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진단서 "
얼마 전부터 책상앞에 사망진단서라는 말을 써 놓았다.
나는 이제 죽을것이다. 아니 나는 죽었다. 2021. 어여쁜 봄날을 기다리며 사망진단서를 낸것이다. 동생에게 이말을 했더니 "무섭다 사망진단서라는 말은 빼라..."
설 명절에 집에 돌아온 큰딸에게 말했다.
"엄마 사망진단서 냈어야"
"왜"
"엄마는 이제 칵 죽을겨.
니 아빠가 죽 주문 죽먹구 밥주문 밥먹구 되는대로 살겨. 니들도 그리알고 살어."
딸아이는 픽 ㅡ 웃었다.
"울 엄마 사망진단서 여러번 쓰게 생겼내."
아이셋이 모두 자랐다.
딸들이 세상의 흐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간의 흐름 즉 우리 부부의 흐름을 보다보니
우리 부부의 갈등을 지적했다..
어느날 나는 우리 부부 갈등의 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각각 원가족에서 맏이의 역할을 해왔었다.
그러다보니 각자 "장형"으로써 서로 집안일을 주도하려 했다.
남들보기에는 잘 사는 집안 같고 더러는 평온을 가장하지만 쇼원도우 부부처럼 쌩-하니
찬바람이 불었다.
또하나 갈등의 요지는 서로 성향이 다른데에서 문제가 있었다.
심리학 공부를하면서 남편의 심리를 분석하며 나의 심리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절에가서 기도를하면서 나를 성찰해 나갔다.
생각과 생각으로 꼬리를 이어가면서 공부하고, 기도한 결과, 내린 결론은 가족 화합을위하여 내가 마음을 바꾸것이 훨씬 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많은 것을 자기마음대로 했다.
나의 작은 감성은 딱 잘랐다.
가족들이 외식을해도 자기의 식성을 따라야 했다.
걸걸한 탕음식을 즐겨했다. 아구탕 ,어죽 ,추어탕 ...이런것들을 좋아했다.
지난번에 우리 어머님 돌아가시고 매주 7일마나 산소에 다녀왔는데 그때도 계속하여
추어탕을 먹었다.
산소가 예당저수지 근처이기때문에 어죽을 먹을조건이 되어서기는 했지만
그곳에는 레스토랑도 많고 찻집 또한 즐비하다.
나는 예쁘게 신선처럼 차려입은 딸들을 데리고 레스토랑에가서 분위기있게 식사하는 것을 좋아할뿐아니라 경치좋은 찻집에서 디저어트를 먹으며 수다떠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남편만 끼면 불화가 생겼다.
이까짓걸 왜 먹냐는 것이다. 맛 대가리도 없는 것을 먹는데 돈을 쓴다고 얼굴이 씨뻘개져 화를내기도하고 말을 한마디도 안 했다.
내 회갑날도 집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아구탕을 먹었다.
결혼기념일 같은날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어야하며 늘 술꾼을 불렀다.
가족 여행을가도 늘 술꾼을 불러서 함께 여행을 갔다.
그러고보니 웃지 못할 일화가 있었내.
그날도 내 생일날이었다.
마눌님 생신이라고 또 술꾼을 불렀다.
노후에 집을 지으려고 밭을 사놓은 곳에 작은 숙소를 마련해 놓은 적이 있었다.
그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마누라를 데리고 자려고 깨끗이 청소를하고 지저분한 것을 몽땅 태운다고 불을 땐것이 너무 과열되어 불이나서 숙소까지 몽땅 태워버렸다.
우리 아이들 어린시절 추억마져 몽땅 타버렸다.
웃지 못할 일화다.
언제부터인지 결혼기념일은 술꾼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내 스스로 삭제 하였다.
둘이서 맨정신으로 썰렁하니 외식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묻어둔 세월속에서 아이들이 다 자란것이다.
나를 닮아 책읽기 좋아하고 그림그리기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반면에 아빠를 닳아 술꾼딸도 나왔다.
그런데 고 술꾼딸이 건강때문에 걱정은되지만 술주정이 귀엽기도하다.
고녀석이 지 아빠 역내를 한다.
"우리집은 엄마만 참으면 되는데. 안주인이 너그러우면 집안이 편안법이지."
내가 한풀 꺾이였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다보니 엄마를 꼬집기도 하였다.
그러나 술꾼딸도 레스토랑이나 까페는 좋아했다.
그래서 남편을 빼고 자연스럽게 딸들과 어울렸다.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쭉 자리가 잡히는 줄 알았는데 술꾼딸이 아빠 생각을 하나보다.
딸들 입에서 아빠가 불쌍하다는 얘기나 나오기 시작했다.
어렸을때는 맨날 술만먹는 아빠가 싫었고 밖으로 나도는 아빠가 싫었는데 친구들 아빠를을보니 지네 아빠 같은 사람도 많지 않다고 하였다.
