에 박혀있던 흰색, 갈색, 검정색!
우리 복자씨였다.
아래층을 향해 거의 괴성수준으로 남편을 부르며 뛰어 내려갔다.
“복자가 왔어요! 저기!”
서둘러 달려가 보니 복자씨가 길바닥에 기진맥진 쓰러져있다.
미동조차 없는 몸에 겨우 호흡만 가느다랗게 붙어있다.
끌어안고 집으로 와 살펴보니 상처의 흔적은 없지만,
거의 탈진상태다.
급하게 물이라도 먹여보려고 남편이 주사기를 이용해 입안을 축여주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혀끝을 내밀고 먹는다.
남편이 복자씨를 데리고 우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
몇 가지 검사를 시도하려는 중 무엇이 급했는지 복자씨는 영영 떠나버렸단다.
며칠을 어디서 헤맸는지 발끝마다 진흙이 묻어있고,
주인의 휘파람소리만 의지하며 안간힘 쓰고 기어와 어찌어찌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생사를 알 수 없는 것이 억장 무너지는 무게인지라
제발 그것만이라도 확인되면 맘을 놓겠다고 무시로 말하는 주인내외의 바람을 들었던 걸까.
집 아래 비탈길이 버거웠는지
뒤란 입구에도 들어서지 못하고 쓰러져 있던 복자씨.
직장에서 근무 중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복자씨가 우리가족에게 아주 큼직한 이별통보를 해왔다고 말이다.
퇴근하여 오면 마지막 인사라도 하라는 말만 남기며 남편은 말끝을 흐렸다.
사위가 어둑어둑 해지며 마지막 가을 입김이 이슬로 내린다.
현관문을 박차듯 밀며 거실로 들어서니
복자씨가 잠자듯 누워있다.
오후 내내 참았던 눈물이 컹컹 울부짖으며 쏟아졌다.
머리며 몸이며 쓰다듬다가 나는 마지막 말들을 전했다.
“복자야! 복자야! 고마웠어. 미안했어. 잘 가! 이젠 정말 아프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라!”
얼마나 힘들게 서걱거리는 갈잎들을 헤치며 왔는지
아직도 몸에 도깨비바늘 하나가 붙어있다.
“이걸 아직도 붙이고 있니!”
조심스럽게 떼어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몇 번이나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그만 묻어주자며 남편이 복자씨를 안고 마당으로 나선다.
밤나무 곁 남향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준비해 놓았다.
평소 깔고 덮고 자던 수건을 바닥에 펼쳐주고 복자씨도 다시 깊은 잠속으로 갔다.
흙을 덮으며 남편이 말한다.
“복자야! 좋은 곳으로 잘 가! 내년 봄엔 아빠가 예쁜 꽃도 많이 심어줄게!”
그렇게 복자씨는,
붉은 달이 뜨던 음력 시월 보름날에 영영 가출을 해버렸다.
가슴이 먹먹하여 쉽게 잠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인다.
아까부터 종아리 부분이 따끔거린다.
가렵지도 않고 뭔가 거슬린다고 생각하며 손으로 더듬더듬 잡아본다.
도깨비바늘이다.
복자씨도 떠나는 길 내 살갗에 가시로 박히며 하고픈 말이 있었나보다.
마른가시 하나를 떼어내며
목울대가 바늘에 찔리듯
그 한밤에 나는 또 개처럼 컹컹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