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들어 첫 외출이다. 바람이 몹시 매섭다. 집안에 있을 때에는 몰랐는데, 이젠 목도리도 장갑도 챙겨야겠다. 그러고 보니 계절이 가는 것도, 날짜가 지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늘 가까운 동네 병원에 다녀오려고 가볍게 생각한 게 사단이다. 그래도 외투를 눌러 입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나도 귀가 있으니 들은 소리는 있어서 이지. 나설 때는 일기예보 알아보기가 필수지 않은가.
볼일을 다 보고 집으로 가는 길. 앞서 걷는 여인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흰머리하며 어린아이를 엎은 모양새가 애 어멈 같지는 않고, 아마 등에 업힌 아이의 할머니인가 보다. 어린아이를 봐 줄 량이면 아이나 제대로 업던가. 어린아이는 등에서 허리 밑으로 늘어지는데 장보따리가 무거워서 땅에 끌리기 일보 일보 직전이다. 등에서 덜렁거리는 아이의 머리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잔잔한 실파가 크게 두 묶음이다. ‘저걸 어느 세월에 다듬어서 입에 들어가게 하나.’ 공연한 걱정에 내가 역정이 난다. 좀 쉽게 살면 안 되나? 딸이 시켰나? 며느리가 입질을 했을까. 도저히 내가 먹자고 저 실파를 들지는 않았을 터. 딸이라도 못 됐고 며느리라도 곱질 않다. 누구라 원하지 않았어도 어미 마음일 수도 있겠지. 괜시리 내가 역정이 나서 허리를 펴고 한숨을 돌린다.
이왕에 나온 김에 좀 걸어 봐? 요새로 걷기에 너무 게으름을 부렸다. 몸도 따라 주지 않았지만, 코로나의 그 확진자 숫자가 나를 자꾸만 움츠러들게 한다. 더군다나 우리 동네쪽은 그리 성하지 않더니, 요새로 그 숫자가 많아진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걷기를 많이 쉬었더니, 역시 걸음이 시원찮다. 3000보를 걷고 나니 용기가 무너진다. 그만 두어야겠다.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마침 남원의 명물이라는 추어탕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에~라. 이 추위에 집에 들어가서 밥 섬기게 생겼남. 영감은 추어탕을 좋아하겠다? 추어탕이나 한 사발 들고 올라가서 설설 끓여서 주고, 하얀 이팝이나 고실고실 지어 주자.”
이래서 오늘도 만석이는 수월한 저녁상을 들고, 열적은 량 그래도 현모양처임을 자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