그리고 엄마가 다 옳은 줄 알았는데 그것만도 아니라고 했다.
집에오면 맨날 책만보고 그림이나 그리고 맹자왈 공자왈 나도 엄마가 싫타 재미없다 하였다.
그렇게 엄마를 지적해 놓고 말끝에 향상 껄껄 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나도 엄마가 싫다 껄껄."
그말끝에 아이들이 모두 까르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입에 대지도 않는 술을 한잔씩 하기시작했다.
집안 분위기가 부드럽고 편안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더러는 아빠가 낄때도 있었고 더러는 우리 사모녀끼리 어울리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빠를 빼놓게 되는 날이 많아지니까 아빠가 불쌍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자리에 아빠가 없어서 서운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아빠가 없으면 너무 편하고 즐겁다는 얘기를 하였다.
아이들의 대화가 서로 교차되면서 내려진 결론은 엄마가 참으라는 것이었다.
엄마만 참으면 많은 것이 평화로워진다 했다.
아이들이 점집에 다녀왔다 했다.
"무당 아줌마, 우리 아빠랑 엄마는 왜그렇게 싸워요. 이혼해요."
아줌마왈
"니엄마랑 아빠 너무 불쌍하다, 니들 키우느라고 참고 살았다, 너무 안 맞는다."
"무당 아줌마,그럼 울엄마 아빠 이혼해요.
딸아이들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 이혼할겨?"
"아니 입 닫으면 명품이고 입열면 똥품인데 뭐러 명품을깨서 똥품만들어."
막내딸이 한수 거들었다.
"거봐 거봐 무당아줌마 말이 맞다."
요즘에는 무속인들도 청소년들을 잘 지도해주는가보다.
그분께서 하시는 말에 의하면 아빠 엄마는 책임감있는 사람들이라 절대 이혼안할테니 걱정말고 니들이 잘 하고 그대신 효도나 하라 했다 한다,
혼자있는 시간 조용히 생각해본다.
명품과 똥품차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바에야 그냥 명품쪽으로 줄을 서보지 뭐
아이들 말마따나 나만 참으면 많은 부부갈등이 없어질텐데..
명품도 어렵지만 똥품도 어려울수밖에 없다
집안 평정을위해서 내가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하여 결심한 것은 남편이 이끄는대로 죽주면 죽먹고 밥주면 밥먹고 굶기면 굶는다는
지론이 생겨났으며 반장은 남편만 세우면 된다.
집안에 모든일을 남편이 시키는대로 하기로 하였다.
내가 너무 슬픈가
노년으로가는 길목이 너무 슬픈가?
그런데 기가 막히는 것은 딸아이 셋이 한꺼번에 하는 말에 의하면
아빠가 엄마를 아주 귀여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그런데 딸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면 생각해봐야하지 않은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셋이 모두 왈왈댄다.
"엄마 죄받는다 아빠 사랑 모르는 죄받어."
한껏 흔들어놓고 의자에 앉혀주는 것과 뭐가 달라.
아이들 이야기에 의하면 우리부부가서로 성향이 안맞아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고 아빠의 직업이 이성적인 일을 하다보니 계산에 의한 구조를 바꾸지 않을뿐아니라
엄마는 감성적으로 치우처서 내일 밥이 나오던 말던 오늘 하고 싶은것을 해야하는 성향이라
그 이성과 감성이 서로 다툼을하는 것이라 했다.
아이고 아이고 열심히 길렀더니 이렇게 아빠 엄마 평가를 하다니
딸 셋이 새새끼처럼 대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 아빠 사랑 그거 모르는 죄받어 그 죄를 어떻게 받을라구."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그래 집안의 평정을 위해서 내가 죽어야 되겠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또는 회갑날에도 거의 잊은적이 없이 무엇인가는 먹여준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에서 결혼기념일이 삭제되다보니 자꾸 결혼기념일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때도 꼬박 꼬박 봉투를 받았던것 같다. 성향이 안맞아서 내가 원했던 방법대로 표현해주지 못한것뿐이고 그는 그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술꾼을 불러 목구멍까지 올라오게 퍼먹인 샘이다.
나는 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술을 한방울도 못하는 나는 참 힘들다.
그리고 술수정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들고 노래방에가서 30분은 재밌다. 그런데 한시간 지나고 두시간돌아오면 죽을 것 같아 그냥 혼자 집으로 와버린다.
그리고 시집와서 30년 이상을 즐비하게 아구탕을 먹었더니 입이 더 커진것 같다.
내가 말이 많은 것은 입이 너무 커서 그런것 같다.
에구 이러다가는 물고기를 하도 먹어서 내 엉덩이에 꼬리도 날것 같다.
이리하여 나는 우리 가족 화합의 길을 위해서 사망진단서를 낸것이다.
집에서는 입 꼭 다물고 조용히 살고, 친구들 만나서 나 좋은대로 적당히 풀고 살면 못할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