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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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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더 낳을 걸


BY 만석 2020-11-16

여느 날 아침보다 일찍 혼밥을 챙겨 먹고는, 현관문을 마주하고 섰다. 폰을 손에 쥔 채다. 나는 시방 큰며느님의 전화를 기다리는 중이다. 약속한 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달라. 내 폰이 울고 거실의 창을 넘겨다 보는 내 시선에, 며느님이  담을 돌고 있다.

현관문을 나서니 계단 너머에 에미가 섰다.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에미가 담 너머에 선 채로, 웬지 알고있다는 듯이  웃으며 묻는다.
"넌 줄 아니까." 한 통의 통화료는 번 셈이다.

대문을 나서자 며느님이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는다. 이젠 싫은 내색을 할 명분이 없다. 넘어지기 잘하는 사람이니, 또 넘어지지 않으라는 법이 어디 있누. 우리는 오늘도 병원을 향해서 행차(?) 중이다. 막내딸이 이사를 하고 나서는, 고맙게도 아래층의 큰 며느님이 우리 내외의 병원행을 도와주고 있다. 마주 걸어오던 학생이 우리와 지나치자, 머리를 돌려 우리의 뒷 모양을 유난히 살핀다.

'왜 아니겠어. 멀쩡한 사람이 손목을 붙잡힌 채 끌려가듯 걸으니.'
이젠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손아귀에 잡힌 손목을 빼려고 용을 쓰지도 않는다.  어디가 시원찮은 사람인가 하는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더 어린아이처럼 아장아장 걸어 보이며 혼자 웃는다.

이제는 길을 알아볼 채도 하지 않고, 며느님께 손을 잡힌 채,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른다. 그것이 애쓰는 며느님의 수고를 덜어주는 셈이니까. 엊그제까지만 해도 '혼자서도 잘해요.'하며 다니던 길이었으나, 멍청이 행색으로 며느님 곁을 말없이 따른다. 허긴. 병원은, 특히 대형 종합병원은 어느 곳이나 이젠 복잡한 미로이어서 나도 자칫하면 길을 놓치기 일쑤다.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다시 고개를 드니, 따라서 병원 출입도 제법 더 삼엄하다. 발열체크를 하고  출입카드를 선보이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도착접수야 당연히 해야겠지만, 아직 진료도 받기 전인데 '수납'을 먼저 하라는 것은,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챙기자 하니 그렇긴 하겠다고 자위를 한다.

에구~. 오늘도 내 아이들 주머니를 털게 생겼다. ct촬영을 예약하고 흉부외과 교수님을 알현(?)했으니, 경험상으로 봐도 거금을 받쳐야겠는 걸. 얼마 전에 <조지워싱턴대>에 수 천 만원의 입학금을 헌납(?)한 큰딸이 어렵지 않겠는가, 여덟 군데의 학원을 보내는 딸을 키우는 큰아들이 수월하겠는가. 큰 집을 장만하고 집 치장에 한창인 막내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테고, 코로나로 일본과의 거래가 막혀서 고전을 하다가, 이제야 원상복구를 하느라고 발버둥을 치는 막내아들이 쉽겠는가.

아직은 모른 채 내 살림에 맡겨두어도 좋을 우리 내외의 병원비를, 구태여 저희들이 1/n하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고맙기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나, 분에 넘쳐서 면목이 서질 않으니 몸 둘 바를 찾지 못하겠구먼. 허긴. 두 백수가 먹고사는 작은 살림이지만, 그래도 살림은 살림이다. 당연히 예전 수입이 있을 때와는 주머니 사정이 많이 다르다. 백년을 벌게 될 줄 알고 맹추 짖을 했지만, 그것이 자식을 위한 일이었으니 후회는 없다. 나는 늘 자식의 일을 내 일생의 일선에 두고 살았으니까 .

허기야.
"자식이 배고프다는데 , 뱀을 던져 줄 부모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다. 나라고 배고프다고 우는 자식이 없었겠는가 말이지. 다만 금수저로 태어나게 하지는 못했으니 더 할 말은 없지만, 아이들마다 그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거니와,
"엄마도 우리 기를 때 힘드셨잖아요." 하는 걸 보면, 그리 못 된 녀석들은 아닌 게로구먼.

이제는 더 도울 여력도 없고, 더욱이 재간도 없다. 병원비 부담 시키는 것을 못내 미안해 하면 며느님은 늘 말한다.
"괜찮아요. 1/n씩 하면 얼마 안 되요."
오늘도 <단톡방>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혼자 곱씹어 본다.
'두 녀석만 더 낳아서 보탤  걸 그랬나? 그러면 아이들 부담이 좀 덜 할 텐데 ' ㅋㅋㅋ.