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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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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찾기


BY 박예천 2021-11-12

머리숱이 줄어든다 싶더니 정수리가 점점 훤해지고 있다. 
비단 나뿐이 아니라 주변에 여인들이 그러하다. 
특별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건만 몸 자체가 변하는 거다. 
키가 짧으니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은 더 잘 보이겠지.
지인 중에는 부분가발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어쩐지 그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면
자꾸 눈동자를 쳐다보기 전에 머리로만 시선이 가게 되어 영 마뜩찮다. 
 
몸의 제일 꼭대기인 중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표시다. 
곳곳에서 기름기가 빠져나가며 녹슬고 있는 신호가 오고 있다. 
어쩌겠나. 모두가 겪는 중년이고 갱년기 인 것을. 
그것뿐인가. 
시원찮은 몸통을 지탱하고 있는 중심축대도 휘어가는지 자주 요통에 시달린다. 
잠도 오지 않는 밤이면, 
사각찜질팩 온도를 최상으로 해놓고 부침개 뒤집듯 내 몸을 굽는다. 
 
젊은 날에서 중년의 시간까지,
삶의 중심으로 세워놓고 비스듬히 기대보고 위로받던 아들이 시설로 떠났다. 
평생 껴안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과감한 결단을 한 것이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이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건강관리부분까지 세세히 살펴주고 안심되는 곳이다. 
그럼에도 나는 휘청거렸다. 
벌써 녀석이 껍데기인 나만 떼어놓고 훌훌 가버린 지 두 해가 되어간다. 
갑자기 주어진 여유와 넘치는 시간들에 나는 호사를 누리기는커녕 버석거리며 입안이 말라왔다.

아들의 빈 방에 들어가 꺼이꺼이 울다가 밤을 하얗게 새는 것이 일쑤였다.
요즘도 괴성을 지르거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환청이 들리기도 한다. 
조목조목 무슨 반찬을 먹었고 산책을 다녀왔다며 하루에도 여러 번 문자를 보내오지만,
나는 여전히 아들이 고프다.
집에 오고 싶어 날마다 손가락을 꼽는 녀석은, 봄날 이후 외출이 금지 되었다. 
그 유명한 코로나 때문에.
제 껍데기 엄마를 만나는 것보다 마트에 가서 초코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는 게 희망사항인
울 스물 세 살 아들. 
 
생각이 많아진다. 
이제 중심이었던 아들은 훌훌 자유롭게 지내라 하고, 
새로운 내 중심을 찾기로 한다. 
명사실어증에 걸린 듯 머릿속에서 기억된 말이 엉뚱하게 입 밖으로 나오는 증세도 생겼고,
건망증은 거의 초특급유단자 수준이 되어버린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다시 세워보려 한다. 
인생 물 흐르듯 산다 하여도 사방으로 흩어져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한줄기로 중심에 시선고정하고 걸어야지.
섬뜩한 표현이지만 그 중심은 ‘죽음’을 향한 걸음이기도 하다. 
잘 죽기 위해,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는다. 
내가 돌아가 쉴 마지막 주소지에 정착할 때 까지 
몸은 비록 노쇠하여지더라도 정신만은 중심잡고 똑바로 걷고 싶다. 
 
이도저도 아닌 방향이 아닌,
가운데 길로 잘 가려면...,
 
글을 부여잡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