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여 어서 오너라
나는 생소한 환경에 적응을 잘 하는 편이다. 내가 그렇다 하면 남들은 내가 속이 넓어서 그렇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부모님의 늦둥이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나는, 그래서 고집이 세고 미련하다 할 만큼 추진력이 강하다. 그런데 고집으로도 되지 않고, 더군다나 추진력으로는 택도 없는 일에 요즘 속을 좀 썩인다. 뭐든지 내가 맘먹으면,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은 없었는데 말이지.
이사 오기 전의 집은 오래 된 주택이었으나, 방을 다섯이나 쓰고 살았다. 이제 돌아보니 방 둘은 세를 주었어도 솔찮게 주머니를 채울 수도 있었겠으나, 다른 식구들이 내 대문을 드나들며 신경을 쓰게 하는 게 귀찮아서였으니, 그래도 여유가 있는 척하고 살기는 했던 모양이다. 아~.그래서였을까. 내가 굶어서 죽어도 남들은 배가 터져서 죽었다고 할 것이라는, 쓰잘 데 없는 소리를 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잇속 챙길 사정이 있어서 방이 셋인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옹색해도 너무 옹색하다. 더욱이 방 하나는 되지 못하게 복식이랍시고 윗층에 있으니, 살림이나 쟁겨 놓는 게 고작이다. 전의 낡은 집보다 거실도 반토막이고, 주방도 절반이라서 한동안은 속을 끓였다. 더욱이 아이들이 다니러 와서는, 주차가 쉽지 않아서 고생을 한다. 집의 위치도 그전만 훨씬 못하다. 그러나 영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잖느냐며, 집에 대한 불만은 한 마디도 없다.
그러나 나도 아주 몹쓸 집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래층에 큰아들 네를 불러들여서, 이쁜 손녀딸아이를 자주 보게 되지 않았느냐는 말씀이야. 대문이 층마다 따로 나 있어서, 이 고약한 시어미를 자주 보지 않고 살만하니 내 큰 며느님도 좋겠고. 이왕에 이사를 했으니 내 속을 달래며, 나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기로 했다는 거 아니겠어? '군자는 대로행' 이라 하지 않던가. 늘 나는 대로행을 주장하며 살았으니까.
오~! 있다. 좋은 점을 찾자 마음먹으니 있기는 있다. 지하실에 두 세대가 방 두 개씩으로 살게 되어 있다. ‘투가리보다 장맛’이라더니, 내 기분을 제법 다독여주는 일이었다.
‘월세를 받으면 것도 짭짤하겠는데?!’ 적잖게 내 입맛을 돋우는 생각이었다.
“아빠~!”내가 영감을 이리 부를 때는, 기분이 적잖게 엎 되었다는 의미다. 월세를 놓기로 합의가 됐다.
나는 딸도 둘 아들도 둘을 두었다. 사람들은 무슨 복이냐고 부러워하지만, 한창 그들이 공부 중에는 그런 고생도 없었다. 퇴근을 하고 가계 문을 닫고 이층으로 오르면, 줄줄이 손을 내밀고 서서 나를 맞는다. 그러니까 나도 일수를 내듯이, 매일 잔돈을 준비해야 했다. 아이들이 커 가면, 내 잔돈 주머니도 더 커져야만 했지. 어느 때는 둘이 입시준비생일 때도 있었고, 대학생에 대학원생이 겹쳐져서 셋일 때도 있었다.
그게 바로 ‘엄친아’ 라고는 하더라마는, 우리 부부는 하루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말썽을 부리는 일은 없이, 잘 자라주는 것만 고마웠다. 네 녀석이 남들 부러워하는 대학과 대학원을 거쳐서 그리고 유학들을 하고 밥 벌어 먹을 자리를 잡으니, 것도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었지. 저희들은 부족했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나는 자신 있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로 잘 해줬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는 게 솔직한 내 고백이다.
허허. 아이들 공부 끝내고 시집장가를 보내고 나니, 내 주머니가 텅텅텅텅텅~! (이건 내 빈 주머니가 흔들리는 소리다.) 누구라도 자식들 키워 보라지. 저희들이 갖다 쓴 만큼, 월급 챙겨서 부모 앞에 내미는 녀석들이 얼마나 있는지. 다시 손을 벌리지 않는 녀석이 있다면 효자라고 해 두자. 부모들은 그저 저들만 잘 살아주면, 그것으로도 감지덕지라는 말씀이야. 주판을 놓고 튀겨보면 손해를 볼 일이지만, 자식의 앞에서 주판을 튀기는 부모는 1도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보험’ 하나를 들어 놓지 못했다. 나는 내가 늙어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할 때가 오리라는 걸 예감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으면 언제까지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기술직은 말이다. 지금은 시부모님 덕으로 먹고는 살아가지만, 백수가 되고 보니 사는 일이 전과 같지가 않다. 꼭 손에 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도 씀씀이가 전과 같은 기분은 절대로 아니더라는 말이지. 그러니 지하실의 월세는 제법 짭짤했다고 하겠다.
마침 가을의 이사철에 들고나는 막간을 이용해서, 도배도 하고 손을 볼만한 곳을 찾아 손질을 했다. 그렇게만 해 놓으면 곧 이사를 들어올 줄 알았다. 도배를 하자 하니 그것도 한철이라고, 예약을 하고도 며칠씩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이사 철을 넘겼나 보다. 지하실 한쪽은 비운 채로 겨울을 맞았다. 간간히 와 보는 이들은 있어도 시원치를 않다. 것도 내 입맛대로만 되지 않는구먼. 봄이나 되어야 나가려나 보다. 봄이여 어서 오너라~.
봄을 기다리는 만석이의 마음입니다^^
(삼각산 둘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